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버너서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로… ‘44년 코베아의 도전과 진화’산업을 넘어 기억의 터전으로… 캠핑은 자연과 마음 잇는 ‘따뜻한 공간’소가 풀 뜯던 청주 낭성 목장, ‘2027년 캠핑의 성지가 된다’
  • ▲ 강혜근 ㈜코베아 회장.ⓒ㈜코베아
    ▲ 강혜근 ㈜코베아 회장.ⓒ㈜코베아
    국내 대표 캠핑 브랜드 ‘㈜코베아(KOVEA, 인천광역시 계양구 서운산단로 1길 87)’를 이끄는 강혜근 회장은 캠핑을 ‘추억 산업’이라 정의한다. 단순한 야외 활동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삶의 한 장면을 기억으로 남기는 일이라는 그의 철학은 단단하다.

    “캠핑은 따뜻한 기억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길을 사명감으로 걸어갑니다.” ‘제19회 코베아캠핑페스티벌(KOCAF)’이 열린 2025년 5월 18일 경기 가평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남편(故 김동숙 회장)이 원래 산악인이었어요. 그때는 석유 버너가 주로 쓰이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외국에 나가보니까 상황이 다르더라고요. 프랑스에서 사 온 가스버너를 보면서 ‘이거다’ 싶었어요.”

    당시 그의 남편은 ‘시나브로’라는 회사에서 영업과장을 맡고 있었다. 석유 버너를 다루는 기술이 있었고, 세계를 다니며 새로운 제품을 접할 기회도 많았다. 그는 나사식으로 작동하는 외국의 가스버너를 사서 매일같이 뜯어보고 실험했다. 강 회장은 남편이 위험한 가스 실험을 집 안에서 하자 이를 말리고 밖에서 하라며 말다툼을 벌인 기억도 떠올렸다.

    “가스는 무섭잖아요. 그걸 집에서 자꾸 만지니까, 바깥에서 하라고 등 떠밀었죠. 그런데 그것이, 코베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알코올로 기화시켜 불을 붙이던 방식에서 착안한 ‘토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라이터 가스를 넣어 사용하는 ‘유자형 토치’가 그렇게 탄생했다. 지금도 본사 역사관에 보관된 이 제품은, 코베아 가스기술의 원점이 됐다.
  • ▲ 바닷가 바람을 맞으며 펼쳐진 ㈜코베아의 야외용 텐트 아래, 두명의 캠퍼가 서로의 이야기와 웃음을 나누는 낭만 가득한 순간.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부드러운 모래 위에서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는 그들의 캠핑 라이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코베아
    ▲ 바닷가 바람을 맞으며 펼쳐진 ㈜코베아의 야외용 텐트 아래, 두명의 캠퍼가 서로의 이야기와 웃음을 나누는 낭만 가득한 순간.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부드러운 모래 위에서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는 그들의 캠핑 라이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코베아
    “우리 본사에 오시면 ‘소삼당’이라고 이름 붙인 역사관이 있어요.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고난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다 담아놨죠. 이 남자는 박물관 하나쯤은 이름에 남아야 한다 싶어서요.”

    가스 토치에 이어 강 회장은 ‘러브스타(Lovestar)’라는 이름의 최초 가스 곤로를 내놓았다. 당시 석유곤로 디자인을 참고해 만든 제품이었다. 이어 ‘투 버너(2구 버너)’라는 발상의 전환이 이어졌다. 한국인의 식문화는 밥과 찌개가 동시에 필요하다. 한 개짜리 스토브로는 안 된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풀기 위하여 두 개짜리 버너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기아와 현대 등에 대량 납품되며 대히트를 쳤다.

    “현대 납품하러 갈 때는 현대차 타고, 기아 갈 때는 기아차 타고 갔어요. 그런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코베아는 점차 성장했다. 강 회장은 지금도 초창기 제품을 보관하며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최근에는 그의 아들이 연구실을 맡아 컨테이너용 스토브와 화덕 등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다음 세대가 창조하는 기술과 감성은 또 다른 코베아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금도 대기 번호가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컨테이너 스토브도 그렇고, 화덕도 그렇고,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세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죠.”

    1982년부터 2025년까지, 올해로 44주년을 맞은 코베아. 한 남자의 뚝심과 한 가정의 고난과 도전이 만든 브랜드는 이제 전 세계 캠핑족에게 신뢰의 이름이 됐다.
  • ▲ 1982년 ㈜코베아를 창업한 고 김동숙 회장.ⓒ㈜코베아
    ▲ 1982년 ㈜코베아를 창업한 고 김동숙 회장.ⓒ㈜코베아
    ◇“작은 토치 하나에서 시작된 세계로의 도전”

    강 회장은 코베아라는 이름을 지은 일화도 소개하였다. 코리아(Korea)의 ‘K’를 ‘V’로 바꾼 단어, ‘KOVEA’.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누구나 기억하기 쉽게 만들고 싶다는 남편의 센스였다. “전시회에서 외국인들이 한 번 들으면 잊지 않더라고요.”

