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一寺 二大雄殿 장곡사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청양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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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 중앙에 자리 잡은 칠갑산(七甲山, 해발 561m)은 청양군 대치면 광대리에 위치한다. 차령산맥에 솟아 있는 이 산은 ‘충남의 알프스’라 불릴 정도로 많은 등산객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며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이 산의 이름은 만물생성의 7대 근원인 ‘칠(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갑(甲)자를 사용해 생명의 시원(始原)이란 의미로 칠갑산(七甲山)이라 불리게 됐다고 전한다.이 산에는 일곱 개의 저마다 특색이 있는 등산로(산장로, 사찰로, 칠갑로, 휴양로, 지천로, 장곡로, 천장로, 도림로)가 있다.이번 산행은 ’사찰로‘를 통해 칠갑산 고스락에 오른 후 ’장곡로‘로 하산한다. 즉 ‘장승공원 주차장~장승공원~장곡사~거북바위~칠갑산 고스락~삼형제봉~금두산~백리산~장승공원 주차장’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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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공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바로 옆에 있는 칠갑산 장승공원(長丞公園)을 둘러본다. 이 공원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청양군에서 1999년에 조성했다.이 공원에는 키 높이가 10m가 되는 전국 최대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을 비롯해 청양마을 장승, 시대별 장승, 창작 장승, 외국 장승 등 300여기를 재현해 놓았다.장승공원을 둘러보는 내내 각양각색의 많은 장승이 제각기 다양한 표정으로 정겹게 다가온다. 장승공원의 끝자락에는 ‘콩밭 매는 아낙네상’이 세워져 있다.이 상은 조운파 작사·작곡, 주병선이 노래한 ‘칠갑산’의 노랫말을 형상화한 것이다. 잠시 그 앞에 서서 ‘콩밭 매는 아낙네야 칠갑산이 흠뻑 젖는다’라며 콧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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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를 지나 콘크리트 길을 걸어 약 1.0㎞ 떨어진 장곡사(長谷寺)로 향한다. 길가로 만개한 하얀 개망초와 노란 금계국이 꽃을 내려놓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아직도 남은 꽃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반긴다.장곡사 길로 접어들자마자 장곡사 일주문을 만난다.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一心)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의미를 되새긴다.그렇다. 지금 금계국이 꽃을 버리는 것은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니 만일 때늦게까지 집착하여 꽃을 버리지 못한다면 생명을 잉태하는 씨앗이 될 수 없을뿐더러 설사 씨앗을 맺는다 할지라도 부실할 것이다.이렇듯 나라는 것, 내 것이라는 것에 집착을 내려놓으면 탓할 일도 원망할 일도 없으니 긍정의 힘으로 삶이 더 밝아지고 알찬 열매를 맺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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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청록의 숲길로 들어서니 인도에는 야자매트가 깔려있고, 청아한 새소리가 마음과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 지금 접하는 자연의 숨결이 훌륭한 법문이 되니 속세의 번잡한 마음과 생각을 서서히 내려놓게 된다.울창한 느티나무 두 그루 아래에 마련된 등산객 주차장을 지나 장곡사 해우소에서 근심을 내려놓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장곡사를 바로 보니 범종루(梵鍾樓)와 운학루(雲鶴樓)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장곡사(長谷寺)는 신라 문성왕 12년(850년)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사찰이다. 국보2점과 보물4점을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 절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한 사찰에 대웅전(大雄殿)이 둘이 있는 절이다.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지 않고, 처음 만나는 하(下)대웅전에는 약사불이 모셔져 있고, 상(上)대웅전에는 비로자나불과 약사불이 모셔져 있다. 약사불은 일념으로 기도하면 난치병이 낫는 가피력(加被力)을 지닌 영험 있는 부처님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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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아침 햇볕이 무척이나 뜨겁게 내리쬐는 가운데 사찰을 둘러보니 땀이 줄줄 흐른다. 상대웅전과 응진전(應眞殿)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면 삼성각(三聖閣)을 만난다.이곳에서 장곡사의 가람 배치를 조망한다. 짙은 청록 속에 피어난 한 송이의 연꽃처럼 우아한 모습이다. 고목과 함께 어우러진 천년고찰의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삼성각 옆에는 곧바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이정표에서는 장곡 주차장으로부터 칠갑산 고스락까지 약 4.3㎞라고 알린다. 