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팔아 만든 기술, 글로벌 표준 꿈꾼다”“친환경 소독제, 축산업 게임 체인저 될 것”“데이터 기반 ‘축산의 아마존’을 향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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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솔루트원 황한솔 대표.ⓒ이길표 기자
어린 시절 놀이터는 ‘양계장’이었다. 매일 달걀을 줍고, 병아리를 키우며 자란 한 소년은 ‘축산업은 이래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싶었다. 이제 그는 단순히 달걀을 생산·유통하는 사람이 아니다. 축산 질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솔루션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두드리는 혁신가로 성장했다. 주인공은 농업회사법인 ㈜한솔루트원(충남 당진시 면천면 면천로 165)의 황한솔 대표(48)다.“양계업의 최대 리스크는 질병입니다. 질병이 터지면 가격이 요동칩니다. 농가는 손해를 보고, 소비자는 불안을 느끼죠. 저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2016년 말, 미국에서 스포츠 빅데이터를 전공하고 귀국한 황한솔 대표는 진로를 고민하던 중, 이듬해 갑작스럽게 부친 황기현 고문(78)의 병환으로 가업을 물려받게 됐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양계장을 운영한 그는 단순히 달걀을 잘 파는 농장주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축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향해 있었다.◇“락스 대신 친환경, 농장의 판을 바꾸다”황 대표가 발견한 첫 번째 문제는 ‘달걀 세척’이었다.“지금도 대부분 농장이 차아염소산나트륨, 락스로 달걀을 세척합니다. 인체에 무해하다고 해도 소비자 입장에서 락스를 달걀에 뿌린다는 건 불편하죠.”한솔루트원은 이를 친환경 방식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카이스트에서 개발된 과일 코팅 원천 기술에 주목한 황 대표는 ‘이 기술, 축산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최인성 교수(화학과)와 협력해 3년에 걸쳐 축산물 전용 친환경 소독제를 개발했다.이 소독제는 폴리페놀 성분 기반으로, 축사 내부와 달걀 껍데기에 직접 사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축에 직접 뿌려도 안전하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기존 소독제는 맹독성이 있어 가축에게 닿으면 오히려 위험했다. 황 대표는 “가축에 직접 뿌릴 수 있는 무독성 소독제는 전 세계에서 저희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아이필굿’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이 제품은 달걀 껍데기에 나노 코팅을 입혀 살모넬라, 대장균 등 유해균을 제거하면서도 달걀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소독이 잘 되더라도 달걀의 보호막이 손상되면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우리는 오히려 나노 코팅을 덧입혀서 달걀의 신선도를 길게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소비자, 유통업자, 농장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거죠.” -
- ▲ ㈜한솔루트원 황한솔 대표가 KAIST 연구진과 친환경 소독제 개발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이길표 기자
◇“달걀 팔아서 세계 최초 소독제를 개발하다”놀라운 점은 이 모든 기술 개발이 정부 지원 없이, ‘달걀을 팔아 번 돈’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농업 회사는 R&D 자금을 받기 정말 힘듭니다. ‘달걀 파는 회사가 무슨 첨단 기술이 있겠냐’는 선입견이 강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직접 달걀을 팔아서 연구비를 마련했습니다.”그가 운영하던 농장은 원래 연 매출 15억 원 규모의 소규모 양계장이었다. 황 대표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매출은 10배 가까이 뛰어 150억 원을 기록했다. 이 모든 수익을 기술 개발에 재투자했다.“사람들이 농장에서 뭔가 혁신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농장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느낀 문제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한솔루트원은 실제로 자사 농장에서 개발한 소독제를 적용한 결과,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해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축산 농가의 가장 큰 고민이던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국 농가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게다가 이 제품은 살모넬라, 대장균뿐 아니라 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도 강력한 방어 효과를 입증했다. “백신은 특정 질병 하나에만 효과가 있지만, 저희 제품은 다양한 바이러스에 범용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백신을 맞추면 농축산물 수출이 제한되지만, 저희 소독제는 친환경이라 수출에도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
- ▲ ㈜한솔루트원 황한솔 대표가 현관에 설치된 친환경 달걀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이길표 기자
◇“세계 축산업이 기다리는 솔루션”황 대표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미 미국, 태국, 베트남에서 PoC(기술검증)를 진행 중이며, 특히 미국 농림부의 조류인플루엔자 대응 R&D 과제에도 도전장을 냈다.“미국은 최근 조류인플루엔자가 포유류까지 확산하면서 비상 상황입니다. 농림부가 1조 원 규모의 연구 프로젝트를 공모했는데, 저희가 두 가지 솔루션을 제안했습니다. 선정되면 FDA 우선 심사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글로벌 시장 진출이 급물살을 탈 겁니다.”그는 미국, 브라질, 태국 등 축산 수출 강국들이 필요로 하는 솔루션을 만들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백신을 맞추면 수출이 막히는 국가들이 많아요. 저희 솔루션은 수출이 막히지 않으면서 질병 예방이 가능하므로, 이 나라들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기술입니다.”이미 태국의 세계 4위 축산기업 CP그룹도 관심을 보였다. “태국 CP그룹이 저희 제품을 보고 바로 제품 등록과 PoC 진행을 제안했습니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입니다.”◇“축산의 아마존을 꿈꾸다”하지만 황 대표의 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스마트 파밍’ 데이터 플랫폼을 함께 개발 중이다.“세계적으로 스마트팜이 확산하고 있지만, 축산 데이터는 생각보다 제대로 모이지 않습니다. 질병 데이터, 생산성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야 진짜 스마트팜이 돌아가거든요.” -
- ▲ ㈜한솔루트원의 한 직원이 양계장에서 축산 질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솔루션 개발 제품을 살포한 뒤 살펴보고 있다.ⓒ㈜한솔루트원
한솔루트원은 소독제, 유통, 질병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축산의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저희 제품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질병 데이터를 모을 수 있어요. 이 데이터가 쌓이면 전 세계 축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죠. 궁극적으로 질병을 예측하고 방어하는 체계를 만들고 싶습니다.”황 대표는 “제품만 팔면 쉽게 복제당할 수 있지만, 데이터는 복제할 수 없어요. 데이터가 쌓이면 축산업의 구글이 될 수도 있다”며 웃었다.◇“달걀에서 시작된 글로벌 혁신”황 대표의 기업가 정신은 단순한 달걀 유통업을 넘어, 축산 질병 문제를 해결하고, 더 안전한 먹거리 유통망을 구축하려는 데 있다.“저희가 하는 일은 결국 사람들이 더 안전하게,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달걀을 팔아서 만든 기술로 전 세계 축산 질병 문제를 해결하고, 친환경 농업의 글로벌 표준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저희 한솔루트원의 길입니다.”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런 기술이라면, 언젠가는 노벨상도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