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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소재 관음사 회주인 월암당(月庵堂) 이두(二斗) 대종사가 4일 새벽 3시께 청주 관음사 석수실에서 원적에 들었다. 그의 법납은 66세이며 세수는 90세이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인 이두 대종사의 영결식은 6일 오전 10시 관음사에서 금오문도장으로 봉행됐으며 다비는 이날 12시 법주사 연화대에서 엄수됐다.
이두 대종사는 1950년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포로로 붙잡혔다가 탈출한 뒤 들른 갑사에서 사형인 탄성스님으로부터 불가의 삶을 권유 받고 1951년 당대의 선지식이었던 금오대선사를 은사로 해 수계득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56년 동화사 강원에서 학문을 닦은 뒤 1959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 육도만행을 결심하고 전라도 일대에서 엿장수와 걸인생활을 했으며, 경남 진주에서 문학공부에 전념하기도 했다.
이두 스님은 늘 온화하고 자애 넘치는 모습이었으며 1971년 갑사 주지를 지냈고 1978년에는 속리산 법주사 주지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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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인천 보각선원장에 취임했으며 1986년 청주 관음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폐사직전의 도량을 일신하고 중창해 청주의 대표적 사찰로 만들었다.
특히 1991년에는 방글라데시 치타공 파리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2년 서울 도심에 해동불교대학을 설립해 10여년 간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도제를 양성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금오문도회 문장으로 선출됐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됐고 2004년 5월 해인사에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이두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를 통해 세상에 전했던 문인이기도 하다. 1978년 처음 ‘겨울 빗소리’ 시집 발간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1984년 ‘현대시조’ 추천으로 시조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그는 ‘창문에 울린 초음’, ‘그대가 만나는 산길’, ‘만나고 헤어지는 물가에’ 등의 시집과 수상집을 발간했고 구도소설 ‘명암이 없는 선하 앞에서를 발표하는 등의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해왔다.
또한 충북일보 논설위원으로 정론직필의 탁월한 필력을 보여줬으며, 충북경실련 초대 공동대표를 맡아 시민단체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아울러 서양철학에도 해박했던 이두 스님은 ‘직지심체요절’을 처음으로 한글 번역하고 강의했다.
이두 스님은 평소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인과를 철저히 믿어야 한다고 당부했고 입적하기 전 후학들에게 “지나간 모든 것은 다 바람일 뿐”이라며 “스스로 인생의 주체가 되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남기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