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2005년에 학술 교류차 열흘가량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다. 20여 년이 되었으니 꽤 오래전의 일이 되었지만, 나의 방북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노무현 정부 때여서 대북 교류 사업이 활발했고, 그 덕에 필자 같은 평범한 사람도 북한에 갈 기회가 있었다. 평양 인민대회당에서 학술발표회 일정이 있었는데, 그때 대회당 들어가니 한복 차림의 미녀 안내원들이 로비 곳곳에 서서 우릴 반겨주었다. 참 크게 환대한다고 생각하면서 로비를 걷다가 무심코 뒤돌아보았는데 안내원들이 우리 일행이 지나갈 때는 로비 불을 켰다가 모두 지나가고 나면 바로 로비 불을 끄는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불이 환히 켜진 인민대회당 로비를 걸었지만 실제로는 우리 일행이 지나갈 때 안내원이 스위치를 켰다가 지나간 후엔 스위치를 끄는 ‘인간 센서 조명’ 구역을 지나고 있었던 게다. 북한의 전력 사정이 열악한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당시 남북 교류가 활발했으나 입북 절차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중국 선양에서 여권 대신 북한 출입증을 따로 발급받아서 입북했다. 선양 공항에서 구소련제 고려항공 여객기에 탑승했는데, 입구에서 승무원이 대나무에 종이를 붙인 조악한 부채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1950년대 초등학교 시절에 보았던 그런 부채여서 용도가 궁금했는데, 탑승하자 바로 그 용도를 알 수 있었다. 여름철이라 기내가 찜통인데도 비행기 시동을 걸지 않아 에어컨이 돌아가지 않았던 게다. 이륙 시동할 때까지 부채로 기내 찜통더위를 견디라는 친절한 배려였던 게다. 

    모두 탑승한 후에 엔진 시동을 걸자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데 기내 풍경이 참 괴이했다. 에어컨 바람구멍에서 하얀 수증기가 나오는 광경이 마치 비행기 내부가 식품 마트 채소류 냉장 전시장 같았고 좌석에 앉은 승객들은 신선 코너 진열품처럼 보였다. 사진 촬영이 제한되어서 그런 광경을 찍을 수는 없었고, 오히려 평양까지 비행기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하자마자 승객이 내리기 전에 바로 엔진을 꺼서 일행은 찜통 경험을 한 번 더 했다. 

    #2. 20여 년 전의 방북 기억을 반추하면서 요즘의 북한 소식을 들어 보면 북한은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무기 개발 외에 인민 생활에서 바뀐 게 없는 정지된 사회이다. 핵무기와 미사일 등 공격 무기 개발에만 돈을 쏟아부어서 인민의 생활 환경은 전혀 향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삶이 더 나빠졌다는 뉴스를 듣는다.

    얼마 전 신문에서 북한 주민 20~40가구 중 메주를 쑤는 집이 3~4가구밖에 안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북한 경제 상황이 이전보다 더 나빠져서 인민들이 콩을 살 형편이 안 되어 메주를 쑤지 못해 다음 겨울을 지낼 건건이 반찬 된장을 준비할 수 없어 걱정이 태산이라는 소식이다.

    형편이 어려운 인민들이 건건이 용 된장조차 못 만든다는 기사를 보면서 60~70년 전 초등학교 시절 이웃 친구 집에서 보았던 인자하신 친구 할머니 기억이 났다.

    친구 집에서 놀고 있는데, 친구의 할머니께서 아이를 업은 젊은 여인을 장독대로 데리고 가서 바가지에 된장을 퍼주셨다. 친구 할머니 말씀은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아이 엄마가 소금을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는 얘기를 저잣거리에서 들으시고 아이 엄마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된장이라도 가져가면 소금 먹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며 된장을 담아주신 거였다. 그러시면서 어렵더라도 열심히 살라고 등을 두드려 주시는 모습이 어린 나에게도 기억으로 강하게 남아있다. 

