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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의 자랑은 누가 뭐래도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은 직지다.
청주시는 직지의 가치를 시의 홍보로 활용하기 위해 고인쇄박물관을 운영하고 직지코리아페스티벌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지난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기록유산센터 유치를 이끌어낼 정도로 열정적이다.
그러나 직지는 청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다. 인근 대전이나 서울 등 타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직지? 그게 뭔데?”라는 반문이 즉시 돌아온다.
‘1377년 고려시대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세계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장황하게 설명을 해줘도 “그래서 뭐?”라는 대꾸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그렇게 많은 홍보(?)를 하면서도 직지가 청주를 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왜 그럴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청주시는 직지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보존·관리하기 위해 1990년부터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5급 사무관을 관장으로 운영사업과와 학예연구실 조직을 갖추고 박물관을 운영했으며 2008년 관장 직급을 4급 서기관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초대 관장만 6년여를 재임했을 뿐 이후 9대까지는 1년 임기가 고작이었다.
더구나 2011년 10대 관장이 단 6개월의 임기를 맡더니 이후부터 11, 14, 15, 16, 17대 관장이 모두 6개월만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선6기인 2016년 14대부터 17대까지는 마치 6개월 고정직으로 여겨질 정도로 정확하게 관장을 바꿨다.
박물관은 그 지역의 역사를 대변하는 얼굴이며 수백~수천 년의 유물을 관리·보존·연구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띤 조직이다.
이러한 자리에 고작 6개월짜리 단명하는 관장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영광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명예는 지켜야하는 자리가 박물관장 아닌가.
그동안 고인쇄박물관장을 거쳐 간 이들이 대부분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한 후 잠시 거쳐 가는 자리로만 인식됐는지 관장 임용에 적잖은 인사 잡음도 들린다.
올해 발령 받은 박노문 관장은 지난 2일 첫 출근 후 현재까지 ‘장기재직휴가’ 중이다. 박 관장은 근무연한에 따라 부여되는 휴가 일수가 25일이나 있어서 마음대로 휴가를 사용하는 것은 왈가불가할 일이 아니다.
다만 박 관장이 1월 31일자로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계속해서 휴가중이어서 단 하루라도 관장으로서의 근무가 가능한지도 물어봐야한다.
한마디로 ‘어쩌란 말이냐?’다. 올해 고인쇄박물관은 직지코리아페스티벌은 물론 세계기록유산센터 건립관련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최종 결재권자인 관장이 부재중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미래는커녕 당장 이번 주 오늘 할 일에 대해서도 계획수립이 불가능해 보인다.
지역의 한 문화계 인사는 “박물관장을 한직으로 취급하는 공무원들의 행태가 직지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다”며 “최근 개방형으로 전환한 시립미술관처럼 고인쇄박물관도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직지가 청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라면 직지의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고인쇄박물관 운영 시스템도 과감히 개선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행정의 개선은 인사권자의 의지와 몫이며 시민에 대한 책임이다.
프랑스라는 타향에 머물고 있는 직지가 한번이라도 고향을 방문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너무 요원해 보인다. 현재의 고인쇄박물관 운영 시스템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