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의 묘미가 있는 ‘충북의 설악’[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영동군 편
-
2022년 11월 4일,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시기는 조금 지난 듯하지만, 가을을 떠나보내기 아쉬워 충북 영동군 양산면에 위치한 ‘충북의 설악(雪嶽)’이라 불리는 천태산(天台山, 해발 714.3m)을 찾는다. 이 산은 뛰어난 자연경관과 양산팔경의 1경인 영국사를 비롯해 많은 문화유적들이 산재되어 있어 가족단위 등산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오전 9시 40분경 천태산 공영주차장에 도착하여 ‘천태산 문화재 탐방 및 등산안내도’를 살펴본다. 오늘의 산행은 등산로 A코스로 천태산 정상에 오른 후에, C 코스로 하산하기로 한다. 낙엽이 고요히 떨어지는 시멘트 포장길을 걷다 보면 ‘충북의 설악, 천태산 계곡’이라는 표지석을 지난다.
-
거대한 바위들과 마주치기 시작하면서 계곡을 따라 걷는다. 계곡이 품기에는 너무 큰 바위들과 유달리 푸름을 간직하고 있는 고목이 신비함을 더욱 자아낸다. 명탑봉 삼거리를 지나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주름을 연상시키는 삼신할멈 바위를 지난다. 이 바위틈에 작은 돌을 던져서 떨어지지 않으면 삼신할미가 자식을 점지해 준다는 소문이 있다.이어서 데크 계단을 걸으며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삼단폭포를 지난다. 지금은 폭포수 대신 낙엽이 풍부한 이 폭포는 예전에 용추폭포라고 불리었다. 단풍 속에 파묻힌 지그재그 계단의 끝자락에는 천태산 영국사(天台山 寧國寺)의 일주문(一柱門)이 마중한다.
-
일주문을 지나 좌측 방향의 망탑(望塔)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따라 내려가면, 천연기념물 제223호인 천태산 영국사 은행나무의 뛰어난 자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 나무는 높이가 31m, 가슴 높이의 둘레는 11m이며, 수령은 약 1300년 정도로 추정된다.이 은행나무의 서쪽 가지 중 하나는 밑으로 자라서 끝이 땅에 닿았는데, 여기서 자라난 새로운 나뭇가지는 높이가 5m 이상이나 되고, 가슴 높이의 지름이 20가 넘는다. 이 나무는 국가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한다.
-
은행나무에서 우측 방향인 등산로 A코스의 이정표를 지나서 들머리 계단을 오른다. 나무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구간을 지나고, 경사가 제법인 암릉 구간을 로프에 의지해 오르면 제1 전망바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영국사를 품고 있는 만추의 아름다운 산줄기의 풍광을 감상한다.이어서 소나무 뿌리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는 암반을 지나서 다시 로프에 의지해 암릉 구간을 오른다. 연이어 심하게 가파른 암벽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오르면 제2 전망바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생사(生死)의 대비를 통해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두 그루의 소나무를 만난다.
-
이쪽으로 보면 살아 있는 소나무고, 저쪽으로 보면 죽은 소나무다. 우리네 인생 숨을 쉬면 살아 있는 것이고, 숨을 멈추면 죽은 것이다. 이처럼 생사는 한순간이건만, 어찌 그리 집착하며 애끓게 사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제2 전망바위에서 굴참나무 숲속으로 조금 더 오르면 깎아지는 절벽의 75m 암벽 구간이 앞을 가로막는다. 직벽(直壁)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오르기 시작해서 소나무가 있는 지점까지 오르니 정말 만만치 않다고 느껴진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팔 근육의 긴장을 풀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다시 두 번째 중간 지점까지 올랐으나 쉴 곳이 여의치 않다.
-
중간 지점에서 내려다보니 아찔하여 머리털이 거꾸로 선다. 얼마나 많은 힘을 주면서 루프를 꽉 잡았던지 팔 근육이 떨릴 정도다. 루프를 바꿔 잡고 마지막 구간을 오른다. 드디어 제3 전망바위에 도착한다. 절벽 아래를 내려 보니 ‘낭떠러지기라는 말이 이런 것이로구나!’ 제대로 실감 난다. 저 멀리 붉게 물든 가을 단풍 속에 한 점을 이루는 영국사와 부근 경치가 그야말로 절경이 아닐 수 없다.제3 전망 바위 위의 직벽을 오를 수 없어 우회하여 오른다. 이어서 계단을 이용해 암반에 올라 천태산의 제4 전망대가 제공하는 풍광에 빠진다. 계속해서 암릉을 오르는데, 돌고래 바위와 층층 바위와 같은 기암괴석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바위를 토대로 거친 삶을 살아가는 끈질긴 생명력의 나무들에서 강한 에너지를 받기도 한다.
