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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수는 지나간 10년 세월을 돌이켜 본다. 어깨가 아프지 않으면 허리가 아프고, 허리를 고치고 나면 무릎이 아프고…. 한마디로 종합병원이었다. 일일이 병원을 찾아다닐 수도 없거니와 병원을 간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내일처럼 정성껏 봐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아 고민하게 되고, 고민하다 보면 침술서적을 보게 마련이다. 아무리 책을 봐도 풀리지 않는 문제는 고수들을 찾아다니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답을 알게 되면 실험을 해봐야 한다. 그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는 직접 침을 놔봐야만 알 수 있다. 돌팔이 중에서도 왕초보에게 누가 침을 맞겠는가. 누가 자기 몸을 실험용으로 제공하겠다고 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자기 몸을 마루타로 쓸 수밖에 없었다, 자기 몸에 침을 놓으면서 명의도 타고나는 것이란 생각을 자주 했다. 건강한 사람은 아무리 침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침을 놓을 수가 없다.
어떻게 멀쩡한 몽에 침을 놓을 수가 있겠는가? 여기저기 아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최백수는 자기 몸에 침을 놓으면서 자신이 인체 실험을 하는 데는 최고의 마루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습득한 침술이다.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는 하찮은 돌팔이라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최백수는 자신에게 침을 맞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있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지금 제가 놓으려는 침은 제가 먼저 맞아본 것입니다.”
이 말은 부작용이 없다는 뜻이다. 안심해도 좋다는 말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작용이 없다고 강조해도 믿질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증거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오죽 답답하면 그렇게 했겠는가? 이 말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심 봉사다. 그가 동냥 젓으로 딸 심청이를 키운 것처럼 아픈 사람에게 제발 제 침 좀 한 번 맞아 달라고 동냥을 하면서 익힌 침술이다.
최백수는 지긋이 두 눈을 감는다. 지나간 1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기 때문이다. 맨 처음 침을 배우게 된 동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막상 사표를 내고 사회에 나왔으나 궁둥이를 붙일만한 자리가 없었다.
정보기관 출신이라는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다. 그러자면 만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혜택을 주는 게 필요했다, 권력이나 돈이 없으면 얼굴이라도 잘 생겼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주먹이라도 쓸 줄 알아야 했다.
이도저도 아니면 거짓말이라도 잘하든가, 남을 속이는 기술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사회에 적응할 수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이때 눈에 뜨인 게 수지침이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침을 놓아주면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래서 시작한 게 수지침이었고. 종착역은 돌팔이였다.
“내가 헛된 짓을 한 건기?”길을 잘못 든 기분이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지 않고, 혼자서 지름길을 찾다가 보니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다. 최백수는 침을 꺼내면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뭔가 억울하다는 기분이다.
기가 막힌 재주를 갖고 있으면서도 돌팔이라서 써먹지를 못한다는 억울함이다. 홍길동의 억울함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난(亂)을 일으켰겠는가?
단지 서자(庶子)라는 이유로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응시하지 못했다. 그 설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처음 침술을 배울 때는 침술만 배우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알았다.
큰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초보 눈에도 뭔가 이상한 게 하나 보이긴 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자격증이 없다는 문제였다. 그때 벌써 돌팔이의 세상이 희미하게 보였던 것이다.
“병만 잘 고치면 되는 것이지 무슨 자격증이 필요한가?‘
이렇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게 법이고 질서 아닌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