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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수의 귓전에 다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안기부가 잘나가던 시절엔 큰소리치고 다니다가 맥을 못 추니까 언론에 붙고, 그것도 잘 안 되니까 글을 쓴다고 하는 박쥐 같은 인생이다. 이런 사람은 고생을 좀 해봐야 된다. 책을 팔아 주기는커녕 불매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
물론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런데 뒤에서 이렇게 수근 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최백수는 얼굴을 붉히며 창밖을 바라 본다.
순전히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실패에 대한 구실을 찾는 것이라고 시인한다. 나쁜 신문이란 소설이 팔리지 않은 이유는 저자가 안기부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글을 잘 못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노력할 생각은 않고, 세상 탓만 하려는 것이라고 자책한다. 이젠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는 패배감을 기정사실로 굳히고 싶은 심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후퇴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구실을 만드는 것이다.시궁창에 빠져 있는 자동차처럼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라고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심리다. 앞으로 나가자니 힘이 없다. 뒤로 후퇴할 힘도 역시 없다. 탈진한 상태다. 최백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솔직하지 못하다고 자책한다.
물론 위암 수술을 한 환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할 만큼 치명적이진 않다.
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암 수술을 했기 때문에 포기했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웃는 사람도 많다.
요즘은 위암은 암으로 치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본다. 최백수는 금방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 말도 어폐가 있다.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게 암이라면 뒤로 후퇴할 수도 없는 상황은 대체 무엇인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뒤로 몇 발짝 후퇴할 수도 있다. 그게 전략이고 인생살이다. 그런데 왜 옴짝달싹도 못한다고 하는 건가?
자신의 실패를 기정사실로 굳혀서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을 변명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최백수는 자신의 실패원인이 또 한 가지가 있다고 변명할 구실을 찾는다. 국정원 출신이라서 사회로부터 기피당한 때문이라고….그런 구실이라도 찾지 않고는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의 귓전에 또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느니 차라리 테러를 당하는 게 낫다.”
이 정도로 국정원을 미워하고 불신하는데 국정원 출신이라고 온전하겠느냐는 핑계를 대려는 것이다. 학교 가기 싫은 아이가 꾀병을 앓듯 공연히 전직 핑계를 대는 것이다. 최백수는 다시 국정원을 붙잡고 늘어진다.
차라리 테러를 당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국정원의 고문을 받고, 인생을 망친 피해자라면 모른다. 한국의 제일 야당이 그런 말을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나?
야당도 일정 부분 안보를 책임지는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감정적인 말을 할 수 있나? 최백수는 점입가경이란 생각을 한다. 야당의 태도가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난한다.
대통령이 하도 애걸복걸하니까 하는 시늉이라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테러방지법 통과가 급하다고 하도 졸라대니까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정원에 두기로 했던 국가테러방지센터를 총리실로 이관하자는 것이다.
국정원에 테러센터를 두는 것은 국정원이 테러업무를 총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소가 웃을 일이다. 불이 나면 진화 책임을 지는 게 소방서다. 그런데 119 상황실을 국방부에 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이보다 더 웃기는 제안도 했다. 테러정보 수집권도 국민안전처로 옮기자는 것이다. 이 말은 세무공무원에게 강도를 잡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이런 야당과 어떻게 안보를 논할 수 있나?
야당도 알 것이다. 자신들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지를…. 그런데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장난이나 하자는 저의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제안을 해놓고 세월이나 보내자는 심산이다.최백수는 방안을 서성인다. 점점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만큼 가슴이 답답하다는 뜻이다. 최백수의 눈에 YS가 보인다. 가택연금을 당했을 때 비좁은 마당을 뺑뺑 돌던 모습이다. 아무리 국정원이 미워도 그럴 수는 없다.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도 국정원 출신이기 때문에 비슷한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나쁜 신문이란 소설을 내면서 국정원 출신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일말의 동정이라도 받았을 것이다. 최백수는 언론과 국정원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국정원을 가장 미워하는 게 언론이다. 무슨 책이든 출판으로 성공하려면 언론의 협조를 받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맨 처음 나쁜 신문을 출판했을 때 여러 언론에서 관심을 보였다. 인터뷰 요청도 받고, 취재도 하겠다는 전화도 받았다. 서울 대형서점에서도 주목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