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리에서 천왕봉 오르는 최단 거리 산행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속리산국립공원 보은군 편
  • ▲ 속리산 천왕봉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속리산 천왕봉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겨울이 서서히 물러나고 그 자리에 봄이 찾아드는 2월 마지막 휴일에 속리산국립공원 천왕봉(해발 1058m)을 찾는다. 최단 코스로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도하리 윗대목골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는 윗대목골의 천왕봉 유료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필자는 천황사의 주지 스님을 찾아뵐 겸 사찰 경내 주차장을 이용한다. 대웅전(大雄殿)에 들어 부처님께 삼배하고 요사채(寮舍寨)로가 주지스님을 뵙기를 청하였으나 부재중인지 대답이 없다. 산행 후에 뵙기로 하고 천왕봉 산행을 시작한다.
  • ▲ 천황사 대웅전 뒤편으로 천왕봉이 보인다.ⓒ진경수 山 애호가
    ▲ 천황사 대웅전 뒤편으로 천왕봉이 보인다.ⓒ진경수 山 애호가
    천황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 주차장 방향으로 포장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대청사의 천왕봉 유료주차장을 지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너른 평지 산책길을 걷다가 계곡을 건너서부터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른다. 한 동안 계곡을 따라 길을 오르다가 계곡을 건너고 또 건너서부터 평평한 바위가 깔린 등산로를 오른다.

    구름다리를 건너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다시 계곡을 건너 해발 477m의 능선을 향해 가파른 길을 허벅지에 잔뜩 힘주며 오른다. 고되게 오르고 나니 평탄한 흙길이 한 동안 이어진다. 또 다른 계곡을 건너 도화리 기점 1.6㎞ 지점을 지나면서 잔돌과 바위돌이 흩어져 널린 산길을 오른다.
  • ▲ 계곡을 건너고 또 건너서 오르막길을 오른다.ⓒ진경수 山 애호가
    ▲ 계곡을 건너고 또 건너서 오르막길을 오른다.ⓒ진경수 山 애호가
    위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곧게 뻗은 참나무 꼭대기에 맑고 푸른빛으로 채색하고, 아래에는 발바닥을 지압하는 잔돌과 갈색의 낙엽들이 뒹군다. 산길을 오르는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암봉이 수줍은 듯 얼굴을 살짝 내미는데, 그것이 천왕봉이다.

    이어지는 등산길에는 흙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고 검푸른 산돌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산길을 오르는 좌측의 계곡을 끼고 가파른 산돌 길을 오르자니 숨이 차오르고 온몸에 열기가 퍼져 윗도리를 벗게 한다. 봄이 오는 계절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실감난다.
  • ▲ 가파른 너덜지대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진경수 山 애호가
    ▲ 가파른 너덜지대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진경수 山 애호가
    고도가 높아지면서 숨이 점점 더 가빠지고, 발걸음이 더디게 느껴질 무렵, 등산로 우측 산비탈에서 쏟아져 내린 잔돌로 형성된 너널지대를 지난다. 이곳에서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천왕봉의 얼굴을 또렷하게 조망한다.  

    이후에도 가파른 산돌 길을 지그재그로 오르면서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밑동이 울퉁불퉁한 참나무을 만난다. 우리 인생도 수많은 사연들을 겪으면서 이 참나무처럼 굴곡진 삶을 살아가지만, 그런대로 순응하며 사는 것이 자연의 순리가 아닌가 싶다.
  • ▲ 도하리 안부에 도착하기 직전의 조릿대 계단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도하리 안부에 도착하기 직전의 조릿대 계단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나무 계단 구간을 오르면서 참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참나무 밑에는 바삭하게 말라죽은 조릿대로 가득하다. 한 아름만큼 자란 조릿대가 꽃을 피우고 종자를 내린 후에는 이렇게 생명을 끝낸다. 그렇지 않은 조릿대는 사시사철 초록을 유지한다.