등산로 초입부터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올라 등성이에 오르면 각목 계단이 힘찬 생명의 숲을 가른다.계단도 끝을 보이면서 널찍한 등산로로 바뀌고, ‘칠갑산 거북바위의 유래’에 대해 빼곡하게 적어 놓은 해설판을 만난다. 이렇다 할만한 절경이 거의 없는 도립공원에서 스토리텔링의 노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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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산길의 소나무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톤치드 세계로 푹 빠져든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잘 정리된 등산로는 숲치유 산길로 손색이 없다.이어 생명력이 넘치는 울창한 청록의 참나무 숲길이 배턴을 이어받는다. 참나무 숲길 한가운데 우뚝 솟은 소나무 둘레로 쉼터가 마련돼 있다.곳곳마다 설치된 이정목과 위치표지판은 등산객의 안전한 산행을 이끈다. 평탄한 길을 걷고 나면 곧이어 계단이 이어지는 반복되는 산길을 걷는다.구릉을 넘는 구간은 가능한 비탈로 완만하게 등산로를 개설한 것이 칠갑산 등산로의 특징이다. 그래서 상행 시에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구간이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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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락을 0.9㎞를 앞두고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가팔라지는 계단이 이어지고, 널찍하고 평탄한 등산로가 밋밋하다 느껴질 때쯤 소나무 숲 사이로 파고든 울퉁불퉁한 돌덩이 구간을 지난다.곧이어 다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자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칠갑산 아흔아홉골’ 전망대이다. 이곳에서 삼형제봉과 칠갑산 등성이 만들어낸 아흔아홉골의 풍광을 감상한다.이곳 외에는 경관이 그리 좋지 않은 칠갑산이다. 그러나 산이 부드럽고 숲은 짙어 등성이를 따라는 걷는 산행의 즐거움이 있다.칠갑산 고스락을 향해 계단을 오르다가 계단이 사라지고 나면 고스락을 0.2㎞를 앞둔 삼형제봉 세거리를 지난다. 다시 계단이 활기찬 숲속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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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이 사라지고 이어지는 평탄한 산길은 참나무 숲이 울창한 비단결 같다. 온갖 세파를 겪으며 익어가는 삶을 사는 노인의 깊은 주름처럼, 참나무 밑동이 세월의 흔적을 여여(如如)하게 드러낸다.자연은 진리를 외면하거나 왜곡하지 않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의 알량하고 얕은 지식으로 간혹 진리를 오염시키는 망동을 저지른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럽고, 지구의 환경이 병들어 아픈 것이다.이제 고스락을 앞두고 등성이가 몸을 일으킨다. 계단 길옆으로 평상이 설치되어 등산객들의 쉼터를 제공한다. 계단 막바지에 만나는 노란 금계국이 세상을 밝히니 상쾌한 기분이다.드디어 해발 561m의 칠갑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너른 평지에는 헬기장 표시가 돼 있고, 오석의 고스락 돌 옆에 ‘칠갑산 유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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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로 이정목 옆에는 ‘도립공원 탐방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도림로 이정목 옆에는 등나무 쉼터가 설치되어 있다. 그 아래 통신중계탑이 우뚝 솟아 있다.고스락 둘레로 데크와 긴 의자가 설치돼 편히 쉴 수 있으며, 제단(祭壇)에는 ‘통일, 안녕, 건강을 칠갑 영산에 기원합니다.’라고 새겨져 있다.산장로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와 숲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삼형제봉 꼭대기 외에는 사방이 숲으로 가려져 조망이 거의 없다. 올랐던 길을 따라 하행하다가 세거리에서 삼형제봉으로 방향을 튼다.안부에서 삼형제봉으로 숲길을 오르면서 중나리꽃 한 송이를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 길을 걷는 등산객들에게 그런 마음을 전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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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고스락에서 1.3㎞를 걷다 보면 어느새 해발 544m의 삼형제봉에 도착한다. 이곳은 사방이 숲으로 우거져 조망이 전혀 없다. 이곳에서 장곡 주차장으로 하산한다.하행 초반은 가파른 경사의 흙길과 계단을 내려가지만 이후 완만하게 경사진 산길이 톱니처럼 이어진다. 마치 가속 페달을 떼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듯이 말이다. 이런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다.삼형제봉에서 약 2.1㎞ 하산하면 해발 277m의 금두산에 도착한다. 다시 백리산으로 향하는데 구릉을 내려갔다가 올라갈 즈음에 백리산인가 기대하면 아니다. 이런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걷다가 드디어 해발 220m의 백리산에 이른다.마치 삶 자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후 급경사 계단을 약 400m 내려와 장곡길과 마주친다. 장곡천을 건너 관리사무소를 지나서 해발 77m의 장곡 주차장에 도착하면 약 11㎞의 산행이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