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알면 운명이 보인다
  • 점술의 목적은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장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답을 해줘야 용한 것이다. 귀인을 만나 횡재한다든가, 여자 조심하라든가. 동쪽으로 가면 손재수가 있다는 따위의 답이 나와야 맞는다.
    그래야 근사치까지 가는 것이다. 최백수는 돋보기를 고쳐 쓰고 오늘의 운세를 정독하기 시작한다.
     “베풀면 마음이 오히려 편하게 된다.“
    “음주운전은 절대하지 말 것”
    “나의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라”
    하나같이 뜬구름 잡는 말이다, 이것을 점괘라고 한다면 점을 못 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걸으면 피곤하고 차를 타면 편할 것이라고 얘기한다거나, 초등학생에게 내년에는 중학교에 진학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최백수는 머리를 가로젓는다.
    “도대체 이런 엉터리 점괘를 어떤 근거로 만든 것일까”
    사람의 운명을 알아맞히는 게 점술의 목적이다. 어떤 점술이든 사람의 운명을 알아맞히려면 어떤 근거가 있어야할 것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하지 않던가? 최소한 생년월 일과 태어난 시(時) 정도는 알아야 운명을 알아맞히려는 노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얼굴이라도 한두 번 봐야만 성격을 유추할 수 있고, 성격으로 행동을 알아내고, 운명도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최백수는 지금까지 들었던 상식을 총동원해서 상상해본다.
    사람의 운명을 알아맞히는 점술은 크게 서너 가지로 나뉜다고 들었다. 하나는 신기(神氣)로 맞추는 것이다.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영감이 떠오르고, 그 영감을 말하면 바로 점괘가 되는 것이다.

    옛날에 집 앞을 지나가던 한 중이 어린아이를 보고 열 살을 넘기지 못하고 횡사하겠다는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부모가 몸이 달아서 노승을 찾아가 애원하였다.  객사를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내가 써준 부적을 달고 다니든지, 절로 들어와 스님이 되라고 일러주었다는 따위의 이야기가 아직도 흥미를 끈다. 다 그런 게 영감으로 맞추는 신기(神氣)라고 볼 수 있다. 아니다. 신기(神氣)로 말하면 무당이 스님보다 더 전문가다.

    명산대찰을 찾아가 산신기도를 드리면 산신령의 정기를 받아서 영험함을 얻는다고 한다. 정성껏 제물을 마련해서 기도 발이 좋다는 명산을 찾아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 간혹 무당에게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것은 물론 인생까지 말아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다 신기(神氣)로 운명을 맞추는 사람들이다. 신기(神氣) 다음으로 주목을 받는 게 학문이다. 우주 만물이 변하는 원칙을 관찰해서 일정한 현상을 발견하고, 그 현상을 특정인에게 적용해서 운명을 맞추는 방식이다.

    최백수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태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동쪽에서 뜬다. 동쪽에서 뜬 해는 어느 지역이든 간에 서쪽으로 진다. 이게 바로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얼마든지 많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고, 봄엔 만물이 소생하고, 여름엔 어떤 식물이든 다 성장하며, 가을엔 결실을 거둔다. 아무리 무성한 나무라도 겨울엔 이파리 하나 없이 다 떨어진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만 남겨놓고 다 포기하는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이다. 다 죽은 것처럼 보이던 나무가 봄이 오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새잎이 돋아나서 소생한다. 이런 원칙은 비단 자연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우주 만물에 똑같이 적용된다.

    당연히 인간에게도 비슷한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음양오행 이론이고, 이 원리로 역학 주역 등 수많은 철학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난 지금 어떤 때를 살고 있는 것일까?”
    최백수는 이런 궁금증을 갖고 신문을 뒤적인다. 내가 살고 있는 시기가 바로 때이고, 그때를 철이라고 하며, 철을 알면 인생의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다. 겨울에 씨앗을 파종하면 백번을 해도 다 실패하지만 봄에 파종하면 백전백승을 거둘 수 있다.
    인생의 봄을 사는 청년이 노는데 팔려서 파종을 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가을에 거둘 양식이 없게 된다. 베짱이 인생이 바로 그런 것이다. 겨울을 사는 노년이 봄으로 착각하고 씨를 뿌린다면 착실히 준비했던 노후마저 망치게 된다.
    노욕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철을 무시하고 함부로 구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최백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개똥철학은 한없이 계속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계절이 어느 때인가를 알면 소생할 것인지, 성장할 것인지, 결실을 거둘 것인지, 죽을 것인지 등을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이치로 가을을 맞으면 결실을 거두는 기쁨을 맛보겠지만, 곧 죽음과도 같은 인고의 겨울을 보내야 봄을 맞을 수 있다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최백수는 역학이 참으로 신통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자신은 가을을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딸 결혼시켜 손주 재롱을 보는 것은 다 결실이다. 그런데 그 가을이 즐길 사이도 없이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육십의 나이가 황금의 가을이라면 칠십은 겨울 벌판이다. 찬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버려야 한다. 부와 명예는 물론 사랑까지도 버려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이런 내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일까?“
    최백수는 이런 궁금증을 갖고 오늘의 운세를 들여다보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