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호두나무 시배지(始培地)가 있는 광덕사[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천안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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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산(해발 699m)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와 아산시 송악면의 경계에 위치한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멀리 밖에서 바라보면 모난 데가 없이 넓은 품을 가진 우람한 산이다. 광덕산(廣德山)이란 이름은 산이 크고 아주 넉넉하여 덕(德)이 있는 산이라는 데서 유래됐다고 전한다.오늘 산행은 ‘광덕 제2공영주차장’(천안시 동남구 광덕면·리 560-2)에서 출발해 정상길을 따라 고스락에 올랐다가, 능선길과 장군 바윗길을 거쳐 공영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정한다. 공영주차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 광덕사 입구까지 약 0.5㎞의 도로를 걸어야 한다.일주문(一柱門)을 지나 천년지장도량 태화산 광덕사로 향한다. 광덕사 경내로 들어서기 전 우측으로 태화교가 있는데, 이 작은 석교를 건너면 부용묘길을 이용해 광덕산 고스락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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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교를 건너 광덕사 보화루 앞에 이르면 높이가 약 18m를 훌쩍 넘는 우람한 자태의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398호인 ‘호두나무’를 만난다. 이 나무는 고려 시대에 류청신 선생이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류청신 선생이 원나라로부터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올 때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묘목은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광덕면 매당리 자신의 고향 집 뜰 앞에 심었다고 한다.이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호두가 처음 전해지게 된 배경으로 알려지면서, 광덕사가 호두나무 시배지(始培地)로 불리고 있으며, 천안시 광덕면 일대가 호두의 주산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광덕사는 자장율사가 652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조선 후기에 펴낸 ‘광덕사 사적기’ 등의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 832년 진산화상에 의해 창건되어 고려와 조선 시대에 여러 번의 중창 및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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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사 경내를 두루 돌아본 후 목교를 건너면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계곡을 따라 형성된 산책로를 약 1.0㎞ 진행하면 세거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우측의 정상길로 가면 광덕산 고스락까지 1.8㎞이고, 좌측의 장군바위 길로 가면 장군바위까지 1.8㎞이다.정상길로 상행하여 장군바위 길로 하행하는 코스를 선택한다. 등산로는 숲이 울창하고 잔돌이 섞인 흙산이다. 초반부터 줄곧 돌계단과 데크 계단이 반복되는 오르막을 올라야 광덕산 고스락에 도착할 수 있다.가장 인상적인 구간은 ‘568계단’(마지막 데크 계단 우측에 숫자가 붙어 있음)으로 지옥훈련을 방불케 한다. 이 계단 구간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나무 계단이 이어지는데 헐떡이는 숨과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다.이제 잠시 쉬어가라고 ‘팔각정 쉼터’가 자리를 내어준다. 팔각정 쉼터에서 고스락까지 1.3㎞를 더 가야 한다. 세거리에서 겨우 0.5㎞를 올랐을 뿐인데 초반부터 녹초가 된 모양새다. 쉼터에서 에너지를 보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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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 매트가 깔린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해 돌길 구릉을 넘는다. 다시 계단과 까칠한 돌길을 통해 구릉에 올라서면 긴 의자가 있는 쉼터가 있다. 이곳에서 고스락까지 0.6㎞를 남게 두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쉼터에서 고갯마루로 내려왔다가 다시 가파른 돌길과 돌계단을 오른다. 가쁜 숨을 들이쉬며 한 계단 한 계단 발을 내딛는다. 산길을 오르면서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연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손에는 잠시도 사진기가 떠나지 않아 등산스틱을 사용할 수 없기에 매 산행할 때마다 녹록지 않다. 그러나 오늘처럼 돌계단 아래에서 막 피어오른 여린 제비꽃을 만날 땐 두둑한 보상을 받는다.만남의 환희와 함께 수많은 산객의 발길에 밟히지 않고 온전한 모습을 지키는 제비꽃, 그리고 산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어서 사각 나무 계단 계단을 한 차례 오르고 나면 쉼터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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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연석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고스락을 240m 앞두고 데크 계단의 우회 등산로를 이용할 수 있다고 이정표가 알려준다. 