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인 분위기의 람사르 습지 탐방[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편
  • ▲ 물영아리오름.ⓒ진경수 山 애호가
    ▲ 물영아리오름.ⓒ진경수 山 애호가
    물영아리오름(해발 508m)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산 188번지에 위치하고, 2006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고, 2000년 12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제주도 대부분의 오름은 분석구로서 투수성이 높아 물이 고이지 않지만, 물영아리오름을 비롯해 물찻오음, 물장오리오름 등은 정상에 화구호 습지가 형성돼 있다.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야생동물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생태에 대한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오름이다. 탐방로 입구에는 지역주민 자연환경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다. 
  • ▲ 올레길 4코스에서 만난 등대.ⓒ진경수 山 애호가
    ▲ 올레길 4코스에서 만난 등대.ⓒ진경수 山 애호가
    검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귓전을 울리는 새벽, 제주민속촌주차장입구에서 남원포구까지 이어진 올레길 4코스(총 길이 19km)의 일부를 걷는다. 

    스테이하얀달을 출발해 확 트인 바다를 보며 남태해안로를 따라 찬찬히 발걸음을 옮긴다. 오고 가는 파도 소리와 함께 지난 아름다운 추억이 새록새록 뇌리를 스친다.

    새로운 바람이 불면 새로운 파도 물결이 일 듯이 오고 가는 새로운 인연들, 선연(善緣)이 있었기에 악연(惡緣)도 있었던 시절, 그 모든 것이 파도의 하얀 포말처럼 사라진다.
  • ▲ 현무암 사이에서 만난 용천수.ⓒ진경수 山 애호가
    ▲ 현무암 사이에서 만난 용천수.ⓒ진경수 山 애호가
    태흥1리쉼터부터는 도로를 벗어나 해변가를 걷는다. 등대를 지나고 억새가 피어난 길을 걷다 보면 ‘봉아니 불턱’을 만난다. ‘불턱’은 예전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이다.

    현무암을 딛는 발바닥의 촉감이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을, 무거움보다는 가벼운 마음을 일으키니 어린아이처럼 신바람을 탄다. 눈길, 마음, 발길 닿는 대로 옮겨 다니며 즐기다가 현무암 사이에서 물이 솟아나는 용천수를 만난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걸었던 올레길 4코스, 멸종위기 야생생물2급 ‘황근’ 복원지를 만나 후 3.5km 거리를 마치고,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의 ‘물영아리 오름’을 만나러 발길을 돌린다.  
  • ▲ 초지 옆으로 이어진 탐방로.ⓒ진경수 山 애호가
    ▲ 초지 옆으로 이어진 탐방로.ⓒ진경수 山 애호가
    물영아리 오름 주차장에 도착하니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생태공원을 지나 탐방안내소에서 자연환경 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후 오름으로 향한다.

    평지에 설치된 나무토막을 밟으며 초지(소 방목지) 경계를 따라 이동한다. 비구름에 덮인 오름이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니 여느 산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소몰이길과 오름습지탐방로 갈림길에서 오름습지탐방로로 방향을 틀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삼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진초록의 어둠이 내린 길엔 빗방울마저 감춘다.
  • ▲ 삼나무 숲길 입구.ⓒ진경수 山 애호가
    ▲ 삼나무 숲길 입구.ⓒ진경수 山 애호가
    삼나무 숲을 지나자 오름을 오르는 계단길과 능선길 갈림길을 만난다.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지만 최단 거리로 다녀올 수 있는 계단길이 공사 중이라, 경사가 완만한 좀 먼 거리인 능선길을 걷는다.

    삼나무 숲길을 지나면서 광활하게 펼쳐진 목가적인 풍경의 초지를 조망하며 소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상상하며 걷는다. 쉼터를 지나 눈이 녹기 시작한 이른 봄, 노랗게 피어나 기쁨을 준다는 복수초 군락지를 지난다.

