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강천 송수관로 누수 1만7천여 가구 ‘단수 아우성’가구‧음식점‧카페‧어린이집 등 단수사태로 ‘재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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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 속에 충북 증평지역 단수로 인해 3일 째 1만7천여 가구가 수돗물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자영업자들은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화장실도 사용하지 못하는 등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사진은 6일 오전 충북 증평군 도안면 화성6리 화성보 수먄 아래 지하에 묻혀 있는 송수관로가 파손돼 한국수자원공사와 증평군이 굴착기를 긴급 투입해 송수관로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양승갑 기자
8월 5일 새벽, 충북 증평군 도안면 보강천 인근의 송수관로에서 시작된 누수는 단 한순간에 1만 7천여 세대의 물길을 끊어놓았다. 그리고 사흘째인 7일 오전까지도 증평읍은 여전히 불볕더위 속 마른 수도꼭지 앞에서 고통을 견디고 있다.“화장실도 못 써요, 장사 접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자영업자들이었다. 도심 속 식당, 카페, 커피숍, 고깃집, 어디를 가든 문은 굳게 닫혔다. 생수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버티며 손님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화장실을 못 쓰니 손님을 받을 수 없죠.” 고깃집 대표 김 모 씨의 말은, 단수 사태가 단지 불편을 넘어 생계 문제로 직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한 커피숍 주인은 “단수 이후 손님을 아예 받지 않는다”며 “깨끗한 물이 아니면 기계에 녹이 슬고 고장이 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식당 주인은 “오늘도 버릴 게 많아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어린이집은 단축 수업을 하고 간편식으로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였으며, 화장실은 생수를 구입해 아이들의 급한 용변을 처리하고 있다.“군민에게 죄송”…하지만 책임은 없습니까. 증평군과 한국수자원공사는 사고 발생 직후부터 밤샘 복구 작업에 돌입했고, 급수차 58대를 동원하고 10만 병이 넘는 생수를 주민들에게 나눴다고 밝혔다. 또 생수 공급소를 설치하고 마트 6곳과 연계해 응급 급수에 나섰다. 이재영 증평군수는 “예고 없는 사고로 큰 불편을 드려 송구하다”며 “하루빨리 물 공급을 정상화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그러나 피해 주민 다수는 여전히 “도대체 언제 물이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이틀 넘도록 안내도 제대로 없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보여주기식 대응보다 선제적, 투명한 정보 제공이 절실한 순간이다.한 상인은 “이런 일 처음이지만, 급수차가 잘 와서 잘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주민은 “이게 재난이지 뭐냐”며 한탄했다. 재난은 눈에 보이는 파괴만으로 오지 않는다. 일상을 갉아먹고, 기본권을 위협하는 것도 충분한 재난이다.사고는 어쩔 수 없다지만, 단수 사태 대응은 제대로 준비돼 있었나? 단수는 사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이번처럼 주요 송수관이 노후화된 채 방치돼 있었다면, 언제든 같은 사태는 반복될 수 있다. 더구나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와 침수 등은 인프라 관리에 있어 과거보다 훨씬 더 정밀한 대비책을 요구한다.그런 점에서 “사고는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는 행정의 무책임을 숨기는 말일 뿐이다. 복구보다 중요한 건 예방이다. 증평군과 수자원공사는 사고 발생 전, 관로에 대한 전수조사와 점검을 제대로 했는가. 만약 송수관의 내구연한과 관리상태를 사전에 점검하고, 비상 공급망을 체계적으로 운영했더라면 피해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이번 사태는 소규모 군 단위 지역이라 여파가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이는 더 큰 위기의 전조일 수 있다. 전국 각지에 설치된 광역 상수도망, 배수지, 급수체계의 점검이 없다면 이 같은 ‘소리 없는 재난’은 어디서든 터질 수 있다.재난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사람들은 종종 ‘재난’을 태풍, 지진, 산사태처럼 극적인 장면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증평의 사례는 일상이 멈추고 기본적인 위생과 생계가 무너지는 사태 역시 ‘재난’임을 보여준다.단수로 인해 샤워를 못 하고, 식사도 못 하며,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이 불편은 단지 참을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기본 조건이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다. 물은 생명이다. 수도 하나가 멈춘 순간, 수천 명의 삶이 함께 흔들렸다. 하지만 물이 다시 나오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끝나서는 안 된다. 행정은 묻고 반성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겼고, 왜 더 빨리 해결하지 못했는지를.증평의 마른 수도꼭지가 대한민국 재난 대응 시스템의 ‘약한 고리’를 드러냈다. 우리는 이 고리를, 더 큰 파열음이 나기 전에 단단히 조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