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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의 시사칼럼] ‘참척(慘慽)의 고통’과 ‘단장(斷腸)의 슬픔’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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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11-02 00:43 | 수정 2022-12-07 16:22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 1. 동진(東晋)의 환온(桓溫)이 촉(蜀)을 정벌하러 전함(戰艦)을 타고 장강(長江)을 거슬러 가다가 삼협(三峽)에 이르렀을 때 병사 하나가 원숭이 새끼를 잡았다. 장강을 거슬러 가는 삼협의 길목에서 내내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구하러 슬피 울며 따라오고 있었다. 병사도 그걸 보고 새끼를 돌려주고자 했으나 이미 전함은 출발해 움직이고 있었고 강폭은 넓어서 새끼를 던질 수도, 어미 원숭이가 거기에 뛰어들 수도 없었다. 

그렇게 백 여리를 지나고 나서야 겨우 수로가 좁아지는 길목에 이르자, 이때 어미 원숭이는 죽을힘을 다해 몸을 날려 배로 뛰어들어 새끼를 구하려고 했으나 이미 체력이 소진된 어미 원숭이는 곧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병사들이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모두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환온이 자초지종을 듣고 크게 노하여 병사의 목을 베려 했지만, 병사가 곧바로 새끼 원숭이를 돌려주려다 그러지 못했다는 걸 듣고는 "내가 자네를 죽이면 자네의 어머니 역시 창자가 끊어지듯이 슬퍼하다 죽을 것이니 앞으로 다시는 이러지 마라"라고 하며 살려주었다.

남송(南宋)의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출면(黜免)」에 나오는 ‘어미 원숭이의 끊어진 창자(母猿斷腸)’ 이야기로, 자식을 잃은 어미의 큰 슬픔을 비유하는 말이다.

#2.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서 천붕(天崩)이라고 한다. 자식을 먼저 잃는 일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참척’이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비통함을 일컫는 말이다.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참혹한 슬픔이란 뜻이다.

참척지변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그 참혹한 슬픔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은 그 참담한 슬픔을 잊기가 쉽지 않고 평생의 한이 되어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 그러다 고황의 깊은 병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엊그제 10월 30일 밤에 이태원에서 일어난 인파 압사 사고로 현재까지 156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이태원 좁은 골목에 들어갔다가 인파에 밀려 넘어지면서 일어난 참담한 사고이다. 인근 시민과 구조 당국이 힘을 다해서 인명 구조를 시도했으나 역부족이었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제 꿈도 못 펴보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유족의 슬픔이야 어디에 비할 데가 없을 거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었으니 누가 어떤 위로를 한들 치유가 되겠는가. 자식 잃은 부모는 그 참척지변을 감당할 수가 없을 터다.

참척지변의 슬픔에 대하여 박완서는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라고 썼다. 박완서는 남편 잃은 지 석 달 만에 예비의사 외아들을 떠나보냈다. 

#3. 이태원 사고로 많은 청춘이 유명을 달리하여 전 국민이 슬퍼하고 있다. 나라에서는 일주일 동안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하고 너무 일찍 하늘의 별이 된 젊은이들의 혼을 국민이 위로할 수 있게 했다. 

그 한 주일만이라도 정쟁을 거두고 망자들의 명복을 빌자고 했는데 언론에서, 일부 정치판에서, SNS에서, 있는 일 없는 일로 구성한 별별 풍문이 스멀스멀 나오려고 한다. ‘세월호의 추억’을 꺼내려고도 한다. 그렇게 해서 다음 수순을 도모하려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그게 가당키나 할 일인가? 국민의 기억에 남아있는 탄핵의 트라우마는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선 안 된다고 단단한 다짐을 만들었는데, 세월호와 탄핵의 추억을 소환하려는 일부 분위기가 엿보인다. 탄핵이 동네 양아치 이름도 아닌데, 동네 강아지 일처럼 쉽게 만든다면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쥘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리가 하나라도 있다면 국민에게 크게 혼이 날 일이다. 

나흘 남은 국민 애도 기간을 좀 경건하고 엄숙하게 고인들을 추모하고 명복을 빌면 안 될까? 세계가 주목할 만큼 이태원 사고가 큰 사고이긴 하다. 그러나 며칠씩 특집으로 종일 방송을 해야 할 일인가도 생각해볼 일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겐 가만히 곁에서 토닥거려주면서 함께 울어주면서 슬픔을 나누는 치유의 위로가 더 필요하지 않겠나.

사고가 난 후에 일부 평론가는 놀다 당한 일에 나라 세금을 써선 안 된다는 글을 올렸지만, 본인이 그런 참척지변으로 단장의 슬픔에 빠졌어도 그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물어보고자 한다. 선진국 된 대한민국에서 나라가 최소한의 성의로라도 유족을 돕고 치료를 해주는 게 그르친 일인가 물어보고자 한다.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는 마땅히 위해를 당한 국민을 보듬어 줄 필요가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국가는 국민 애도 기간이 끝나는 걸로 끝내지 말고 이런 슬픔이 재발하지 않는 안전한 나라로 가는데 필요한 조치를 지속해서 만들어가야 한다. 정치권은 이태원 사고가 정치와 무관한 사고임에도 정치와 연계하여 정쟁을 삼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못다 핀 채 저버린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당면한 내외의 엄혹한 여건을 헤쳐 나갈 생각이나 하자. 이태원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과 안식을 기원하자. 참척지변으로 평생을 단장의 슬픔으로 지새울 부모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자. 지금 우리가 고인과 유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이고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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