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려니숲길·절물조릿대길·숫모르편백숲길 총 19.93㎞[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제주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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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6일, 절기상 ‘소한’인 오늘은 산림청에서 ‘국가숲길’로 지정한 8곳 중에서 ‘한라산둘레길’의 사려니숲길(7구간)·절물조릿대길(8구간)·숫모르편백숲길(9구간)을 연이어 총 19.93㎞를 트레킹 한다.현재 지리산둘레길, 대관령숲길, 백두대간트레일, 디엠지(DMZ)펀치볼둘레길, 내포문화숲길, 울진금강소나무숲길, 한라산둘레길, 대전둘레산길 등 8곳이 국가숲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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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20분경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삼나무숲이 울창한 ‘붉은오름 사려니숲길(해발 430m)’ 입구에 도착한다. 구름이 드리워진 흐린 날이고 기온은 영하 1도 정도로 겨울 트레킹으로 장애가 없다. 내린 눈이 녹았다가 얼었다가를 반복한 눈길이어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걷는다.길은 완만하고 평탄하며 2명이 나란히 걸어도 통행에 걸림이 없을 만큼 폭이 널찍하다. 울창한 삼나무숲에서 쏟아내는 신선한 공기와 발을 디딜 때마다 나는 ‘뽀드득’ 소리가 고뇌에 찬 삶에 다시 샘솟는 불굴의 힘과 용기를 준다. ‘신성한 곳’이라는 뜻의 사려니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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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고도를 높여 갈수록 내린 눈은 점점 수북하고, 순백의 눈길 옆으로 삼나무, 편백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등이 번갈아 어우러진 풍광과 구불구불한 산길이 단조로운 트레킹에 큰 변화로 느껴진다. 마치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의 작은 변화가 삶의 큰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붉은오름 사려니숲길 입구에서 5㎞지점(해발 613m)에 이르면 시험림길(6구간)과 사려니길(7구간)이 연결되는 지점을 지난다. 간간이 구름을 뚫고 밝은 햇살이 드러나 풍광이 더욱 빛나고 허벅지에 에너지를 충전시킨다. 시험림길은 오는 5월 15일까지 출입 통제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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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휴식년제 중인 해발 717m, 오름 자체 높이 150m인 물찻오름(水城岳)을 지난다. 물찬오름은 원형 화산체로 분화구에 물이 고여서 형성된 호수인 화구호(火口湖)룰 갖고 있다고 하는데, 다음 기회에 만나기로 한다.고도를 낮춘 듯 아닌 듯하며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걷다보면 질퍽거리는 눈길과 눈이 녹아 속살이 드러난 포장길이 걸음을 더디게 한다.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이 천미천과 새왓내숲길을 지나면 비자림로 사려니숲길 입구(해발 594m)에 도착한다. 사려니숲길(7구간)의 이동 거리는 약 10㎞이다. 이제 비자림로를 따라 개설된 절물조릿대길(8구간)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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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숲길을 걷다가 작은 연못을 내려갔다 올라가서 다시 울창한 삼나무숲 사이를 홀로 걷는다. 홀로 태어나서 홀로 떠나는 삶속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의 이치에 어긋남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이제 다른 자연 환경이 펼쳐진다. 순백의 눈 속에 잔잔한 파도처럼 누운 조릿대가 길을 안내한다. 혹독한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조릿대는 5∼6년마다 한 번씩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에 지상부는 죽는다. 부초(浮草)같은 인생이라지만 떠날 때 한 번쯤은 내 꽃을 피울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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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지를 넘나들면서 조릿대숲길을 한참 동안 걷는다. 명도암입구 삼거리의 비자림로를 가로질러 사려니숲 주차장 방향으로 계곡을 건너간다. 나무와 숲 가지들이 앙상하게 널려 있는 눈길을 걷다가 사려니숲길 주차장 삼거리에서 한라산둘레길로 가면 다시 명림로를 만난다.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명림로를 건너 현무암이 수줍은 듯 눈 속에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야자매트가 미안한 듯 힐끗힐끗 눈치를 보는 숲길을 걷는다. 민오름 입구에서 다시 명림로로 나와 절물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숲길이 아닌 도로 갓길을 걷는다. 이 점이 가장 아쉬운 점이다. 절물자연휴양림(해발 520m)에 도착하여 절물조릿대길(8구간) 3㎞ 트레킹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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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물자연휴양림 매표소에서 입장료 1000원을 지불하고 휴양림 내의 삼나무숲길을 걸으며 ‘장생의 숲길 입구’로 이동한다. 휴양림은 좌우 양쪽에 절물오름과 거친오름을 끌어안고 있다.장생의 숲길로 걷다보면 노루생태관찰원을 지나서 완만한 경사의 눈길을 따라 오른다. 간만에 빨라진 숨소리가 살아있는 느낌이다. 곧이어 삼나무 사이의 질퍽거리는 눈길을 요리조리 피하듯 걸으면서 언제 이 길이 끝날까 싶더니 임도사거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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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사거리에서 숫모르편백숲길을 지나 한라생태숲 방향으로 해발 600m 정도의 샛개오리오름을 오른다. 지금까지 약 16.9㎞, 5시간 50분을 걸었다. 발바닥이 뻐근하고 몸이 피곤하다는 느낌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이제부턴 정신이 육신을 지배하는 단계로 접어든다.자연이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이젠 남은 여정을 보람되게 즐기며 마무리해보자고 생각하며 ‘세로토닌’을 내뿜으며 육신을 달랜다. 눈 아래 무엇이 있든 과거가 어떠하였든 상관없이 눈부시게 밝은 빛을 발산하는 지금처럼 현재에 충실하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수많은 세월을 한자리에서 지켜온 고목들과 마주하며 절물자연휴양림과 한라생태숲 분기점을 지나 한라생태숲 영역으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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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생태숲 경계를 따라 조성된 숫모르숲길을 걸으면서 하얀 언덕을 올랐다가 내려오고, 조릿대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세계를 통과하고,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작은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또한 백설을 헤치고 드러난 푹신한 야자매트가 더욱 붉게 드러나 보인다.숫모르는 ‘숯을 구웠던 등성이’란 뜻의 옛 지명이만,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숫모르숲길과 한라생태숲의 무장애탐방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두 나무의 줄기가 이어진 연리목(連理木)을 만난다. 긴 세월 고로쇠나무와 때죽나무가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면서 한 몸이 되었다. 다르지만 보듬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광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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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애탐방로를 따라 혼효림과 야외교육장, 안내소를 거쳐 휴게광장(해발 585m)에 도착하여 숫모르숲길(9구간) 6.93㎞ 트레킹을 마친다. 한라산둘레길 7~9구간 총 19.93㎞을 걷는 약 7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신성한 자연의 생명을 느끼고 자신을 돌아보는 보람되고 귀중한 시간이었다.오늘 무사히 한라산둘레길 트레킹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부강이엔스㈜ 임직원의 양해와 한라산의 소중한 자연 덕분이었다.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트레킹 이야기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