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된다는데…
  • 최백수는 감치명령이란 소설을 쓰도록 제보한 그 기자가 그 감치명령을 받던 해에 인사신(寅巳申) 삼형살(三刑殺)이 들어온 해였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 그 기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더 놀라운 말을 들었다.
    그가 감치명령을 받고 12년 후 다시 삼형살이 들어오던 해에 송사가 생겨서 또 감옥에 갈  뻔했지만 지인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자니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 무시하고 말자니 너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최백수는 자신이 쓴 책들로 가득 찬 책장을 둘러본다. 그의 눈길이 머문 곳은 “최종웅의 세상보기‘ 란 단행본이다. 지역 일간지에 3년 동안 쓴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 책을 빼들 생각을 않고 생각에 잠긴다.
    괜한 노력을 했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사설이나 칼럼은 글을 쓸 당시에는 관심도 있고, 감동도 있지만 몇 년 세월이 지나고 보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이 났을 때는 어떻게 끄느냐는 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막상 불을 끄고 난 뒤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최백수는 그런 기분으로 그 책을 바라본다.
    아무튼 그 신문사에서 글을 잘 쓰고 있는데 다른 신문사로부터 스카우트를 받았다. 지금 쓰고 있는 신문보다 발행부수도 많고, 대우도 낫게 해주겠다는 제의였다.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리를 옮겼다.

    “최종웅의 시각”이란 제목으로 일주일에 3번씩 2년여 동안 칼럼을 썼다. 그 글을 모아 놓은 책이 바로 “내 인생에 박수”란 칼럼집이다. 그 책을 보면서 말이 씨가 된다는 생각을 한다. “내 인생에 박수”란 제목이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 책 제목처럼 저 책을 마지막으로 출간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물론 위암 수술을 받았으니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는 건강상태였지만 거침없이 질주하던 문운(文運)도 막히는 듯했다,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어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고, 여기저기 프러포즈를 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특유의 금(金) 기운으로 엎어 버리고 말았다. 옛날에는, 문운(文運)이 좋던 시절엔, 단 한 번도 없었던 악재가 자꾸 터졌다.
    단 한 번도 글의 주제에 대한 제한을 받아보지 않았는데 그런 문제로 말썽이 생겼다. 이젠 정말 그 좋던 문운(文運)도 막히는 것이라고 단념하고 있을 때 의외의 길이 열렸다. 최백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인생에 박수’ 란 책을 빼어들고 회한에 잠긴다.
    이 책의 이름이 ‘내 인생에 박수’였지만 자기 인생을 정리한 글은 아니었다. 제목만 그렇게 달고 서문만 그렇게 썼을 뿐이다. 순전히 독자의 취향에 맞는 제목을 찾다가 선택한 제목일 뿐이다.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런데도 말이 씨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 이상한 건 요즘 쓰는 글이다. 마치 자기 인생을 정리하는 듯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런 글을 쓰려고 한 게 아니었다.

    테러방지법 이야기를 쓰다가 제동이 걸렸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쓴 칼럼을 보고 국정원장이 더 적극적으로 입법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뜻밖의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런 글을 쓰면 안 된다는 제한을 받았다.
    갑자기 글 쓰는 게 시들해졌다. 글은 가슴에 뜨거운 응어리를 토해내는 맛에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글을 쓰면 안 된다는 제한을 받으니 글 쓰는 일이 재미없어졌다.
    “그만 쓸까? 그만 엎어버릴까?”
    이런 생각도 했다. 글을 쓰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까 삶의 의미가 없어보였다. 또 엎어버리면 글 쓰는 일은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굴욕을 감수하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한을 감수하고라도 글을 쓰자면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이런 문제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역학 이야기였다. 글을 딱딱한 역학 이론 위주로 쓰면 흥미가 없으니까 자신의 인생을 대입시켜 신통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런 의도로 출발하면서 2, 3회로 끝을 내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덧 17회를 넘기고 있다, 앞으로도 한두 번 더 써야 끝이 날 것 같다. 매회 200자 원고지로 20페이지 분량을 쓰니까 3400페이지나 쓴 것이다.
    조금만 더 쓰면 책 한권 분량이 된다. 최백수는 말이 씨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흠칫 놀란다. 자신도 모르는 어떤 과정을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어서다.

    “그럼 난 지금 내 인생을 정리하고 있는 걸까?”
    최백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운명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 한참 세월이 지난 뒤에 돌이켜 보면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을 정리하는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과거를 정돈하는 것인지….
    그때 가서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최백수는 자신의 생각이 자꾸 과거로 회귀하려는 게 마땅찮다. 그래서 억지로 생각을 바꾼다. 책장에 꽂혀 있는 자신이 쓴 책들은 아직도 많다. 자신이 쓴 것이지만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책을 썼을까?
    어떤 목표를 향해 줄달음을 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실적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목표가 없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달리자니 너무 늙어버렸다. 더 이상 욕심을 내다간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가 무위도식하는 것이다. 최백수는 또 한 권의 책을 빼 들다가는 그만둔다. 얼굴이 화끈거려서다. 세상을 지름길로 가고 싶은 욕심으로 쓴 책이다. 그런데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