    고(故) 김동숙 회장. 그는 성실 그 자체였다. 술도 못 하였지만, 분위기는 누구보다 잘 맞췄고, 항상 주변을 웃게 하였다. “동대문, 남대문 산악용품 시장에서는 ‘김동숙’ 하면 다들 좋은 사람이라고 하였어요.”

    지금은 아들이 연구개발을 맡아 새로운 세대와 함께 나아가고 있다. 강혜근 회장은 본사에 역사관도 마련하였다. “그냥 흘러가게 두기 싫었어요. 남편은 이름 하나라도 남겨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죠.”

    그는 77세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 부모님은 80 넘게 사셨기에 남편도 오래 살 줄 알았어요. 근데 명이 짧더라고요.” 회장은 말끝을 흐리며, 그러나 여전히 환한 미소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시절 월세방에서 시작한 사업이, 전 세계에 수출되는 브랜드가 됐어요. 저는 그저 옆에서 조심스럽게 등을 밀었을 뿐이에요.”

    ◇“기술로 시작해 신뢰로 성장하다”

    남편이 직접 개발한 국내 최초 가스토치는 국내 시장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였고, ‘러브스타’, ‘2구 버너’ 등 한국인의 생활방식에 맞춘 제품들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며 브랜드는 급성장하였다.
  • ▲ ㈜코베아 공장 생산라인에서 최첨단 버너를 조립하고 있다.ⓒ㈜코베아
    ▲ ㈜코베아 공장 생산라인에서 최첨단 버너를 조립하고 있다.ⓒ㈜코베아
    하지만 단순히 운만으로 된 일은 아니다. 코베아는 창업 초기부터 사훈(社訓)을 명확히 세웠다. 

    “코베아의 사훈은 ‘인화지선(人和之善), 근면지선(勤勉之先), 기술지선(技術之線), 결과지선(結果之鮮)’. 이는 인화단결, 상품존중, 신의중시를 말한다. 즉, 기술이 먼지이고,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예요. 남편이 늘 입에 달고 살았죠.”

    이러한 철학은 곧 제품력으로 이어졌고, 해외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현재 코베아는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중동, 유럽 전역 등으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미국 시장이 가장 크고요, 특히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MSR, 프랑스의 데카슬론과도 OEM으로 협력 중이에요. 제품 경쟁력이 없으면 그런 파트너십은 불가능하죠.”

    코베아의 제조기반은 인천시 계양구 서운산업단지에 있다. 본사 역시 같은 지역에 위치한다. “기술력은 생산 현장에서 나오는 거죠. 공장이 바로 옆에 있으니 개발과 피드백도 빠르게 이루어져요.”

    최근에는 기존의 버너 제품을 넘어, 멀티 연료 시스템과 접이식 고출력 스토브, 프리미엄 캠핑 토치, 야외용 히터, 차박 전용 장비 등으로 라인업을 넓혔다. “과거엔 단순히 ‘산에 가는 장비’였다면, 이제는 삶의 여유를 디자인하는 도구가 된 거죠. 그 흐름에 맞춰 변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44년의 세월, 수십 개국의 시장, 수백만 소비자에게 불꽃 하나로 따뜻한 기억을 선물한 브랜드. 그리고 그 옆을 지켜온 강혜근 회장은 오늘도 남편이 남긴 철학을 조용히 꺼내 보인다.

    “코베아는 기술도, 제품도 중요하지만 결국 신뢰로 크는 회사예요. 신뢰는 사람이 만드는 거고요.”
  • ▲ ㈜코베아의 생산 제품인 텐트 방수 테스트 장면.ⓒ㈜코베아
    ▲ ㈜코베아의 생산 제품인 텐트 방수 테스트 장면.ⓒ㈜코베아
    ◇“한국산 불꽃은 여전히 뜨겁다”…기술‧철학 지킨 40년

    “남편이 늘 말했어요. ‘기술은 국내에서, 철학도 국내에서.’” 강 회장은 지금도 제품의 중심에는 ‘가스’가 있다고 말한다. 가스스토브, 토치, 난방기 등 불을 다루는 기술은 여전히 코베아의 핵심이다.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은 ‘컨테이너 스토브’로 불린다. 말 그대로 작은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고성능 스토브로, 뚜껑을 열면 버너가 튀어나오고 간편하게 조립하여 사용할 수 있어 국내외 캠핑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코베아의 가스 기구 대부분은 지금도 인천 서운산업단지에서 제조된다. “한때는 인건비 문제 때문에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도 검토했어요. 그런데 선대 회장님 뜻이 있었죠. 핵심 기술만큼은 국내에서 지키자는 거였어요. 그 철학을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적 생산도 병행 중이다. 가스 기구를 제외한 텐트, 자일, 침낭 등 일부 캠핑용품은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OEM·ODM 방식으로 생산한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비전 코베아’를 통하여 수입·유통된다.