    매트가 깔린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자 다시 삼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굽은 마음과 시들해진 의욕이 저절로 곧고 푸르른 생기를 돋게 한다. 삶에 지쳐있을 때 위로가 되는 길이 아닐까 싶다.
  • ▲ 다양한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는 삼나무 숲길.ⓒ진경수 山 애호가
    ▲ 다양한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는 삼나무 숲길.ⓒ진경수 山 애호가
    어느새 빗방물을 점점 굵어지니 삼나무 숲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가던 길을 되돌릴 수 없으니 내 몸에 생명수로 여기며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중잣성 생태탐방로와 만난다. 잣성은 조선시대 제주도 중산간 목초지에 쌓아 만든 목장 경계용 돌담이라 한다. 중잣성은 하잣성과 상잣성 사이에 만들어져 목장의 경계 기능을 했다고 한다.

    하잣성은 말이 농경지로 들어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을, 상잣성은 말이 삼림지역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한다.
  • ▲ 중잣성 생태탐방로.ⓒ진경수 山 애호가
    ▲ 중잣성 생태탐방로.ⓒ진경수 山 애호가
    중잣성 생태탐방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삼나무 숲길은 오름 안쪽으로 휘어져 오르막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구불구불 이어진 숲은 가을 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많은 오름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닿았지만, 비구름만이 진하게 내려앉았다. 이곳은 영아리가 자리한 표선면과 물영아리가 자리한 남원읍의 경계인 송천이다.

    내리는 비를 흠뻑 맞으며 자연숲길을 걸어 산정분화구 입구에 이른다. 이제부터 가파른 계단이 계속되는 능선탐방로가 시작된다.
  • ▲ 가파른 계단을 이룬 능선탐방길.ⓒ진경수 山 애호가
    ▲ 가파른 계단을 이룬 능선탐방길.ⓒ진경수 山 애호가
    굵어지는 빗줄기의 하강 속도에 맞춰 계단을 한달음에 올라 해발 508m의 오름정상에 닿는다. 그리고 다시 계단은 ‘물의 수호신’이 산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 분화호로 내달린다.

    분화구의 깊이는 약 40m로 2100~2800년 전에 퇴적됐으며, 퇴적층의 깊이가 최대 10m에 이른다는 습지를 만난다. 

    데크로 연결된 습지전망대에서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산정호수를 감상한다. 물속을 가득 메운 수초는 수줍은 듯 불그스레한 모습을 띤다.
  • ▲ 물영아리 오름의 분화구 습지.ⓒ진경수 山 애호가
    ▲ 물영아리 오름의 분화구 습지.ⓒ진경수 山 애호가
    떨어지는 빗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하니 습지에서 계단을 올라 정상 오름에 이른다. 이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1960년대 식재된 삼나무 군락지를 지나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촉촉해진 옷처럼 습지보호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에 마음이 감동에 젖는다. 이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탐방로 입구에서 신발과 바지를 털고 들어가도록 한다.

    큰 소리내지 말고, 음악감상은 이어폰으로 혼자만 듣고, 정해진 탐방로를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남기고 갈 것은 발자취, 가져갈 것은 아름다운 추억만 가져가야 한다.
  • ▲ 제주 카멜리아 힐의 가을 풍경.ⓒ진경수 山 애호가
    ▲ 제주 카멜리아 힐의 가을 풍경.ⓒ진경수 山 애호가
    바람같이 떠나가는 가을의 풍경을 제주도 서귀포 안덕면 상창리에 조성된 카멜리아 힐에서 만끽한다. 이곳은 각종 동백과 함께 야자수 등 각종 조경수가 함께 어우러진 수목원이다.

    열정과 사랑으로 제주의 자연을 담은 이 수목원에서 사람이 지역을 바꾸고, 자연생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가 생각을 바꿔야 하는지도 모른다.

    계절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주는 자연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때맞춰 생각과 행동이 무르익어 가는 세상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