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 운일암반일암 계곡 탐방[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전북 진안군 편
  • ▲ 동봉(삼장봉)에서 바라본 상봉(운장대).ⓒ진경수 山 애호가
    ▲ 동봉(삼장봉)에서 바라본 상봉(운장대).ⓒ진경수 山 애호가
    운장산(雲藏山, 해발 1126m)은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정천면 봉학리, 부귀면 궁항리와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등성이에는 상봉(운장대)·동봉(삼장봉)·서봉(독재봉)의 3개 봉우리가 거의 비슷한 높이로 서 있다.

    산명(山名)은 조선조 성리학자 송익필(1534~1599) 선생이 은거했던 오성대가 있던 곳이라 해서 선생의 자(字)인 운장(雲長)을 따 운장산이라 불린다. 또 산이 높아 항상 구름이 덮여 있다는 의미에서 운장산(雲藏山)이라 불린다고 전한다. 

    이 산을 오르기 위해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위치한 내처사 마을주차장에 도착한다.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일컬어 처사(處士)라 한다. 처사가 살았던 마을에 이르니 덕행보다 학벌을 앞세워 출세하려는 요즘 세태에 신선한 가르침을 주는 듯하다.
  • ▲ 참나무 숲길을 오르는 젊은 산객들.ⓒ진경수 山 애호가
    ▲ 참나무 숲길을 오르는 젊은 산객들.ⓒ진경수 山 애호가
    이번 산행은 내처사 마을주차장~동봉(삼장봉)~상봉(운장대)~서봉(칠성대)~활목재·독자동 갈림길~원점 회귀의 총 8.5㎞이다. 주차장에서 계곡을 건너 밭길로 들어서니 동봉(삼장봉) 2.7㎞의 이정표를 만난다. 풀숲이 머금은 이슬을 스치며 걷다가 숲으로 들어선다.

    목교를 지나자 무성한 산죽이 호위하고 있는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공사 중인 임도를 가로질러 숲길을 오르니 초록으로 가득 채운 완만한 능선길이 호흡을 가지런히 한다. 다시 이어지는 산죽은 계단과 바윗길을 만나 잠시 헤어지지만 이내 다시 만난다.

    젊은 산객들의 힘찬 발걸음이 성큼성큼 다가오니 길을 비켜주고, 뒤따라 오르자 쉼터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 잠시 수다를 떤다. 그들의 미래가 짙푸르게 변해가는 숲처럼 희망으로 농후해졌으면 좋겠다. 힘찬 걸음을 먼저 보내고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에 생기를 얻어 힘겨운 발걸음을 내디딘다.
  • ▲ 운장산 동봉(삼장봉).ⓒ진경수 山 애호가
    ▲ 운장산 동봉(삼장봉).ⓒ진경수 山 애호가
    참나무 숲길과 바윗길을 올라 다시 산죽의 호위를 받으며 오른다. 하늘이 열리는 곳에서 저 멀리 대둔산을 찾아보려 하지만, 연막탄을 터트린 듯 희뿌연 구름이 산등성이에 내려앉아 시야를 가린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죽이 인도하는 길을 걷자니 정도(正道)가 떠오른다.

    바르게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하며, 바르게 정진하고 깨어 있으며 집중하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 살자고 이웃에 해악을 끼치게 된다고 한다. 마치 왜곡 선동하는 특정한 이들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이 산을 찾아 올라보라 한다.

    긴 숲길을 올라 평지에 닿는다. 둥글둥글한 초록 모자를 쓴 동봉을 보니 포근한 엄마 품이 그립다. 고도를 높일수록 심장 박동은 가빠지는데 참나무들은 외려 그 키를 나지막하게 낮춘다. 물감을 뿌려놓은 듯 초목이 천지를 초록으로 덮으니 심신의 피곤이 달아난다.
  • ▲ 운장산 동봉에서 본 상봉(左)과 서봉(右).ⓒ진경수 山 애호가
    ▲ 운장산 동봉에서 본 상봉(左)과 서봉(右).ⓒ진경수 山 애호가
    구봉산과 운장대 갈림길을 지나 운장대 방향으로 몇 걸음 옮기자 해발 1133m 삼장봉에 닿는다. 동쪽 구봉산 방향에서 시작해 서쪽 서봉(독재봉)에 이르기까지 쉬엄쉬엄 풍광에 취해 본다. 구름 속에 몸을 숨긴 희미한 능선들, 그 속에서 산을 구별할 수 없으니 외려 편하다.

