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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창밖엔 눈보라가 치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세차다. 인생살이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탄탄대로를 순항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해 할 때 느닷없이 폭풍우가 몰아치고, 이젠 끝났다고 포기하려할 때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을 때마다 조급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 싶어 안달을 한다. 앞으로 나가긴 해야겠는데 도무지 앞을 내다볼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무엇이 있는 가를 알아보기 위해 점술가를 찾거나 종교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것이다.
최백수는 역학이 사람의 성격을 맞추는 데는 신통력이 있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족집게처럼 정확하게 맞추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학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도 있다.문제는 수 천 년 전, 맨 처음 역학을 만들 때의 인간관계의 성격이 지금과는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실제로 역학을 처음 만들 때의 여자와 요즘 여자들은 의식이 판이하다. 당시 여자들은 남편(官)의 지배를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일부종사하겠다는 각오도 대단했다.
요즘 여자들은 남편의 구속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자들은 남편을 관으로 생각하지 않고, 평등한 관계로 여긴다. 그러니 역학이 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유한다면 체중을 재는 저울로 키를 재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다. 몇 천 년 전 중국에서 만들어진 역학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 바뀔 필요가 있다. 세상이 다 변하는데 역학 혼자만 변하지 않으면 결국은 도태당하고 말 것이다.최백수의 머리에 언뜻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다.
“성인(聖人)도 종(從) 시속(時俗)한다.”
아무리 학문이 높은 성인이라도 시속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역학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찾으려고 궁리하다가보니 떠오른 생각이다. 최백수는 아무리 세상이 변했더라도 사람의 운명을 알아맞히는 학문 중에 역학만큼 과학적이고 신통한 게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은 점점 영리해지고 있고, 영리한 인간은 자꾸 신(神)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든다. 그 영역만 들어가면 모든 소원이 한꺼번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신(神)과 인간의 경계를 철저히 지키는 것처럼 행복한 게 없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게 이만큼의 능력을 준 것은 그게 합당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떤 방법으로든 인간은 신의 영역을 침범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설령 천신만고 끝에 신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뚫고 들어간다면 신이 가만히 있겠는가.
더욱 울타리를 튼튼하게 칠 것이다. 가령 돼지를 키우는 농민이 있다고 치자. 자꾸 돼지가 우리를 넘어오면 가만히 두겠는가. 울타리를 더욱 높게 칠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이중삼중으로 울타리를 칠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넘어오면 돼지를 잡아먹거나 팔아버릴 것이다. 이 말은 어떤 점술로도 신의 영역을 뚫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신의 섭리를 인정하고 순응하고 사는 게 지혜로운 삶이라는 뜻이다.최백수는 간혹 역학 얘기를 하다가 황당한 공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전 기독교를 믿기 때문에 역학은 보지 않아요.”
“전 미신은 믿지 않아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역학은 과학을 기본으로 한 학문이고, 목사 신부는 물론이고, 스님도 역학을 많이 배운다는 말을 하면서 설득하려고 해본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역학을 비과학적인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
최백수의 상상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백지 위에 써놓은 자신의 사주팔자를 자세히 살펴본다. 자신의 사주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게 화(火)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자신의 운명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도 다 팔자소관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은 경금(庚) 일간(日刊)이다. 경(庚)금 하나만으로도 강하다는 소릴 듣는데 세 개나 된다. 그 세 개가 흩어져 있어도 강한데 똘똘 뭉쳐있다. 그러니 얼마나 강하겠는가? 얼마나 강한지를 수치로 계산하면 50%나 된다.
일지를 20%로 계산하면 무려 70%나 된다.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게 다 경(庚)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풍파를 겪은 것들도 다 자신의 성격 때문에 자초한 것이다.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견뎠더라면 자신의 인생길은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사다. 과거에 집착하기 보다는 앞일을 걱정하는 게 현명하다.자신의 사주팔자를 살펴보는 최백수의 눈이 갑자기 커진다,
“이게 뭐지?”
무(戊)토다. 무(戊)토가 년주 천간에 버티고 있다.
“무토는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마디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너무 많은 게 부족함만 못하다는 뜻이다. 불필요한 존재다. 장마가 졌는데 또 비가 오는 격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가뭄이 극심한데 연일 맑은 날만 계속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백수는 자신의 사주가 너무 금(金) 기운이 강한 게 문제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병을 고칠 수 있느냐는 생각에 빠져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