등산로에는 주말을 맞아 천안시민을 비롯해 외지에서 찾은 많은 산객으로 북적인다.많은 등산객은 그나마 좀 수월한 우회 등산로를 이용한다. 그러나 고된 산행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고스락에서의 그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기꺼이 원래 등산로를 오른다. 자연석 계단과 참나무 뿌리들이 뒤엉켜진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를 맛본다.힘든 계단 구간을 오르니 참나무와 단풍나무들이 우거진 숲 아래 조그마한 평지가 있다. 이곳에서 지척에 있는 고스락을 치고 올라갈 힘을 비축한다.다시 자연석 계단을 오르자 곧바로 좌측의 거대한 바위와 우측의 작은 바위가 이루는 석문을 통과하여 막바지 계단을 오르면 고스락 데크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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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해발 699m의 광덕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광덕산은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거나 불길한 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천안의 명산이다. 주변 나무숲 무리 사이로 조망이 가능하다.고스락에는 산객들이 쉴 수 있는 데크 광장이 마련되어 있고, 너른 평지에 정상석과 천안시와 아산시의 상생·협력 탑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는 천지정기(天地正氣)로서 조화·하나·사랑·덕치의 원리와 방위가 새겨진 원판이 박혀 있다.광덕산 고스락에서 계단을 내려서면 등산안내도와 긴 의자가 설치된 쉼터가 있다. 이곳에도 고스락 데크 광장과 마찬가지로 많은 산객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능선길은 울창한 참나무 숲의 흙길과 돌길이 반복되는 구간이다. 광덕산 고스락에서 0.3㎞를 하산하면 멱시마을과 강당골로 하산하는 고갯마루에 이른다. 이곳에서 장군바위까지 0.9㎞를 더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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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길은 완만하면서 광폭의 작은 봉우리 세 개를 넘나든다. 봉우리 간의 구간은 부드러운 작은 구릉을 품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외면으로도 유연하지만, 그 내면도 유연한 것임을 일깨운다. 그래서 넓은 덕을 품어서 광덕(廣德)인가 보다.고스락에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1.2㎞를 이동하면 ‘장군바위’를 만난다. 이 바위에 대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옛날 허약한 젊은이가 깊은 산속을 헤매다 허기와 갈증으로 사경에 이르렀다.어느 곳에서인지 물소리가 들려와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가보았더니 큰 바위 밑에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신기하게 여겨 손으로 물을 받아먹었더니 그 물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아 몸이 마치 장군처럼 우람하게 변하였다 하여 장군바위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장군바위 세거리에서 직진하면 부용묘길을 거쳐 광덕쉼터까지 3.0㎞를 이동하게 되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장군 바윗길을 거쳐 광덕사까지 2.3㎞를 이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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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바위 길로 접어들면 황톳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광덕산의 능선이 보이는데 마치 팔뚝 근육처럼 부드럽게 늘어져 있다.장군바위에서 0.3㎞를 내려오면 ‘박 씨 샘’이 있다. 아마도 박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 놓아서 박 씨 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곳부터 경사지고 잔돌이 있는 산길과 나무 계단 및 철제 계단을 내려간다.장군바위 길에는 계단 구간이 1곳뿐이고, 이 구간을 지나면 계곡을 따라 잔돌이 깔린 완만한 산길이 이어진다. 박 씨 샘에서 0.85㎞를 내려오면 장구 골로 접어든다.장구골은 야자 매트가 깔린 약 2m 폭의 도로에 가까운 길이 이어지는데 산책하듯 걷기 편한 길이다. 여유로운 발걸음은 계곡 건너 흑갈색의 산비탈을 점점이 녹색으로 물들이는 잣나무 군락지를 발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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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바위 길과 정상길이 합류된다. 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느티나무 연리지와 제비꽃, 그리고 푸릇푸릇하게 돋아나는 풀들과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를 한가로이 구경한다. 목교를 건너서 광덕사 앞의 호두나무를 지나고, 극락교를 건너 오탁악세(五濁惡世)로 들어온다.잠시 시간을 늦추고자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안양암(安養庵)을 둘러보고 일주문을 거쳐 공영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한다.세상의 티끌로 다시 돌아오면서 산행을 마치고, 귀갓길에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 구매를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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