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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 출신 월남 이상재 선생 ‘자료 600점 공개’

8일 독립기념관, 8일 자료기증식‧자료 공개행사

입력 2019-08-07 17:34 | 수정 2019-08-08 16:27

▲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 친필.ⓒ독립기념관

충남 서천 출신으로 독립운동가인 월남 이상재 선생(1851~1927)에 대한 자료 600여점이 공개된다.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8일 월남 이상재 선생 관련 자료기증식과 함께 자료공개 행사를 갖는다고 밝혔다. 

이 자료들은 월남의 후손(기증자 이상구)이 소장하다 독립기념관에 일괄 기증한 것으로 월남 선생의 친필 자료가 다수 확인됐다.

독립기념관은 공개되는 주요 자료는 이상재 선생의 친필 문서류 및 사진류 시무서, 상소문(액자), 사직서, 다수의 논설·취지서·만사·한시간찰 등 90여점이며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의 초안 1점, 황성기독교청년학교 진급증서(會立皇城基督敎靑年學校進級證書, 1906년) 1점 등이다.

또 1927년 사회장 관련 문서․명함류․사진류 등 250여점, 독립운동가 추도사 김구(金九, 1949), 명제세(明濟世, 1949), 조소앙(趙素昻, 1949), 김병로(金炳魯, 1957), 함태영(咸台永, 1957) 등이다.

‘영원한 청년’, ‘한국의 거인’으로 상징되는 이상재, 자 계호(季皓), 호 월남(月南)]는 대한제국기 개혁관료, 개화사상가, 교육자, 청년·시민운동가, 언론인 등으로 일제강점기 국내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이번에 기증된 이상재의 친필과 관련된 문서류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다수의 논설 초고, 시문원고, 간찰 등 다양한 필적이 모두 선생의 것으로 확인됐으며 한문․국한문․순한글 등으로 기술된 논설문 초고와 문서 등은 매우 주목되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또한 호구단자․명문․소지와 같은 집안 고문서류와 1927년 사회장 및 1957년 묘소 이전 등과 관련된 자료가 함께 기증돼 이상재 가문의 변화양상을 잘 파악할 수 있고,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복원하는데도 큰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기증식에서는 선생이 사행보고서로 저술한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의 초안으로 작성했던 것으로 보이는 문서 1점이 공개된다. 이 자료에는 고국으로 돌아오기로 예정됐던 시기로 보이는 4일간의 활동 내용이 기록돼 있다. 

공사인 죽천성사(竹泉星使)가 서기관 이하영(李夏榮)과 미국공사 알렌(安連)을 대동하여 미국 대통령(總統)을 알현하고 고별한 내용과 귀국을 앞두고 미국 외부와 각국 공사관 등에 명함(名帖)을 돌리며 작별인사를 하게 한 내용 등이 기록돼 있다.

이상재는 서재필·윤치호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연설가로서 활약했고, 만민공동회의 유명한 사회자로 이름을 날렸다. 선생은 1898년 7월 고종에게 올바른 시무의 방안을 건의하며 사직서(사내각총무국장소(辭內閣總務局長疏))를 제출했으나 반려됐다. 

또한 10월에는 입헌군주제 실시를 핵심으로 하는 국정개혁안인 ‘헌의6조(獻議六條)’를 제출해 황제의 동의를 얻기도 했지만, 독립협회가 군주제를 철폐하고 공화제를 수립하려 한다는 보수 관료들의 모함으로 11월 4일 독립협회 간부들과 함께 체포됐다. 이러한 월남의 당시 사회에 대한 인식과 개혁에 대한 의지는 ‘시무서(時務書)’, ‘상정부서(上政府書)’, ‘독립문건설소(獨立門建設疏)’ 등의 기증자료를 통해 그의 강렬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1899년 1월 30일 의정부 총무국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상재는 독립협회에서 주장한 교육과 실업을 통한 국권수호운동을 계속하지만 1902년 이른바 ‘개혁당 사건’으로 체포됐 아들 승인을 석방시킨다는 조건으로 15년 형을 받고 한성감옥소에 수감됐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감옥에서 이승만 등과 함께 감옥학교를 운영하며 새롭게 기독교를 수용했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현재 이상재 선생의 자료는 다른 기관에 소장돼 있기도 하지만, 이번에 독립기념관에 일괄 기증된 친필 문서류 및 다수의 원본 자료들은 앞으로 그 가치를 발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격변의 시기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독립운동가이자 시민사회운동가로서 시대의 사표가 됐던 이상재 선생의 위대하고 진정한 삶의 모습이 제대로 규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1850년 충남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부친 이희택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한 월남은 1887년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로 부임할 때 서기관으로 임명됐고, 이어 1896년 서재필‧윤치호 등과 독립협회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했으나 1902년 반역 음모 혐의로 아들 승인과 함께 구속, 한성감옥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이상재 선생은 1913년 YMCA 총무에 취임해 활동을 했으나 1927년 3월 29일 78세의 일기로 재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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