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향년 94세로 별세…발인 3일 오전 청주성모병원, 장지 충남 서천 선영서울대 섬유공학과 졸업…태광산업㈜ 임원·1972년 2월 ㈜대원모방 창업2001년 제일모직 아이비클럽 인수·2000년대 칸타빌 브랜드 론칭…‘명품 아파트 건설’1984년 대원 본사 청주이전·15년간 청주산단이사장 맡아 생산액 6조→13조 키워
  • ▲ 지역 경제계의 큰 별이 졌다.전영우 ㈜대원 회장이 지난달 29일 밤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양승갑 기자
    ▲ 지역 경제계의 큰 별이 졌다.전영우 ㈜대원 회장이 지난달 29일 밤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양승갑 기자
    지역 경제계의 큰 별이 졌다. 

    전영우 ㈜대원 회장이 지난달 29일 밤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1930년 충남 서천서 태어난 고 전 회장은 서울대 공과대학 섬유공학과를 졸업했으며, 30대에 태광산업㈜에서 상무이사를 지낸 뒤 1972년 2월 ㈜대원모방을 창업했다.

    전 회장은 평범한 회사원에서 중견기업 오너로 성공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태광산업에서 소모 방적 엔지니어로 부산공장장까지 지내며 회사 창업자인 고 이임용 회장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 회장은 부산 공장 일부를 인수해 독립했다. 

    1984년 충북 청주 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한 전 회장은 부산공장 부지를 활용하기 위해 ㈜대원에 건설사업본부를 두고 아파트 사업에 진출했다. 이것이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과 주택 경기와 맞물려 성장 가도를 달렸다. 이어 2001년에는 제일모직으로부터 인수한 학생복 아이비클럽을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로 이끌었다. 전 회장은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70대의 나이에 아이비클럽 교복을 입고 TV광고에 출연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원의 건설 사업은 수도권 1기 신도시 건설 참여를 계기로 급격히 성장했다. 1기 신도시는 노태우 정부의 집값 안정과 주택난 해결을 위해 서울 근교에 건설한 신도시로 성남 분당 신도시, 고양 일산 신도시, 군포 3번 신도시, 안양 평촌 신도시까지 5곳이 추진됐다. 그동안 수도권 진출 기회를 엿보던 대원에게 1기 신도시 개발은 절호의 기회였다. 대원은 1989년 서울사무소에 주택사업부를 신설하고, 수도권 신도시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대원의 첫 신도시 개발 사업은 평촌 신도시에서 진행됐다. 성공적이었다.

    수도권 1기 신도시에 지은 대원 아파트는 전영우 회장의 경영 철학이 잘 반영된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1기 신도시의 경우 많은 아파트를 단기간에 짓다 보니 모래가 부족해 바닷모래를 쓰거나 한겨울에도 레미콘 타설을 강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원은 이러한 부실 공사를 철저하게 지양했다. 가장 좋은 모래를 사용해 강도를 기준치대로 고수했고, 영하 이하로 내려가면 레미콘이 제대로 굳지 않는다는 점을 중시해 공사를 중단시켰다. 이 때문에 대원 아파트는 콘크리트가 강해 못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의 안전성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사실이 입소문을 타고 수요자들에게 퍼지며 빠르게 인지도를 키워나갔다.

    대원은 1990년대 중반부터 청주 지역의 주택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청주 지역의 첫 번 째 대규모 아파트 프로젝트는 1997년 8월 준공한 가경동 대원 아파트였으며, 율량동 대원칸타빌은 최고의 아파트로 꼽힌다. 대원이 충북 지역의 대표 기업으로 점차 자리를 굳히며 1990년대에는 지역 관급공사 수주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대원은 2000년대 칸타빌 브랜드 론칭과 함께 전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이는 대원이 청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역 건설업체를 벗어나 전국 단위의 건설사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함께한 고 전영우 회장은 1984년 충북 청주 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하며 회사 경영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 ▲ 전영우 회장은  청주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으로 15년 동안 재직하며 지역 소재 기업들의 성장과 근로자들의 복지 향상에 기여했다.ⓒ(주)대원 50년사
    ▲ 전영우 회장은 청주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으로 15년 동안 재직하며 지역 소재 기업들의 성장과 근로자들의 복지 향상에 기여했다.ⓒ(주)대원 50년사
    그중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청주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으로 15년 동안 재직하며 지역 소재 기업들의 성장과 근로자들의 복지 향상에 기여한 것이다. 

    전 회장이 청주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추대된 것은 2000년 3월이다. 1984년 청주에 뿌리를 내린 대원은 당시 청주 지역의 섬유·건설 분야 대표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공단 측에서는 전 회장의 리더십과 추진력이 지역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을 확신하고 이사장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으며, 전 회장은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에서 이를 수락했다.

    전 회장은 2000년 3월 이사장으로 선출된 직후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것은 정부와 산업단지 기반 조성 사업이었으며, 지방산업단지 최초로 생태산업단지 구축 사업을 추진했다. 제12대 임기 때는 청주산업단지 비즈니스센터 건립을 이뤄냈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청주성모병원 장례식장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경제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김동응 청주산업단지 전 전무이사는 “고인께서는 15년 동안 청주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으로서 지역 기업들의 경영활동 지원과 기업 문화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재직하시는 동안 전체 업체 수도 배 이상 증가하고 전체 생산액도 6조원에서 13조 원으로 증가하는 뒷받침을 했다”고 말했다.

    빈소를 찾은 이태호 전 청주상공회의소 회장은 “전 회장님은 1984년 부산을 떠나 청주로 본사를 옮기며 지역사회에 많은 애정을 쏟았다”며 “전혀 연고가 없는 타지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청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이곳에서 대원을 굴지의 섬유·건설 기업으로 키워낸 분”이라고 추억했다.

    박성규 전 중부매일 회장은 “고인께서는 청주가 고향인 그 어떤 기업인보다 지역사회에 많은 공헌을 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전 회장님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노력과 공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

    고인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함 이관호·이은희 부사장 등 임원들은 “회장님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널 정도로 사업 준비를 철저하게 하시는 분이었다. 회장님과 함께 창업 초기 휴일 없이 일하며 오늘의 대원을 이룬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차태환 청주상공회의소 회장은 “고인께서는 신중한 판단력과 강한 추진력으로 섬유 분야에서 건설 분야까지 확장하며 대원을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오늘 지역 경제계의 큰 별이 졌다”고 아쉬워했다.

    1930년 10월 3일 충남 서천군 종천면에서 태어난 고 전영우 회장은 2024년 10월3일 고향 선영에 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