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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최백수는 마음이 허전하다. 외로움이 봄비처럼 촉촉이 가슴을 적신다. 일찍 자리 누워서 잠을 청한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눈을 감고 자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눈은 초롱초롱 맑아진다. 최백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봄비가 오는 거리는 물기로 흥건하다.
“왜 단비가 오는데 마음이 쓸쓸한 거지?”겨우내 눈비가 잦았다고는 해도 대청호가 만수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적어도 2300밀리는 더 내려야 가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당연히 반가워해야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가슴이 텅 비어 있는 것처럼 허전하다. 최백수는 마음에 상처라도 난 것처럼 쓰리다고 생각한다.
“텅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방법을 궁리해 본다. 마땅치가 않다. 무엇으로 채우기엔 텅 빈 가슴이 너무 넓다. 공활한 가을 하늘처럼 드넓다. 이건 채워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쓰린 마음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무슨 약을 발라야 아물게 할 수 있을까?”이 문제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쓰라린 마음에 약을 발라 아물게 하기엔 증상이 너무 심하다. 이건 약으로 고치려고하면 안 된다고 판단한다. 계절이 바뀌듯 세월이 가면 점차 무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백수는 A4 용지 한 장을 꺼낸다. 자신의 마음을 적으려는 것이다. 봄비처럼 허전한 마음이 촉촉이 백지를 적시기 시작한다.
텅 빈 가슴
가슴이 비었나
왜 이렇게 공허할까?가슴에
상처라도 났나
왜 이다지 쓰릴까?무엇으로
텅 빈 가슴을 채우고무엇으로
쓰라린 마음을
아물게 할까?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불치라고 해도봄비처럼
소리 없이
흐느끼다 보면
무심한 세월처럼
무뎌지려나.‘
최백수는 얼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제법이라고도 생각한다. 시인도 아니고, 평소 시를 열심히 읽는 사람도 아니다. 전혀 무뢰한이 이 정도로 썼으면 근사한 것이다. 이만하면 쓸쓸한 마음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느닷없이 시 한 편을 지었으니 밥값은 했다고 자부한다. 그만 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소파에 눕는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는다. 뭔가 표현이 부적절한 게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제목부터 마땅찮다.
‘텅 빈 가슴’이라고 하기보단 그냥 ‘빈 가슴’이라고 고치는 게 좋겠다.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불치라고 해도…”
라는 부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부분이 하이라이트인데 너무 밋밋하다. 최백수는 더 좋은 말을 찾아 고민한다.“빈 가슴에 꿈을 심고,
쓰라린 마음엔
사랑을 품는다고 해도그것은 일시적인 처방일 뿐
금방 또
도지는 고질병이라고 해도…“
라고 고치자. 이 정도면 만족이다. 글자 몇 개를 바꿨는데 훨씬 좋아졌다. 비로소 시로서 면모를 갖추었다고 자평한다. 이제 더 이상 고칠게 없다는 자신감으로 A4용지에 또박또박 정서한다.빈 가슴
가슴이 비었나
왜 이렇게 공허할까?가슴에
상처가 났나
왜 이다지 쓰릴까?무엇으로
텅 빈 가슴을 채우고
무엇으로
쓰라린 마음을
아물게 할까?빈 가슴에
꿈을 심고
쓰린 마음엔
사랑을 품는다고 해도그것은 일시적인 처방일뿐
금방 또 도지는
고질병이라 해도봄비처럼
소리 없이
흐느끼며 살다보면
무심한 세월처럼
무뎌지려나.
최백수는 자신이 지은 시를 카톡 스로리에 올린다.
“2016 3 4 봄비 내리는 심야에 최종웅 짓다.”
란 말도 덧붙인다.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 보고는 더 이상 고칠 게 없다고 만족해한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도 두 눈은 말똥말똥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