    1950년대에는 우리도 지독히 가난했다. 그렇더라도 밥술이라도 뜰 수 있는 집에선 어려운 이웃을 보면 형편대로 나름의 구휼을 베푸는 미풍이 있었다. 생활 속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던 게다.
                          
    반찬이라곤 주로 푸성귀뿐이었던 옛날엔 된장과 김장 김치가 건건이 반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때와 비교할 수도 없는 풍요로운 요즘에도 된장이 없는 집을 상상하기 어렵다. 된장은 그만큼 우리의 반찬 먹거리 기본 재료이다. 그런데 북녘 동포들이 콩을 구하지 못해 메주 된장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할 만큼 살림이 어렵다는 소식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일설에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여 군수지원 체제가 무너졌고 사단 단위부대도 식량 지원이 안 된다는 소식도 있었다. 군부대도 각자도생한다는 얘기다. 엊그제 뉴스에선 평양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배급 체제가 무너져서 인민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남쪽에서 많은 구호물자가 흘러갔던 20여 전 전 방북 때에도, 북에서 보여주던 선전물에서 필자는 그들의 궁핍한 모습을 보았다. 핵무기 등 대량 살상 공격 무기 개발로 돈줄과 구호 원조가 막힌 지금 인민의 살림살이가 그때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피폐해진 건 짐작하지만 인민들이 된장 메주도 못 쑤는 지경이라면 북한 인민의 삶이 상상 이상으로 팍팍하다는 얘기이다.

    #3. 모 종편 방송에 탈북민 얘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다. 요즘에는 김정은 눈치를 보지 않고 북한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 같아서 휴일 늦은 방영 시간에 졸음을 참으면서 보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조선시대보다도 못한 북한 정권의 비인간적 작태와 폭정에 고통받는 인민의 실상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 북한은 최소한의 삶도 못 지켜주는 지옥 같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탈북민 관련 책을 통해 김 씨 세습왕조의 폭정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탈북민들의 생생한 경험의 얘기를 통해 김씨 왕조의 폭정이 오래 가서는 안 되고 오래 갈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도 이즈음에서 국제 자유 진영과 협력해서 모든 방면으로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북한 주민 구조 정책을 펼쳐야 한다.

    #4. 새해 들어 부쩍 거칠어진 김정은과 김여정의 발언에는 체제 붕괴 불안감이 읽힌다. 예로부터 치자(治者)의 기본은 백성이 등 따습고 배불리 먹게 다스리는 건데 북의 김 씨 세습왕조는 그럴 능력도, 그럴 의지도 없고 권력만 지키려 하니 김정은 스스로도 매일 매일이 좌불안석일 터이다. 

    제국의 흥망사에서 망조(亡兆)가 든 나라에서 일어나는 공통적 현상이 있다. 백성을 제대로 건사 못하고 소수 권력이 벽을 치고 독재자를 옹호하다 망하는 것, 튼튼한 제방이 하찮은 쥐구멍으로 붕괴하듯 권력의 정보망이 아무리 치밀해도 완벽 차단하기 어려우니 별것 아닌 하찮은 일로 망하는 것이다. 독일 통일 과정도 그랬다. 북의 김씨 왕조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핵무기가 절대로 김씨 왕조를 지켜주지는 못한다는 거다.

    핵무기 개발에 들일 돈으로 인민을 배불리 먹게 하면 차라리 김씨 왕조의 명줄이 조금이나마 늘어날 수는 있을 거다. 자고로 백성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 나라는 필망하기 마련이다. 된장 메주도 만들지 못할 만큼 인민을 굶기면 철옹성 같은 김씨 왕조도 같은 순서로 역사의 뒤안길로 가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은 김정은의 호작질 도발도 철저히 막고 김씨 왕조의 붕괴에도 완벽하게 대비해야 한다. 하늘은 예로부터 인민을 굶기는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게 두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