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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시장의 얼굴 위에 겹쳐 보이는 사람도 있다. 바로 김병우 교육감이다. 절룩거리는 다리를 목발에 의지하며 법정으로 들어서는 모습이다. 많이 지쳐 보였다. 탤런트처럼 잘생긴 얼굴도 멋져 보이지 않았다.
또 있다. 임각수 괴산군수다. 작은 키가 중국의 등소평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키는 작지만 괴산을 변화시킨 인물이다. 작은 거인이다. 그럼 난 뭘까? 키 큰 소인일까?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다.
무토(戊)라는 글자가 생각난다. 역학적인 개념이다. 모든 것을 다 품는 성격이다. 삼라만상을 다 품어야 태산도 되고, 망망대해도 된다. 맑은 물만 고집해서는 옹달샘도 될 수 없다. 수석만을 고집해서는 작은 동산도 불가능하다.
포용력이 없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글이 있다. 운‧둔‧근이라는 말이다. 이병철 회장이 기업경영을 하면서 되씹었다는 성공철학이다. 기업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運)이 있어야 하고, 운보다 중요한 게 둔(鈍)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지만 되씹을수록 의미가 심장하다,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둔해야지, 너무 예민해서는 아무 일도 못한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이 말처럼 가슴을 저리게 하는 말도 없다.
자신의 약점을 후벼 파기 때문이다. 최백수는 아차 한다. 너무 골똘하게 생각에 빠진 나머지 앞차와 부딪칠 뻔했다. 최백수의 생각은 구만리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적당히 둔해야만 남이 나를 욕해도 견딜 수 있고, 적당히 둔해야만 불운이 닥쳐도 상처받지 않고 감내할 수 있다.
너무 예민해서는 큰일을 할 수가 없다는 이병철 회장의 성공철학에 뼈저린 공감을 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게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다. 최백수는 운전을 조심해야겠다며 2차로로 차선을 바꾼다. 속도를 줄이면서 앞뒤의 간격을 넓힌다.
“이 정도면 안전하겠는데.”
이병철 회장의 성공철학 세 번째는 근(根)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근성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끈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본 말로 표현하면 곤조라는 것이다. 깡패는 깡패 근성이 있어야하고, 제비는 제비 근성이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사실 이 말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느 것을 하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진부한 얘기다. 굳이 이병철 회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더 감동적인 말이 얼마든지 많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비유가 더 감동적이다. 근성은 끈기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지만 소질이라고 이해하면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소질이 있고 없느냐는 성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 문제는 용도와도 관련되어 있다. 어떤 용도로 만들어 졌느냐는 문제에 귀착된다. 요즘 이 말이 인터넷에 확산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최고로 성공한 기업인 이병철이 신봉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단 점이다.”
최백수는 이런 말을 듣고 당장 바꾸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노력해서 될 수 있는 게 있고, 불가능한 게 있다는 것이다.
개가 아무리 노력해도 돼지처럼 둔해질 수 없고, 돼지가 아무리 노력해도 개처럼 사나워질 수 없는 이치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최백수의 눈가에 작은 키의 임각수 군수가 환하게 웃고 있다.
약을 올리는 것 같다. 키 큰 자신이 갖지 못한 장점을 키 작은 임 군수는 갖고 있다. 작은 키의 임 군수를 감히 얕잡아 보지 못하는 것은 그가 보여준 능력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가 군수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괴산은 낙후지역의 대명사였다. 저녁만 먹으면 불이 꺼지는 곳이라고 불릴 만큼 소외지역이었다. 그런 괴산이 임각수 군수가 당선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기피하는 시설만 골라서 유치하기 시작했다. 군부대가 들어오면 처녀들을 다 망쳐 놓아서 시집도 못 보낸다는 의식이 남아있었다.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느냐며 이해는 하면서도 탐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군부대를 유치하더니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변화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확실하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산막이 옛길이었다. 첩첩산중에 있어서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던 오지였다.
그 산골짜기 칠성 댐을 국내 최고의 명승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발상의 전환이었다. 전국행사는 물론 도 단위 행사도 자주 개최하지 못했던 괴산에서 세계적 규모의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은 순전히 군수 개인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이거 사기 아냐?”
최백수는 임 군수에 대한 신뢰가 대단했다 괴산 같은 지역에서 세계적인 규모의 유기농엑스포를 개최한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의심하지 않은 것은 임 군수의 탁월한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현장을 가본 결과 의외였다. 어떻게 해놓았을까? 호기심을 갖고 찾아갔는데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계유기농엑스포라면 적어도 수십 개국이 참가하는 국가별 전시관이 있어야한다.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한국 말고는 단 한 나라도 외국 전시관을 보지 못했다. 사실이 이렇다면 세계란 말을 대회명칭에 넣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전국이란 말을 넣을 수도 없다. 전국이란 말을 넣기 위해서는 각 시도에서 참가해야만 하니까.(매주 월수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