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박규홍 교수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박규홍 교수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장수일 때 꿈을 꾸었다. 무너져가는 큰 기와집에 들어갔다가 집이 워낙 낡아서 무너질까 불안해서 그 집에서 나오는데 자신이 지게에 석가래 셋을 가로로 짊어지고 나오는 꿈이었다. 이성계는 그 꿈이 흉조(凶兆)인지, 길조(吉兆)인지 몰라서 이리저리 수소문 한 끝에 토굴에서 정진 수행하는 고승을 찾아가서 해몽을 듣는다.

    그 고승은 후일 태조의 국사가 된 무학 대사였는데, 이성계에게 왕업을 이룰 꿈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낡아 붕괴되는 큰 기와집은 망해가는 고려국(高麗國)을 의미하는 것이요, 그 집에서 나오면서 등에 석가래 셋을 짊어지고 나왔다는 것은 왕(王)을 의미하는 것이니, 장군은 장차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는 천기를 미리 깨닫게 해주는 길몽입니다. 차후 어느 누구에게도 두 번 다시 그 꿈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무학 대사는 이성계가 다른 사람에게 꿈 이야기를 해서 천기(天機)를 누설하면 대업을 망치게 되므로 입조심 하라고 하면서 백성의 민심은 물론, 수하 장병들과 여타 장병들까지 민심을 얻는 노력을 기울이고, 신불(神佛)전에 남몰래 기도하여 가호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무학 대사는 이성계를 보필하면서 조선의 개국과 기반을 다지는데 앞장선다. 정도전을 비롯한 여러 개국공신들의 역할도 빛났지만 이성계는 무학 대사의 지혜를 빌려 당시 중원 대륙의 정치적 상황을 잘 헤아려서 조선 창업의 대업을 실현한다. 이성계와 무학 대사는 14세기 때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었다.   


    100여 년간의 전국시대의 혼란을 평정하고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권을 안정시키고 불평세력들의 넘치는 힘을 밖으로 돌리기 위하여 조선을 침범한다. ‘명나라를 치려고 하니 조선은 길을 터주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명분으로 내걸고 쳐들어와서 개전초기에 파죽지세로 평양성까지 내다르지만 충무공 이순신과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의 승병과 팔도 전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난 의병들에게 고전 한다. 이 충무공과 사명대사, 서산대사, 각지의 의병장들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구국의 인물이었다. 7년간의 왜란으로 조선팔도는 황폐해졌지만 그들의 공으로 조선은 종묘사직을 지킬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신생 민주공화국으로 태어난 대한민국은 국제외교에 밝은 이승만이라는 지도자를 만나서 자유민주진영에 편입된다. 후에 독재자로 물러났지만 이승만은 건국 초기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건국 후 6·25 전쟁으로 국토가 피폐해지고 국민들이 기아에 허덕일 때 등장한 인물들이 산업화 세대들이었다. 박정희 정권 18년을 정치적 암흑기로 평하기도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그 기간에 산업화 세대들이 일으킨 국가부흥의 공적을 결코 작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불과 반세기만에 국민소득 67달러에서 3만 달러에 가까운 경제 강국을 이룩한 산업화기간에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들이 적재적소에 자리하고 있었다.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등등, 그들은 국민들의 먹거리 해결과 5000년 동안 찌들어온 가난의 멍에를 떨치고 선경지명으로 적시적소에서 부국강병에 필요한 산업을 일으켰다.

    산업화 기간에 그들은 필요한 자리에서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서 헌신을 했다. 민주화 세대들의 온갖 폄훼에도 국민의 대다수가 산업화 세대들의 공을 기리는 이유이다. 그들은 시대가 필요할 때에 나타나서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제대로 해냈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그 산업화의 열매로 대한민국의 민주화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은 고성장과 중성장 시대를 거쳐 이제 저성장 시대에 초입에 서 있다. 그래서 미래 경제 상황 예측이 녹녹치 않다. 덧붙여서 1987년에 만들어진 정치구도가 효력을 다하여 새로운 구도로 정치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그런 여론에 편승해서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행보가 어지럽다. ‘도나 개나’ 대권운운하면서 천기에 도전하고 있다. 능력이 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면야 누구든 대권에 도전할 수 있고 마땅히 그러해야 제대로 된 민주국가일 것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방한을 계기로 잠복해있던 ‘충청권대망론’이 여론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충청지역에서의 ‘반기문 열풍’은 서울지역에서 듣고 보는 것 이상으로 세게 불고 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후로 충청권의 큰 인물이 없었던 차에 반 유엔사무총장의 명성과 무게로 봐서 반 총장은 충청권의 여망을 채울 수 있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문제는 그가 정말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럴 역량과 비전을 갖고 있느냐 여부도 문제다.

    반기문, 과연 그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인가? 아니면 그가 아닌 새 인물이 나타날 것인가?

    대한민국이 계속 융성 발전해 통일을 이루고 강력한 선진국이 될 시운을 타고 있다면 하늘이 그에 합당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 인물이 ‘반기문’인가는 좀 더 두고 봐야 판가름이 날 것 같다. 대권은 갖고자 한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라, 시대에 필요한 사람을 하늘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대선은 아직 1년7개월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