    어쩜 우리의 삶도 선명한 것보다 보일 듯 말 듯 한 것이 더 신비롭다. 마치 착함(善)을 말하면 그 속엔 악함(惡)이, 아름다움(美)을 말하면 그 속엔 추함(醜)이, 옳음(是)을 말하면 그 속엔 아님(非)이 있으니, 분별하지 않음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근데 그것이 어찌 말처럼 쉽던가, 그래서 산행 수행을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상봉(운장대)에 오르기 위해 계단을 내려서니 삼장봉이 작은 바위가 아니라 거대한 암봉이다. 내려서자마자 두 바위 사이에서 참나무가 삼장법사를 따르는 손오공처럼 참회하듯 굽었다.
  • ▲ 운장산 운장대.ⓒ진경수 山 애호가
    ▲ 운장산 운장대.ⓒ진경수 山 애호가
    산죽을 따라 자갈이 널려 있는 참나무 숲길을 걷는다. 밧줄 난간이 설치된 암릉과 계단을 오르니 산성의 흔적이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머물러 멀어지는 삼장봉과 목전에 다가선 운장대를 조망한다. 다시 이어진 가파른 암릉을 밧줄 난간의 도움으로 해발 1126m 운장대에 도착한다.

    날씨가 좋은 날엔 마이산과 부귀산, 백운산, 멀리 지리산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명산 조망을 안내판으로 대신하고, 한층 가까워진 서봉을 향해 발걸음 옮긴다. 능선을 가로막고 누운 거대한 바위를 돌아 내려간다.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온 돌길을 걷다가 길옆 바위에 올라보고, 능선을 막고 암릉을 이룬 거대한 바윗덩이에도 오른다. 그곳에서 힘겹게 올랐던 동봉을 바라보니 산자락이 거침없이 내리친다. 이제 이번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 서봉이 지척이다. 그곳을 향해 숲길로 내려선다.
  • ▲ 서봉으로 가는 암릉 길에서 바라본 운장산 동봉 산자락.ⓒ진경수 山 애호가
    ▲ 서봉으로 가는 암릉 길에서 바라본 운장산 동봉 산자락.ⓒ진경수 山 애호가
    서봉 아래에 이르니, 암릉이 시작된다. 가파른 암봉을 연결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일망무제로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지나온 동봉과 상봉, 그리고 능선에 박힌 바윗덩이들이 정겹다. 계단 끝에는 피암목재와 보룡재의 갈림길 이정표가 세워졌다.

    보룡재 방향으로 암봉에 올라서면 드디어 서봉의 정상인 해발 1120m 칠성대에 도착한다.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이 내려와 선비들을 깨웠다는 곳이다. 서봉은 기암절벽과 하늘과 맞닿을 듯 우뚝 솟은 암봉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비 또는 인간의 수명과 재물을 관장한다는 칠성신(七星神)은 과연 선비들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었을까? 사뭇 그것이 궁금하다. 추측하건대 이곳은 옛적에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기우제를 지냈던 곳은 아닐까 싶다.
  • ▲ 서봉으로 가는 암릉 길에서 바라본 운장산 서봉.ⓒ진경수 山 애호가
    ▲ 서봉으로 가는 암릉 길에서 바라본 운장산 서봉.ⓒ진경수 山 애호가
    칠성대에서 지나온 산길을 바라본다. 춤추듯 흐느적대며 달려오는 산등성이를 두 발로 걸어 올랐다는 것이 대견스럽다. 노자의 도덕경 64장에 천리지행 시어족하(千里之行 始於足下)라는 말이 있다. 즉, 천 리의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는 말이다.

    산을 빨리 오르겠다는 조급한 마음의 공간에 여유를 심어둔다. 그러면 산을 오를 때 보이지 않던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산을 내려갈 때 그 사물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우리네 삶도 또한 이러한 산행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첫 숟가락에 배부를 수 없듯이 차근차근히 목표를 향해 성실히 달려가다 보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처럼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만일 로또 당첨되듯이 하루아침에 목표 달성을 바란다면 그것은 허망한 도깨비의 꿈이며,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을 거다.
  • ▲ 운장산 서봉에서 바라본 동봉(左)과 상봉(右).ⓒ진경수 山 애호가
    ▲ 운장산 서봉에서 바라본 동봉(左)과 상봉(右).ⓒ진경수 山 애호가
    삶이 찰나에 불과한 아침 이슬과 같고, 순간 왔다가 사라지는 번개와 같은데 어찌 그리 여유를 부리는가 앙탈을 부릴지라도, 한 백 년이 짧다 하면 짧고 길다 하면 긴 세월이라 결국에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달래본다.

