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운세를 뭐하러 연재하죠?”
  • “편집부 여기자가 마음 내키는 대로 합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편집부 여기자는 컴퓨터로 워드를 치는 여직원을 말한다.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는 운세를 오늘은 쥐띠에게 붙였다가 낼은 소띠에게 붙인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편집국장에게 반박했다.
    “그럼 전혀 안 맞는다는 거잖아요? 그런 운세를 뭐하러 연재하죠?”
    편집국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씽긋 웃었을 뿐이다. 최백수는 그 웃음 속에서 독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신문사에서 독자는 왕이다.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이다.
    독자 때문에 신문을 만들고, 독자로부터 호응을 받으면 성공한 신문사다. 반대로 독자로부터 외면 받으면 실패한 것이다. 오늘의 운세가 어떻게 만들어졌든 독자가 관심을 갖고 읽으면 연재할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고쳐질 수가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최소한 생년(生年) 월일(月日)과 태어난 시(時)는 알아야만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빼낼 수 있다.
    년주(年柱) 월주(月柱) 일주(日柱) 시주(時柱)라고 부르는 네 개의 기둥부터 세워야 한다. 기둥이 네 개라고 해서 사주(四柱)라고 하는 것이다. 각 주(柱)마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 구성되는 8개의 글자 즉 팔자(八字)를 다 구성하면 비로소 사주팔자(四柱八字)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의 운명을 감정할 수 있다. 조실부모할 팔자인지, 마누라 덕은 볼 것이지, 자식 복은 많은지 등을 알 수 있다. 이건 필수적인 요소다. 이게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태어난 연도 하나만으로 운세를 점치는 것은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이다. 정확도가 거의 없는 방법이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안 되고, 노력을 안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편집부 여기자가 그날 마음 내키는 대로 조합한 것이나, 역술전문가가 성의껏 봐서 갖고 온 것이나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편집부 여기자가 마음대로 조합을 해도 놔두는 것이다. 결론은 이렇게 만들어진 오늘의 운세는 엉터리란 뜻이다. 볼 가치도 없고 따질 필요도 없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운세를 보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독자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 조심 하라고 되어있으니 해변으로 휴가 가려던 계획을 취소한다거나,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고 했으니 저녁 모임을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다는 것이다. 최백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
    이 말대로라면 오늘 돈 받을 일을 포기해야 한다. 돈을 꿔준 것은 과거의 일이고, 어떻게든 돈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집착하는 것이다. 운세대로 라면 오늘 돈 받으러 가는 걸 포기하는 게 좋다.
    자칫 싸움을 할 수도 있고, 언쟁이 격해지다 보면 난투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자칫 감옥엘 갈 수도 있다. 돈을 좀 늦게 받는 것은 괜찮지만, 돈도 못 받고 감옥에 가는 일만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최백수는 오늘의 운세를 믿을 필요가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그냥 신문에 매일 나니까 장난삼아 가끔 보는 식이다. 만약 그 반대의 사람이 있다고 치자.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는 일을 겪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사람은 어떻게 판단할지를 몰라서 무엇이든 다 해보려고 할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것이다. 동전을 던져보기도 하고, 신발을 벗어서 던져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다급한 사람에게 신문의 운세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최백수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지금도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고 난리를 치기 때문이다. 병신년은 원숭이띠이고, 원숭이해에 태어난 사람은 재주꾼이 많다는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는 재주가 많은 동물이지만, 나무 위에서 잔재주를 피우다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갑자기 올해 자신의 운명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갖는다.
    최백수는 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낸다. 그 위에 자신의 사주팔자를 쓰기 시작한다. 자신의 운명을 나타내는 8개의 글자 중에서 금(金)이 세 개나 된다. 그것도 경금(庚)이다. 금은 두 가지로 나뉜다.

    경금(庚)과 신금(辛)이다. 경금이 가공되지 않은 무쇠라면 신금은 다이아몬드처럼 잘 가공된 보석이다. 경금 사주를 타고 난 사람은 쇠처럼 날카롭고 고집도 세다는 뜻이다. 최백수는 자신의 사주를 생각할 때마다 금(金) 기운이 과다하다는 생각을 한다.
    금 기운이 많은 것 때문에 이 모양 이 꼴로 산다는 한탄도 한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38%나 된다. 사주의 팔 자(字) 중에서 세 자(字)는 38%다. 이렇게 단순하게 계산해도 38%나 되지만 원칙대로 하면 더 많다.
    월지에 있는 금은 비중이 훨씬 높다. 사주를 공부하는 역학자들은 생년월일(生年月日)과 태어난 시(時) 중에서 태어난 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 그럴까?”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일 년 12달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별다른 차이가 없다. 신라 시대의 일 년도 일 년이고, 요즘의 일 년도 일 년이다. 똑같은 일 년일 뿐이다. 이런 이치는 태어난 시간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시간은 아침에 해가 떠서 저녁에 지는 과정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는 뜻이다. 그러나 태어난 월이나 날만은 다르다. 어느 달에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나는 사례가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