    허벅지가 터지도록 계단을 힘차게 오르자 도하리 안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천왕봉이고, 우측으로 가면 형제봉에 이른다. 나지막하게 자란 조릿대 위로 세찬 비바람에 시달려 구불구불하게 자란 참나무 숲속의 산길을 오른다.
  • ▲ 천왕봉을 오르는 조릿대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천왕봉을 오르는 조릿대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등산로는 가파르고 흙과 돌, 나무뿌리가 뒤엉켜 있으며,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서 질퍽거리기도 한다. 등산로가 우측으로 바뀌면서 하얀 잔설과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이 남아있는 북향의 오르막 구간을 철제 난간에 의지해 간신히 오른다.

    빙판 등산로를 초긴장 상태로 오른 후 보상이라도 받는 듯 멋진 조방바위를 만난다. 이곳에서 도하리에서 올라온 계곡 길과 능선을 비롯하여 몸을 180도로 돌려가며 풍광을 감상한다. 너울대는 능선이 마치 ‘봄의 왈츠’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하다.
  • ▲ 해발 1058m의 천왕봉 정상석.ⓒ진경수 山 애호가
    ▲ 해발 1058m의 천왕봉 정상석.ⓒ진경수 山 애호가
    다시 참나무 군락지를 오르는데, 그 형상이 마치 일부러 키 높이를 맞춘 듯하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물결 같기도 하다. 그러한 나무 아래에는 성인 키 만큼 자란 초록의 조릿대가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조릿대 숲을 헤치고 막바지 가파른 길을 힘차게 오르면 드디어 속리산의 최고봉인 해발 1058m의 천왕봉에 도착한다. 백두대간이 바로 백두산에서 이곳을 지나 지리산 천왕봉까지 뻗은 산줄기이다.
  • ▲ 천왕봉에서 문장대를 거쳐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천왕봉에서 문장대를 거쳐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2008년부터 일제에 의해 천황봉(天皇峰)으로 바뀌었던 원래의 산 이름인 천왕봉(天王峰)을 되찾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옛 지도와 법주사도에 천왕봉으로 표기돼 있고, 동국여지승람 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란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개명의 근거가 되었다.

    천왕봉 정상에 서니 사방팔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이 순간에는 티끌보다 못한다. 그것들은 잠시 머물다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기에 붙들고 시름할 까닭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산에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 ▲ 갈색의 겨울 단풍이 멋들어진 구름다리.ⓒ진경수 山 애호가
    ▲ 갈색의 겨울 단풍이 멋들어진 구름다리.ⓒ진경수 山 애호가
    정상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하산한다. 땅이 녹아 질퍽거리는 등산로는 물론 빙판 등산로를 하산할 때는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매년 3월까지는 산행할 때 필수적으로 아이젠을 챙기는 것이 안전산행에 많은 도움이 된다. 

    도하리 안부에 이르러 아이젠을 벗고, 계단을 통해 참나무와 조릿대 구간을 내려간다. 가파른 돌길에 낙상하지 않도록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해서 하행한다. 내려가는 길이라 힘은 덜 들지만 돌길이라 긴장은 훨씬 강도가 높다.
  • ▲ 평지까지 하산한 후 돌아본 천왕봉.ⓒ진경수 山 애호가
    ▲ 평지까지 하산한 후 돌아본 천왕봉.ⓒ진경수 山 애호가
    깊은 계곡과 얕은 계곡을 번갈아 하행하면서 색채감이 없는 겨울 산행에서 느끼는 단순함의 매력에 빠져든다. 지난 가을 저지대 계곡에서 아름다운 단풍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미련인지 아쉬움 때문인지 단풍잎을 떨구지 않고 갈색의 겨울 단풍으로 모습을 바꾸어 붙잡고 있다.

    구름다리를 건너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지고 연이어 평지에 가까운 등산로를 걷는다. 포장길로 접어들면서 천왕봉을 돌아보며 작별 인사를 한다. 천황사에 도착해 주지스님을 만나 뵈려 하였으나 아직도 인기척이 없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사라지는 법이니 그리 서운할 일도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