-
둥글고 계층을 이루는 암릉 구간을 오르고, 경사가 급한 로프 구간과 뾰족한 칼날을 박아 놓은 것 같은 칼바위 구간을 오르면 삼거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우측 방향으로 앙상한 가지만 거느린 참나무의 수신호에 따라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낙엽을 밟는다. 천태산 정상을 오르는 길에는 잔돌과 낙엽이 뒤섞여 있어 조심해야 한다.드디어 천태산 정상에 도착한다. 바위 위에 ‘天台山 海拔 714.7m’라고 적힌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정상은 숲으로 에워싸여 조망은 좋지 않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가 삼거리로 향한다. 삼거리에서 올라온 길이 아닌 남고개 방향으로 하산한다.
-
하산하면서 수 10명이 모여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지나 암릉과 계단 구간을 하산한다. 계단을 내려서면 잔돌이 많고 바윗돌이 난잡하게 흩어진 산길을 걷는다. 이어서 헬기장을 지나 마사토의 평탄한 길을 걷는다. 미끄럼 방지를 위해 야자 매트를 깔아놓았으나, 마사토가 흘러내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폐쇄된 등산로 B코스를 지나 C코스의 암벽 구간으로 하산한다. 암벽을 내려오면서 영국사와 그 주변 산들이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그야말로 만산홍엽이 아닐 수 없다. 좌측으로 천태산 정상에서 치마폭처럼 늘어진 산줄기가 멋지다. 특히 하단부의 암릉 구간은 기암절벽 75m 암벽 구간을 오를 때가 생각나게 한다.
-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가파른 산비탈, 암반과 마사토가 혼합된 등산로 구간, 암벽 로프 구간과 경사진 암반 위를 설치된 로프를 잡고 하산한다. 이런 구간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하산한다.오후 햇살을 받은 단풍이 곱게 빛나는 등산로를 내려오면, 좌측으로 이름 모를 부도를 지나 석종형승탑과 원구형승탑, 보물 제534호인 원각국사비, 그리고 연리지(連理枝)를 만난다. 이후 영국사 경내로 진입하며 합장 삼배한다.
-
영국사(寧國寺)는 전통사찰 제2호로서, 신라 문무왕 8년(668년)에 창건하였다 하나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대웅전(大雄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집으로 주존불로 석가여래좌상을 모신 불전이다. 대웅전 옆에는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신 극락보전(極樂寶殿) 건물이, 대웅전 뒤편에는 독성·칠성·산신을 모신 삼성각(三聖閣)이 위치하고 있다.대웅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보리수(菩提樹)가 우뚝 솟아 자라고 있다. 보리수를 지나 만세루(萬歲樓) 계단을 통해 내려선다. 이 사찰은 천태산을 배경으로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다.
-
우리나라를 1300여 년 동안 지켜온 은행나무를 지나 일주문으로 향한다. 일주문으로 내려가지 않고, 일주문 앞의 우측 방향인 망탑(望塔) 방향으로 하산한다.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 암반을 내려가고 난 후, 다리를 건너 암봉으로 이뤄진 망탑봉(望搭峰)에 오른다.망탑봉에는 천태산을 배경으로 ‘상어흔들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사람이 혼자서 흔들어도 움직여서 흔들바위라고 하고, 생김새가 상어와 같다. 이 바위는 삼신할멈 바위와 함께 천태산을 대표하는 바위 중 하나이다. 상어흔들바위 옆에는 망탑봉 삼층석탑이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 망탑봉에서 소나무 숲 아래 암반으로 내려가서 계단을 통해 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을 따라 숲속으로 걸어 나가면 본 등산로와 합류되고, 이어서 기암괴석의 명품 수석전시장을 지나서 등산로를 빠져나와 산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