    칠성대를 지나 깎아지른 암벽으로 이뤄진 오성대로 이동한다. 이곳에서는 또 어떤 사연이 있었단 말인가? 이곳에서 선비들은 오성(悟性)이라는 인식 능력, 즉 사물의 시비(是非)·선악(善惡)·미추(美醜)를 식별하는 능력을 키웠을까?

    아니면, 인(仁)·의(義)·예(禮)·지(智)로 구성되는 마음의 본체에 신(信)을 더해 어질고 의로우며 예의를 지키고 지혜로우며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유교의 덕목인 오상(五常)을 배웠을까?
  • ▲ 서봉 오성대.ⓒ진경수 山 애호가
    ▲ 서봉 오성대.ⓒ진경수 山 애호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러한 분별함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기쁨·노여움·욕심·두려움·근심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내 마음을 다스리며 그 모든 걸 내려놓는 것을 깨달았을까? 서봉에서 괜히 실없는 것에 집착한 건 아닌지 싶다.

    오성대에서 다시 칠성대로 건너와 이정표까지 내려간다. 그곳에서 독자동·피암목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아주 가파른 통나무 계단을 내려와 잔돌이 수북하게 깔린 산길을 내려간다. 연적산 갈림길을 지나고 산죽의 안내를 받으며 계속 하행한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돌길에서 두어 차례 미끄러졌지만 크게 다치진 않았다. 세월의 탓일까, 두 다리가 자신의 몸뚱이를 지탱하기 버거운 모양이다. 고깃덩이를 덜어내고 다리 힘을 길러야겠다 싶다. 능선은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가파른 비탈길로 이어진다.
  • ▲ 서봉 칠성대.ⓒ진경수 山 애호가
    ▲ 서봉 칠성대.ⓒ진경수 山 애호가
    이어 독자동과 동상휴게소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독자동 방향으로 산죽이 울창하고 경사가 급한 통나무 계단을 내려선다. 울창한 숲속으로 거친 바윗길이 줄곧 이어진다. 오가는 등산객의 인기척도 없다. 축축한 숲 내음과 공허감을 달래주는 새소리만 동행한다.

    푸른 이끼를 머금은 바위 너덜지대를 지나 목교를 건넌 후 독자동길로 내려간다. 이번 산행에서 바윗길은 안전하게 하행했지만, 잔돌이 깔린 산길에선 낙상했다. 이처럼 실패는 위험 요소가 큰 것보다 작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니 소소한 일이라고 소홀하게 취급하면 자칫 잘못될 수 있다고 산이 가르친다.

    개설 중인 임도를 건너 숲길을 하행하다가 임도를 만나 운장산·구봉산 안내도가 세워진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이제부턴 산행을 마치고 콘크리트 포장된 농로를 걷지만, 숲이 우거져서 시원하고 지루하지 않아 나름대로 괜찮다.
  • ▲ 운일암반일암의 도덕정(左)과 구름다리(右).ⓒ진경수 山 애호가
    ▲ 운일암반일암의 도덕정(左)과 구름다리(右).ⓒ진경수 山 애호가
    계곡을 잇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측 길로 들어서면 내처사길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있다. 그렇지 않고 쭉 걸어가다 보면 내처사길과 내처사마을 표지석을 만난다. 이곳에서 내처사마을로 발걸음을 옮기면 보호수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어 자동차로 운일암반일암 삼거광장으로 출발한다. 운일암반일암(雲日巖 半日巖)은 명덕봉과 명도봉 사이의 약 5㎞에 이르는 주자천 계곡을 말한다. 70여 전까지만 해도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길이 없이 오가는 것은 구름밖에 없다 하여 운일암(雲日巖), 하루 중에 햇빛이 반나절 밖에 볼 수 없다 하여 반일암(半日巖)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삼거광장에서 주자천을 따라 칠은교를 지나 도덕정까지 산책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관리사무실이 있는 주차장을 이용해 무지개다리와 구름다리도 함께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이번 산행은 내일의 열매가 잘 영글어지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