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짙게 깔리기 전 마지막 세상비추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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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꽃지해수욕장은 해가 질 때 아름답고 장엄한 서해안 3대 ‘낙조(落照)’로 손꼽힌다.림태주 시인이 그의 에세이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에서 “천국이 있다면 전남 순천 ‘와온해변 석양’ 안에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와온해변 낙조보다 더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이 태안 꽃지해수욕장이다.해가 지면서 황금빛 노을에 마치 바다와 할배‧할매바위, 낙조를 보는 나까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해가 지는 모습은 눈으로 관찰이 가능할 정도로 보이다가 어느 순간 서해 저 멀리 끝으로 뚝 떨어진다.낙조는 온종일 세상의 빛을 비추다가 어둠이 짙게 내리기 전 마지막 세상을 더 많이 환하게 세상을 비추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는 것처럼 ‘마지막 찰나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마치 꽃이 지기 전 가장 아름다운 모습과도 같다.낙조는 하루살이 태양의 일몰이지만 인간으로 친다면 일과를 멋지게 마무리하고 휴식시간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고, 낙조의 순간은 마치 경험해보지 못한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꽃지해수욕장은 5㎞의 광활한 백사장과 바다로 나간 남편을 맞이하는 듯 두 바위인 할배바위, 할매바위가 애틋하게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 썰물 때는 두 바위가 마치 한 몸인 듯 모래톱으로 연결된다.할배‧할매바위 너머 붉게 물드는 낙조는 태안을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풍광 중 으뜸으로 꼽힌다. 낙조가 들기 시작하면 바닷가 주변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다. 이때를 놓칠세라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연신 아름다운 낙조를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꽃지해수욕장은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나면서 ‘꽂지’라는 예쁜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꽃지해수욕장은 동해와 달리 바다 깊이가 낮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은 모래 속에서 조개를 찾고 각종 바다 생물들을 관찰하면서 즐겁게 지내기도 한다.연인들은 백사장을 걸으며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며 애틋한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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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해변의 상징인 ‘할배‧할매 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안면도에 기지를 뒀는데, 기지사령관이었던 승언과 아내 미도의 금실이 좋았다. 그러나 출정 나간 승언은 돌아오지 않았고, 바다만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던 미도는 죽어서 할매바위가 됐고, 큰 바위는 할배바위가 됐다는 전설이다.꽃지해변의 할배‧할매바위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이 밀려드는 것은 바위와 어우러진 낙조 때문이다. 석양이 넘어갈 때 할매바위와 할배바위 너머로 아름답게 물드는 일몰 풍광을 피사체에 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다.태안의 해안 신두사구는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사구로 처음에는 아주 생경했다. 신두사구는 전 사구, 사구 초지, 사구 습지, 사구 임지 등 사구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자연여건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구지대이며, 내륙과 해안을 잇는 완충 역할과 해일로부터 보호 기능을 하고 있다.빙하기 이후 1만5000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신두사구는 북서 계절풍을 직접 받는 지역으로, 강한 바람에 모래가 바람에 의해 해안가로 운반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모래언덕을 이룬 퇴적 지형이다.신두리 해안사구는 세계 최대의 모래언덕이자 슬로시티로 지정된 태안이 가장 독특한 생태 관광지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해안사구를 걷는 것도 좀처럼 국내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체험을 맛볼 수 있다.인근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으로 불리는 ‘천리포수목원’을 둘러볼 수 있다.천리포수목원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출신으로 미 24군단 정보장교로 한국에 들어온 고(故) 민병갈(Carl Ferris Miller) 박사가 1970년부터 척박하고 해풍이 심한 천리포 민둥산 18만 평에 수목을 심기 시작해 30년간 1만6000여 종류의 식물이 식재돼 있는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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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는 300년 뒤를 보고 수목원 사업을 시작했다. 나의 미완성 사업이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져 내가 제2 조국으로 삼은 우리나라에 값진 선물로 남기를 바랍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비록 미국인이지만 한국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평생 나무를 가꿔 웅장한 수목원을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태안군 이원면에 있는 ‘솔향기길’에서 걷는 것도 참 좋다. 솔향기길은 짙은 솔 냄새에 일출이 장관이다. 이곳에서는 자연 조각공원과 용난골, 해오송 등을 볼 수 있는데 10.2㎞ 구간에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솔향기길은 출향인 차윤천 회장(71)이 맨손으로 억척스럽게 길을 개척했는데, 코로나 대유행 이전인 2019년에 10만 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솔향기길은 2007년 12월 7일 서해에서 ‘허베이 스피릿호’와 중공업 바지선이 충돌하면서 원유유출사고가 단초가 됐다.당시 전국에서 12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태안으로 달려왔다. 솔향기길 아래 바다는 자원봉사자들이 원유로 뒤덮인 바위와 자갈‧모래를 하나하나 정성으로 닦아내 ‘죽음의 바다’를 되살려낸 기적의 환경극복 현장이다.자원봉사자들은 솔향기길이 나기 전 이곳을 이용해 풀숲을 헤치고 가파른 절벽 아래로 밧줄을 연결해 오르내렸던 곳이다. 그 오솔길을 연결한 것이 솔향기길이고, 120여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보은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