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북한 교과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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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백수는 아침

  • 에 눈을 뜨면 맨 먼저 찾는 게 조간신문이다. 이건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다. 신문을 보기 시작한 이래 수십 년째 계속되는 습관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언제부터인지 너무 일찍 깬다는 것이다.
    신문은 6시는 되어야 오는데 눈은 5시도 되기 전에 뜬다.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혹시 하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어볼 때도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소파에 누워 TV를 켠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로 들으려는 것이다. 어제 저녁 내내 방송하던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도대체 뉴스 감각이 없단 말야”
    이런 불평을 중얼거리면서 채널을 돌린다. 어제 온종일 역사 교과서 문제를 방영했으면 오늘 아침에는 다른 것을 내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다. 물론 새로운 뉴스가 없는 날도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제 종일 내보냈던 뉴스를 제목도 안 고친 채 그 이튿날까지 내보내는 건 성의의 문제다. 한 마디로 시청자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시청자가 새벽에 TV부터 켜는 것은 무슨 일이 없느냐는 궁금증 때문이다. 그 궁금증을 채워줄 의무가 방송에 있다.
    “그래서 시청료를 내는 게 아닌가. 이게 바로 민영방송하고 다른 점이다.”
    가령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면서 역사교과서 문제를 강조하였다는 뉴스를 어제 내보냈으면 그 이튿날은 거기에 대한 반응이라도 취재해서 보도하는 게 기자정신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최백수의 눈가에 불꽃이 튄다. 최백수는 채널을 왼쪽으로 돌릴까 생각하다가 바른쪽으로 돌린다. 또 다른 공영방송은 아직도 파업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원들이 노조를 만들어 싸우느라 알찬 뉴스를 만들지 못한다는 선입관을 아직도 갖고 있다. 결국 채널은 민영방송에 꽂힌다. 뭔가가 분명히 다르다. 민영방송이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돈을 대주는 공영방송은 땅 집고 헤엄치기지만, 민영방송은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당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 열심히 뛸 수밖에 없다, 밤새 일어났던 사건사고 중심으로 뉴스를 방송하는 것을 들으면서 혹시 내 주위에는 무슨 변고가 없는지부터 확인하고 안도한다. 그다음엔 역시 마찬가지다.

    “명칭만 다르지 내용은 비슷하잖아.”
    종편이나 지상파나 보도채널이나 명칭만 다르지 똑같은 내용을 비슷한 사람들이 나와서 떠들고 있다. 최백수의 귀는 다시 현관으로 향한다. 신경을 쓰고 잘 들으면 신문 떨어지는 소라가 들린다. 신문 배달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승강기에서 현관을 향해 신문을 던지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그 작은 소리가 들릴 만큼 신문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귀를 세우고 있는데  “톡” 소리가 난다. 최백수는 금방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잘못 들었나 하는 노파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달하는 사람과 얼굴이 마주치는 게 싫어서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5시 40분을 지나고 있다. 그렇다면 신문이 틀림없다. 늦어도 1, 2분이고 빨라도 2, 3분 차이다. 최백수는 신문을 펼쳐 들면서 방송에서 듣던 소리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백수 입장에서 하루 종일 종편을 보고 있는데 조간신문의 중요기사가 종편을 보는 것처럼 익숙하다. 기사를 정독하자니 눈이 아프다. 안구 건조증 때문이다. 그래서 큰 제목만 대충 읽고 넘긴다. 궁금증이 있어야 작은 제목까지 읽는다.
    그렇게 흩어보는데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의 눈길을 끄는 광고가 보인다. 사설을 싣는 오피니언 난의 하단에 게재된 광고다.
    “국민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이런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교과서란 제목이 눈길을 끈다. 부제는 더 자극적이다.

    “이게 대한민국 교과서인가?”
    “북한 교과서인가?”
    최백수의 생각은 우리 아이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교과서로 역사 공부를 한다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돋보기를 찾아 쓰고 작은 글씨로 눈길을 옮긴다.
    우리 교과서가 김일성 전집 등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김일성이 누구인가?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의 인명을 살상한 민족의 원수 아닌가. 불구대천의 원수가 신봉하는 주체사상을 우리 교과서가 소개하고 있다니! 그 교과서로 우리 아이들이 역사공부를 하다니….
    우리가 격은 피맺힌 원한을 망각토록 만드는 것이다. 섬뜩한 기분을 느낀다. 호랑이는 맹수이니까 잘못하면 잡혀먹힐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바른 교육이다. 만약 호랑이를 애완동물처럼 가까이해도 된다고 가르친다면 그 교육을 받은 아이는 어떻게 되겠는가?
    겁 없이 덤비다가 잡혀 먹힐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은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최백수의 눈길이 옆으로 향한다. 남북분단의 책임을 남한에 왜곡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통성마저도 훼손한다는 내용이다.

    남북이 분단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을 찾아 올라가면 일본의 한일합병이 원천이고,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게 발단이다. 소련이 북한을 점령하는 데 앞잡이 노릇을 한 게 바로 김일성 아닌가.
    그래서 우린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도당이 불구대천의 원수이고, 또다시 이 땅을 유린하지 못하도록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국방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천인공노할 만행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지금도 일촉즉발의 전쟁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다. (매주 월수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