    코베아는 현재 3개 법인으로 운영된다. ‘코베아’는 가스 기구 전문 제조, ‘비전 코베아’는 해외에서 생산한 캠핑용품을 수입·유통, ‘트랑고’는 전문 등반 장비 제조 및 유통(자일, 헬멧, 아이젠 등). 이처럼 분업화된 조직 구조 덕분에 코베아는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2024년) 매출만 해도 약 600억 원 정도 됩니다. 수출도 꾸준히 늘고 있고요.”
  • ▲ 2025년 5월 18일, 신록이 짙게 물든 경기 가평 자라섬 캠핑장에서 펼쳐진 ‘제19회 코베아 캠핑페스티벌(KOCAF)’.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무대 위에 선 가수 에일리의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가 자연과 어우러져, 캠핑장 전체를 감성으로 물들였다. 별빛 아래 낭만과 음악이 흐르는 이 특별한 밤, 모두가 하나 되어 즐긴 잊지 못할 순간이다.
    ▲ 2025년 5월 18일, 신록이 짙게 물든 경기 가평 자라섬 캠핑장에서 펼쳐진 ‘제19회 코베아 캠핑페스티벌(KOCAF)’.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무대 위에 선 가수 에일리의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가 자연과 어우러져, 캠핑장 전체를 감성으로 물들였다. 별빛 아래 낭만과 음악이 흐르는 이 특별한 밤, 모두가 하나 되어 즐긴 잊지 못할 순간이다.
    코베아는 이미 2020년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주요 수출국은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중동, 유럽 전역 등 주로 선진국 시장이다.

    “이런 제품은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 되어야 수요가 생기잖아요. 특히 러시아 같은 경우는 전기가 원활하지 않은 지역이 많아서, 가스 기반 난방기나 조리기구 수요가 많아요.”

    제품의 핵심은 ‘불’이지만, 코베아가 팔고 있는 건 단지 스토브가 아니다. 휴식과 자유, 그리고 자연 속에서의 따뜻한 기억이다.

    “기술만으로는 오래 못 가요. 사람을 생각하는 제품, 사람을 위한 기업이 되어야 하죠.”

    강 회장의 눈빛엔 여전히 불꽃이 살아있다. 그 불꽃은 캠핑장에서도, 수출 항구에서도, 개발실과 공장에서도 꺼지지 않는다.

    ◇“구독하는 캠핑 시대…낭성 캠핑랜드, ‘미래형 실험장’”

    청주의 한적한 들판. 한때는 소들이 풀을 뜯던 목장이었던 이곳에, 대한민국 캠핑 산업의 미래를 담은 실험장이 조성되고 있다. 캠핑용품 강자 코베아를 이끄는 강혜근 회장은 이곳을 단순한 캠핑장이 아닌 ‘캠핑 라이프의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그 시작은 사적인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강 회장은 “남편과 함께 전국 캠핑장을 다니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남편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지만, 현장을 함께 둘러보며 ‘이건 내가 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고 회상하였다. 청주는 강 회장의 고향이자,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특별한 장소다.
  • ▲ ㈜코베아 인천광역시 본사. ⓒ㈜코베아
    ▲ ㈜코베아 인천광역시 본사. ⓒ㈜코베아
    오랜 시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 계획은 우연한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한창 잊고 있었는데, 육촌 동생이 ‘아직도 그 생각 해?’ 하고 묻더라고요. ‘생각은 하지’라고 했더니 ‘그럼 한번 보러 갈래?’ 하더라고요.” 그렇게 찾아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의 옛 목장 부지. 약간의 구릉과 자연스러운 시야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너무 평평한 곳보다 살짝 업다운이 있는 지형이 더 매력 있잖아요. 캠핑도, 행사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요.”

    사업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캠핑랜드 조성 초기엔 ‘천억 원 규모’라는 언론 보도로 기대와 부담이 동시에 불어났다. 일부에선 규모 축소를 두고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기업이 한다고 하여도 현실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지요. 멋지게 세운 마스터플랜이 오히려 부담된 측면도 있어요. 하지만 조급하지 않아요. 욕심보다는 제 속도에 맞추어, 차근차근히 하여 빠르게 변하는 캠핑 트렌드에 맞추어, 강 회장은 일단 클럽하우스를 짓고, 캠퍼들이 쉴 수 있는 기본 공간부터 마련할 계획이다. 캠핑 사이트 설계도 처음부터 정교하게 잡아 ‘나중에 손볼 일이 없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캠퍼들이 이 공간에서 편히 쉬고 좋은 기억을 만들 수 있느냐는 거예요. 조금씩 넓혀가고, 필요한 건 천천히 채워 갈 겁니다.”

    청주는 서울에서도 차량으로 2시간 반이면 도달 가능한 접근성 좋은 곳이다. 여기에 코베아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더하여, 강 회장은 이곳을 ‘대한민국 캠핑 문화의 중심지’로 키워가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남편과의 기억에서 출발한 약속, 그리고 캠핑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눔. 강혜근 회장의 청주 캠핑랜드는 단순한 사업 그 이상이다. 느리지만 단단한 걸음으로, 그녀는 청주의 들판 위에 새로운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