프놈펜 국제공항은 시골버스 정류장·도깨비시장 ‘연상’무질서·경관 무시한 빌딩사이로 진한 티크색 건축물 ‘반듯’
  • ▲ 공항 인근 도로.ⓒ이재룡 칼럼니스트
    ▲ 공항 인근 도로.ⓒ이재룡 칼럼니스트
    가는 길이 순탄치 않다. 조선에서는 뱀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어 벌이가 변변치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뱀이 엄청나게 많은 아열대 지방인 동남아가 핫플로 떠올라 조선 사냥꾼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캄보디아(크메르) 물뱀을 찾아 어두운 정글로 들어간다. 
    젠장 그러면 그렇지 탄식이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항공 지연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꽤 익숙하다.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꽤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대한항공의 학습효과였다. 으레 늦겠지. 그럴 줄이 일상화돼 버린 것이 아쉽다.
    대한독립 만세 삼창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1946년 3월 1일 설립된 대한국민 항공사이건만 어느 날 군복 입은 멋진 사나이가 1962년 3월 1일 광화문 한복판에 5‧16 간판을 걸고 국영 대한항공 공사로 변신을 꽤 하는가 싶더니 하필이면 1969년 3월 1일 양주 조 씨에게 운영권을 넘긴다. 이유는 간명했다. 적자에 시달려 하는 수 없이 조 씨 입에 넣어주었다는 것이다. 
    KE 689, 20여 분 지연되어도 미안하거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더니 활주로에서 40여 분을 또 잡혀있다. 실컷 농땡이 피우다 제시간을 1시간쯤 허비하고 나서야 이륙한다. 객실 사무장이 연신 고개를 숙인다. 늦게 이륙한 만큼 빨리 가보겠다고 ‘딜(협상)’을 한다. 그래서 그런가? 평소 비행 속도는 800㎞ 내외였는데 어쩐 일인지 930㎞를 유지한다. 과속이다. 
    조그만 접시에 멋지게 올려진 애피타이저와 연장 4개가 골부리는 땅꾼의 마음을 다독여 준다. 
    프랑스에서 숙성시켰다나 뭐라나 조선의 복분자처럼 불그스레하고 달착지근한 술 2잔을 연거푸 마셨더니 취기가 오른다. 그 기운을 앞세워 객실 승무원과 말씨름을 이어갔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하늘 위에서 일하는 자부심, 아이를 낳지 않는 합리적인 핑계,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가져다주는 비호감, 행복의 가늠자를 일에서 찾으려는 몸부림이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야기가 끝나고 좌석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눈 객실 승무원을 나름 평가했다. 
  • ▲ 무질서하게 들어선 프놈펜 시내 건물.ⓒ이재룡 칼럼니스트
    ▲ 무질서하게 들어선 프놈펜 시내 건물.ⓒ이재룡 칼럼니스트
    속살이 드러났다. 그래서 곱다. 웃음이 값지다. 그래서 반짝인다. 한 다리를 곧게 세운 학이다. 그래서 고고하다. 왠지 편하고 착 달라붙는다고 해서 ‘요람’이다. 던지면 받고 건너면 손을 잡는다고 해서 ‘징검다리’다. 늘 따라다니다 밤이 되면 숨는다고 해서 ‘그림자’다. 맑고 순수하고 구김살 없다. 그래서 백치다. 또박또박 대답한다. 그래서 실타래다. 최희원은 꽃이다. 그래서 대한항공이다. 
    깜깜했던 창밖 저 아래가 돌연 삐까뻔쩍이다. 베트남 달랏을 지나고 있다. 승무원은 좀이 쑤셔 몸을 비비 꼬는 땅꾼에게 다가와 40분만 더 가면 된다며 슬쩍 일러준다. 화장기 가신 프놈펜 국제공항은 번잡한 시골 버스 정류장과 왁자지껄 도깨비시장을 연상케 한다. 

