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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명연설로 알려진 미국의 제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사’ 중 다음 문장이 명언으로 널리 회자 된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세계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우리들이 서로 힘을 합해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미국 국민이건 세계 시민이건 간에 여기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여러분에게 요청하는 것과 똑같이 높은 수준의 힘과 희생을 요청하십시오” (주한미국대사관 웹사이트에서 인용).
정치가의 능력은 명연설만큼이나 연설의 내용을 얼마나 충실히 실천하는가로 평가된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저격범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불행히도 자신의 정치적 꿈을 완성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의 연설에서 제시했던 ‘뉴프런티어 정책’에 따라 개도국에 ‘평화봉사단’을 파견하여 세계 곳곳에서 교육, 농업, 보건 등에서 이바지했고 많은 성과를 냈다.
#2.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한 날 ‘윈스턴 처칠’이 영국 수상 자리에 오른다. 하원에서 이뤄진 그의 취임식의 연설은 세기의 명연설로 꼽힌다.
“나는 이 정부에 참여한 장관들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의회 여러분에게 다시 말합니다. 나는 피와 노력과 눈물, 그리고 땀 밖에는 달리 드릴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가장 심각한 시련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략) 여러분은 질문할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한마디로 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지급하더라도, 어떤 폭력을 무릅쓰고라도, 거기에 이르는 길이 아무리 험해도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으므로 오직 승리뿐입니다.”
처칠은 취임 한 달 뒤에 독일 기갑군단의 전격전(電擊戰)으로 프랑스 붕괴가 확실해지고 영국 혼자 전쟁을 감당해야 할 상황에서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차세계대전 때의 피해 땜에 도움을 주저한다. 처칠은 ‘최악의 위기’가 ‘최상의 시간(The finest hour)’이라고 표현하면서 미국을 탓하지 않고 국민이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과거와 현재가 싸우도록 내버려 두면 미래를 잃게 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미국을 향해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함께 싸우자는 제안이었다. 처칠의 명언대로 과거와 싸우지 않은 영국이 미국 등의 연합군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여 미래를 잃지 않았다.
#3.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말은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했던 ‘대통령 취임사’의 한 구절이다. 우리 사회와 대한민국이 영원히 추구해야 할 목표를 잘 요약하여 당시에는 울림을 주었던 명언이었다. 다만 그 울림이 울림으로만 그치고 그와 반대로 정치를 펼쳐서 대한민국이 주저앉게 된 게 문제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는 구구절절 옳은 말뿐이었다. 그 연설문 속에서 ‘명언(名言)’을 들라고 하면 아마도 평등·공정·정의로 압축된 이 문장일 것이다. 그러나 집권 4년 차에 이르는 동안, 이상향적이라 여겼던 그 명언은 모두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다.
‘미 국무부 한국 편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부패 부분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5촌 조카 조범동 씨의 뇌물 수수, 직권 남용, 증거 인멸 논란을 언급했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재직 당시 자금 유용과 관련해 사기, 횡령,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고 했다. 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 시장의 성추행 사건도 거론했다.
미국 정부의 시각에서도 조국, 윤미향, 박원순, 오거돈 씨의 행적이 평등·공정·정의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라 생각한다. 이런 사건들이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 한국 사회가 평등·공정·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음을 인권보고서에 기록하여 한국이 이를 시정하라는 뜻이었을 게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에게는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그 말을 신호로 여권은 그동안 온갖 궤변으로 조국을 감싸왔다.
권력이 그를 감싸는 동안 그의 딸은 허위 인턴 증명서와 위조 상장과 논문 논란에도 입학 취소나 졸업 취소가 되지 않고 마침내 의사가 되었다. 미국이 이런 점을 유심히 보았고 가볍지 않은 사안이라 판단하고 ‘미국 인권보고서’에 기록했을 것이다. 사안이 이러니 문재인 정부를 공정하고 정의로운 정부라 부르긴 어려울 것이다. 자기 패거리들끼리는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울지는 몰라도….
#4. 지난 3월 30일 야당 대변인의 공식 논평에 따르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이 문장이 문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언급하기 2년 전인 2015년 4월에 이미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서 사실상 같은 의미의 글을 실었다는 것이다. 인민일보에 실린 글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주창하는 공정은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강조할 뿐 아니라 ‘결과의 정의’까지 고려하고 이를 사회 각계각층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라 SNS에 올라온 글을 보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야당 대변인의 발표문과 2015년 중국 인민망에 올려져 있는 글의 사진을 보면서 아무리 좋은 의미가 담긴 말이라도 일국의 대통령 취임사에 남의 나라 선전문을 베껴서 썼다는 사실에 멍때린 느낌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국정 목표를 명시했다는 대통령 취임사 트레이드마크 문장이 중국 공산당의 선전문이었다는 사실에 벌려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야당 대변인의 말대로 수치스러운 표절이다. 게다가 4년간 문 정권의 정치실천이 그 반대로 행해져서 명언이 허언이 되었다고들 생각했는데 허언이라는 말조차도 거론하기 창피하다. 국민은 표절한 문장인지도 모르고 의미가 좋아 그 말대로 충실히 실천하기를 기대했던 게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나쁜 정치의 상처가 아마도 오래도록 후유증으로 남아 국민이 시달릴 수 있다. 잘못된 정책이 결과한 민생문제로 민심이 흉흉하다. 지난 4년의 문 정권 치적은 평등·공정·정의와 거리가 먼 사건들로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 사건의 결과로 오는 4월 7일에 대한민국 제1, 2위 도시의 시장을 다시 뽑는 선거까지 치른다. 결과를 예측하긴 쉽지 않지만, 민심의 따가운 질책이 없을 수 없다.
명문이라 여겼던 말이 허언이 된 것에도 국민이 크게 실망했지만, 중국 인민일보에서 표절했다는 것에는 이래저래 더 창피하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한복 공정’, ‘김치 공정’, 심지어 ‘삼계탕 공정’에 화가 잔뜩 난 터에 국민 울화가 더 치민다. 우리나라가 중국 속국이냐? 이게 나라 꼴이냐? 정말 정치를 못 해도 너무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