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다리기 주민·관광객 수만명 어우러진 ‘대화합 한마당’ 줄다리기, 암줄과 숫줄 결합으로 풍요 기원하는 ‘전통민속’
  • ▲ 2022년 충남 당진 기지시줄다리기축제 중 줄다리기 경기 장면.ⓒ당진시
    ▲ 2022년 충남 당진 기지시줄다리기축제 중 줄다리기 경기 장면.ⓒ당진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에 한해의 풍요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동제, 달집태우기, 줄다리기를 했다. 줄다리기는 많은 사람이 줄을 당기면서 단합하는 두레의 단결과 화목을 도모하는 축제이다. 줄다리기는 암줄과 숫줄의 결합으로 풍요를 기원하는데, 줄다리기 의식은 우리나라 벼농사를 하는 대부분 마을에서 이뤄졌던 전통 민속축제이다.

    줄다리기는 볏짚을 꼬아 만든 줄로 양쪽에 남녀 같은 수의 사람들이 경기 신호와 함께 영차영차 한목소리를 내며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줄은 양 쪽이 힘이 모아져 팽팽해지다가 어느 한순간 균형 깨지면서 마무리된다. 줄다리기는 이웃 마을과 친선을 도모하는 평화로운 전통 민속 놀이이자 경기였다. 

    충남 당진에서는 국내 유일의 줄다리기 주제로 한 ‘기지시줄다리기 축제’가 매년 5월 송악읍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에서 전통을 이어진다. 당진 기지시줄두리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500년 전통의 역사를 자랑한다. 

    2023년 기지시줄다리기 축제는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기지시줄다리기 박물관 일원에서 △당진시민 노래자랑 △불꽃 쇼 △제례 행사 △줄꼬기 체험 △아티스트 공연 △줄다리기 등 다양한 볼거리로 시민들이 함께하는 화합의 장으로 진행된다.

    18일 당진시와 당진기지시줄다리기 박물관에 따르면 기지시줄다리기는 기지시 마을의 독특한 유래가 전해진다. 약 500여 년 전 아산만에 큰 해일이 닥쳐와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간 일이 있었다. 해일로 어수선한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풍수지리상 당제를 지내고 줄을 당기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해서 지금까지 줄다리기를 한다. 지역에 닥친 위기를 단결과 화합으로 극복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바로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이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전국 대형축제와 박람회처럼 지자체에서 개발되고 발명된 축제가 아니라 줄다리기 자체가 마을 축제의 성격을 갖는 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민속축제이다. 한 해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고 마을 사람들의 화합을 위해 시작된 기지시줄다리기는 전통적인 마을의 잔치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 ▲ 충남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큰 줄 제작 장면.ⓒ당진시
    ▲ 충남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큰 줄 제작 장면.ⓒ당진시
    국내 줄다리기는 과거 학교 운동회 때마다 단골 프로그램이었으나 대부분 도시화와 산업화로 사라졌다. 기지시줄다리기는 고유의 방식과 특징을 보존해 198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 보존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이다. 

    2011년 세계 유일의 줄다리기 전문 박물관인 기지시 줄다리박물관이 개관됐다. 2015년에는 당진의 기지시줄다리기 주도로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와 함께 국내 6개(당진 기지시, 창녕 영산, 밀양 감내, 의령, 삼척, 남해) 단체가 ‘줄다리기 의례와 놀리’라는 종목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공동 등재됐다.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줄의 형태와 크기는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어 아시아 농경 공동체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기지시줄다리기 특징은 줄을 자체 제작한다. 큰 줄은 마치 굵은 근육을 연상시켜 남성미가 넘치며 기지시 보존회원과 주민 수십 명이 매년 축제 앞두고 한 달간 줄 제작을 한다. 가는 줄은 30가닥을 엮어 중간 줄 세 가닥을 만들고, 이를 줄틀을 이용해 큰 줄을 엮는다. 마치 댕기를 땋듯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단단한 줄이 만들어진다. 큰 줄 제작에는 주민과 자원봉사자 200여 명이 참가해 진풍경을 이루고 줄틀은 변형과 부식을 막기 위해 ‘틀못’이라는 연못에 담아 보관한다. 놀랍게도 줄 제작 과정은 역학이론을 접목한 조상들의 지혜와 과학기술이 숨겨져 있다는 점도 놀랍다.  

    기지시줄다리기의 줄 제작이 발달과정은 기지시의 지역적 특성과 기지시 시장의 번성과 관련이 있다. 기지시는 서해안의 포구에 가는 길목에 있다. 인근에는 안섬포구가 있었고 줄 제작을 하는 줄틀은 본래 배에서 튼튼한 줄을 꼬는 주대 틀을 응용해 만들어졌는데, 안 섬의 뱃사람들이 줄을 만들 때 함께 도와줬다고 한다. 

    줄이 커지게 된 것은 조선 후기 기지시장이 한 달에 열두 번 장이 서면서 호황을 맞자 상인들이 줄다리기 난장을 윤년마다 열어 무사 안녕을 기원했고, 줄다리기 난장 때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함께 줄을 당길 수 있도록 줄은 더욱 커졌고 시장도 크게 흥행했다. 재미있는 것은 줄다리기에 사용하는 줄은 참여하는 사람의 수에 따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 ▲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큰 줄 제작 장면.ⓒ당진시
    ▲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큰 줄 제작 장면.ⓒ당진시
    기지시줄다리기는 줄 나가기와 줄다리기가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하는 줄 고사를 시작으로 줄 나가기, 줄 결합,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수많은 마을 사람과 관광객이 힘을 합쳐 1㎞ 남짓의 거리를 줄을 옮기는 줄 나가기 의식을 장관을 이룬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힘을 합쳐 줄을 옮기며, 어느새 친구가 돼 함께 환호하게 된다. 줄 나가기는 지신밟기와 용이 승천하는 과정을 묘사해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오성환 당진시장은 “기지시줄다리기는 물윗마을(水上)과 물아랫마을(水下)이 겨루는 형식으로 축제가 진행된다. ‘물윗마을이 이기면 나라가 태평하고 물아랫마을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 그대로, 이기고 지는 일보다 모두가 화합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줄 나가기와 줄다리기에는 수많은 농악패와 마을에서 가지고 온 농기 깃발, 직접 줄을 잡은 수만 명의 관광객이 어우러져 장엄하고 신명 나는 대화합의 한마당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암줄, 숫줄이 결합한 부분의 새끼줄이 순식간에 잘려 사라지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자식을 못 낳은 여인이 먹으면 득자(得子) 한다’는 속설이 있는 데, 짚에는 자녀를 가지는 데 도움이 되는 성분이 많다고 의학 전문가들이 이야기도 있어 단순히 미신이 아니라고 한다”고 귀띔했다.

    구은모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장은 “줄 제작은 모처럼 원형대로의 큰 줄 제작을 통해 기지시줄다리기의 위용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에 방문해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기지시줄다리기의 위용과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스포츠 줄다리기 대회도 개최된다. 생활체육 발전과 대중화를 추진하기 위해 개최하는 스포츠 줄다리기(Tug OF War)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지만, 세계 56개, 아시아 20개 회원국이 있을 정도로 인기 종목이다. 1990년부터 1920년까지 올림픽 종목이었으며, 8명의 풀러(선수) 가 고정된 매트 위에서 시간제한 없이 4m를 먼저 끌고 가면 승부가 가려지는 게임이다.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통해 전성기를 맞고 있는 스포츠 줄다리기는 2022년 축제 때 스포츠 줄다리기의 회복과 생활체육의 매력을 발산하고 기지시가 줄다리기의 고장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