    복도 끝 베란다가 딸린 방에 덜렁 짐을 던져버린 채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술집을 간택하여 캄보디아 입성 축하주를 주거니 받거니 만취되어 그렇게 첫날밤은 익어간다. 
    물뱀이 넘쳐난다는 메콩강으로 간다. 오랜 시간 동안 메콩강 둑에 걸터앉아 굳어버린 로컬식당은 초입부터 긴장감이 몰려온다. 식당 앞에는 메콩강에서 갓 올라온 물뱀들이 진을 치고 서서 조선의 땅꾼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놓고 무시한다. 캄보디아 땅꾼들은 생김새부터 검고 험상궂지만 불과 수 시간 전에 조선에서 원정 온 땅꾼들의 면상은 곱고 뽀송뽀송하니 메콩강 물뱀들 눈에는 만만해 보였을 것이다. 

    물뱀마다 목에 이름표를 달고 있다. 앙코르, 산미구엘, 창, 타이거 맥주 회사에서 독을 가득 담아 육지로 올려보낸 엄선된 물뱀들이다. 빨간색 옷으로 치장한 산미구엘 물뱀 왼쪽 눈가에 별 문신이 보였다. 거나하게 차려진 밥상 위로 메콩강에서 불어오는 소소리바람이 더해져 운치를 더한다. 메콩강 물뱀은 글로벌하지 못해 ‘잉글리시, 콩글리시’는 먼 나라 이야기이고 갈라진 혀를 날름대며 오직 캄보디아 발음만 해댄다. 이동통신에 등록된 이름은 LAN이고 접선번호는 016217838이다. 간혹 텔레그램과 연계를 한다며 조선 땅꾼의 옆구리를 칭칭 감는다. 물뱀들을 생포하기 위해 소주 1 맥주 2 비율로 폭탄주를 말아 단칼에 베어 버렸다. 메콩강 물뱀들이 대가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 ▲ 아름다운 캄보디아 해안가.ⓒ이재룡 칼럼니스트
    ▲ 아름다운 캄보디아 해안가.ⓒ이재룡 칼럼니스트
    뜨거운 열기가 가시고 밤이 되자 시각과 청각, 미각은 약하지만, 진동과 후각 그리고 열 감지에 뛰어난 프놈펜 살모사와 구렁이가 굶주림을 참지 못해 가라오케로 모여든다. 낮에는 천적인 닭이나 꿩을 피해 숨어 있다가 해가 서쪽 시아누크빌 너머에 걸리면 길고양이 눈을 가리고 나타난다. 프놈펜 물뱀들은 깜깜한 밤하늘을 제일로 두려워한다. 잠시 한 눈이라도 팔면 야행성 부엉이, 올빼미가 머리 위에서 쏜살같이 내려와 언제라도 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장 있는 가라오케를 좋아한다.
    조선의 땅꾼이 이를 모를 리 없다. 프놈펜에는 중국 땅꾼, 일본 땅꾼, 캄보디아 토종 땅꾼까지 아무 뱀이나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니 경쟁이 무척 심하다. 프놈펜에서 방귀깨나 뀌는 땅꾼들만 들락거리는 Royal 214 로컬 KTV ‘삽짝 문’을 열고 물뱀 소굴로 들어간다. 

    조선 땅꾼이 부어 놓은 참이슬 폭탄주에 방향 감각을 잃은 물뱀들의 경쟁이 시작된다. 살모사와 구렁이는 어느새 술에 절어 코브라로 변신하여 대가리 치켜들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땅꾼에게도 나름 도덕과 정의가 있다. 밤에는 단 한 마리만 잡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땅꾼은 물뱀들에게 합리적인 제안을 한다. 사다리를 탄다.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는 물뱀은 길고양이, 부엉이, 올빼미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프놈펜 밤거리로 나가야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2024년 3월 6일. 1431년 앙코르를 버리고 프놈펜으로 천도한다. 매캐한 매연, 정돈되지 않은 무질서, 경관을 무시한 빌딩 사이로 진한 티크 색 캄보디아 건축물이 반듯하다. 역동적이다. 이재룡 거대한 돌들을 깎아 그대로 쌓아 올린 건축 양식에 더해 둥근 얼굴상, 넓은 이마와 독특한 머리 장식을 보며 정직하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