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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노선'이 뭔지 드러내야 한다
반기문 독트린(Ban Kimun doctrine, 반기문 노선)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는 일차적으론 '국가통합'이란 화두를 던졌다.
한국사회의 첨예한 이념적, 정치적, 사회적, 지역적 갈등과 분열을 지적한 용어였다.
그런 갈등과 분열을 극복해 국가적, 국민적 통합을 이룩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
좋은 말이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말은 아니다.
누구나 늘 해오던 교과서적인 말일 뿐이다.
현실은 또한 교과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데
한국정치의 어려움이 있다.
이 말은 그래서 해석을 잘 해야만
뜬구름 아닌 적실(適實)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어떻게 잘 해석할 것인가?한국사회 분열의 조각들을 모두 다 100% 하나로 합칠 수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통합’을 논해야 한다. 가급적 많은 조각들을 '공유 가능한‘ 공통의 끈으로 꿰어,
내편이 상대편보다 훨씬 다수파가 되는 게 곧 통합임을 알아야 한다.
이 '꿰는 일'은 따라서 '통합'이라기보다는
'연합(alliance)' '연립(coalition)'이라 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 있다.'연합'과' '연립'은 각(各) 조각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그러나 그들이 가진 공통분모를 축으로 해서 연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러이러한 점에선 의견이 중첩된다.
이걸 기초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자"는 계약인 셈이다.
이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덮어놓고) 통합하자"는 말보다 훨씬 더 정직한 말이다.중요한 것은
"모든 정파나 부류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이 '연합' 또는 '연립' 속에 주어 담을 수 있다"고
낙관하거나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단언하지 않는 것이다.
왜? 절대로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엔 '연합' '연립' 할 수 있는 상대가 있고,
반대로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대도 있기 마련이다.'연합' '연립' 하려야 할 수 없는 상대와는
그래서 그냥 경쟁적인 또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치열한 '정치적-도덕적-문화적 헤게모니 투쟁'을 벌이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반기문 총장은 앞으로 "어디서 어디까지는 '연합' '연립'이 가능하고,
어디서부터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인가?"를
면밀히 살피고 자문하고 파악하고 고백해야 한다.지금까지는 모든 유형의 사람들과 집단들이
'세계 대통령 반기문'에 대해 한 점 주고 대접해 왔다.
그래서 그는 세상일을 자칫 낙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인데...”
그러나 일단 정치에 발을 담그고 나면 그는 이내 자신에겐
도처에 적(敵)이 있다는 사실을 뼈가 시리도록 실감하게 될 것이다.그는 말했다.
"북한과 대화 채널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일 것"이라고.
그러나 그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그리고 그 때 그가 북한이 원하는 대로 일방적으로 다 해주지 않거나 못할 때,
북한이 그를 어떤 흉악한 말로 욕하고 매도하고 저주할 것인지를
그는 그제야 알게 될 것이다.
"아, 나도 안 되네?" 하며.이건 국내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에도 그의 선의에 절대로 선의로 응해주지 않을,
그래서 '통합'은커녕, 법안 하나 제대로 통과시켜주지 않을
요지부동의 상대진영-적대진영이 그에게도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그는 이걸 각오하고 있나?
그는 혹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마음을 열어놓고 그들 쪽으로 열심히 다가가면 설마 그들이 나를 적으로 여길라고"?.그러나 예컨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손학규 당시 야당대표에게
"나도 옛날에 학생운동 좀 했다. 그러니 봐 달라"고 했는데도,
그리고 "나는 보수가 아니라 중도실용주의다"라고 자처했는데도,
그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거의 저승 문 앞까지 갔다가 간신히 되돌아왔다.
이걸 모르고 섣불리 "나는 적이 아니니까 적으로 보지 말고 친구로 대해 달라"고
나이브하게, 또는 세상물정 모른 채 나갔다가는 크게 당할 일 있을 것이다.리더는 상대편과 마주해, 내편을 짜고
내편의 덩치를 상대편 덩치보다 더 크게 불릴 줄 아는
전략가라야 한다.
그래서 조직력(힘)과 영향력(감화력)에서
상대방을 압도하는 게 이기는 자, 즉 리더다.
반기문은 과연 누구와 편짜기를 하고 누구와 맞붙을 것인가?
그리고 그는 과연 자기편을 상대편보다 훨씬 더 큰 다수파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서도 그는 세상 모두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8방미인 식 수사학, 어설픈 비빔밥, 전략적 모호성에
빠지지 않는 채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내세워 보일 수 있을까?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