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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수는 비 오는 밤에 춘심을 이기지 못하고 시 한 편을 지었다. 그러느라 시계는 어느새 새벽 두 시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자야 한다. 이러다가 밤을 새우겠다. 그런데 통 잠이 올 생각을 않는다. 그렇다고 꼬박 날밤을 새울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잠을 잘 수가 있지?”
최백수는 좋은 생각이 있다는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앉는다. 불을 켜고 TV도 켠다. 장기전에 대비하려는 모양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초조해하면 잠이 더 오지 않는다. 차라리 뭔가를 적극적으로 하다보면 노곤해지고,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잠이 올 수도 있다. 이게 자연스럽게 잠을 청하는 방법이다.
불을 켜고 TV를 보면서 뭔가를 하려는 것이다. 갑자기 침을 꺼낸다. 불면증을 고치는 데는 침만 한 게 없다. 요즘 발바닥이 아팠지만 심하지 않아서 그냥저냥 지냈다. 오늘처럼 잠이 오지 않는 날 병도 고치고 불면증도 치료하려는 것이다.
일석이조란 말은 이런 때 써먹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럼 어떻게 발의 통증을 고치면서 불면증도 치료한다는 말인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최백수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발바닥의 통증은 그에 적합한 침을 놓음으로써 고치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불면증도 고친다는 것이냐는 의문이다. 이게 궁금할 것이다. 최백수는 자신의 몸이 몹시 허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만 운동을 해도 몹시 피곤하다. 같은 이치로 침을 맞아도 금방 노곤해진다. 정상적인 사람은 낮에 운동을 하다가 침을 맞고도 금방 또 운동을 해도 피곤함을 못 느낀다. 그게 정상적인 사람의 건강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백수는 위 수술을 받은 이후 그런 건강을 잃었다. 침 한 방을 맞아도 금방 피곤해 한다. 그래서 낮에는 가급적 침을 맞지 않고 주로 밤에 맞는다. 그것도 잠들기 직전에 맞는다.
그러면 스르르 잠이 온다. 정신 모르고 한잠 푹 자고 나면 아침이다. 병도 고치고 잠도 푹 잔다. 일석이조의 효과다. 최백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 몸에 침을 놓으려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는 한의원도 많고 내로라하는 명의도 많지만 방방곡곡에는 돌팔이 침술가도 적지 않다.
돌팔이들이 유명 한의원의 명의들과 공존한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최백수는 맨 처음 수지침을 배우면서 사부에게 물었던 질문을 떠올린다.
“침도 놓나요?”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최백수는 아직도 의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침은 한의대를 나온 한의사만 놓을 수 있는 것이고, 한의사가 아닌 사람은 절대 침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가를 받지 않고 봉사로 하는 침술은 민간요법이라 처벌 받지 않는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런 의료정책 때문에 돌팔이와 명의가 공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큰 의문은 누가 나 같은 돌팔이에게 침을 맞겠느냐는 의문이었다. 사부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자기 몸에 놓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자기 몸에 침을?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돌팔이 침술가가 되려면 필히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돌팔이 침술가로 명성을 날리는 사람이 하나같이 겪었던 과정이다. 침 한 방이면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소문난 돌팔이에게도 침을 맞으려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하물며 돌팔이가 되겠다고 막 공부를 시작하는 새끼 돌팔이에게 누구 침을 맞겠는가? 그러니 초보 돌팔이는 자기 몸에 침을 놓는 연습부터 할 필요가 있다. 자기 몸에 침을 놓으면서 명의도 태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무리 공부라고 해도 멀쩡한 사람은 자기 몸에 침을 놓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 아픈 사람이라야 궁여지책으로 침을 놓게 된다. 자기 병을 고치려고 고민하다 보면 의문사항은 책을 보게 되고, 그래도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여기저기 고수를 찾아다니며 물어보는 과정을 거쳐야 된다.그게 돌팔이의 성장과정이다. 다행히 최백수는 돌팔이가 될 수 있는 조건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아픈 곳이 많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