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400년이 넘은 암반 철쭉 만개[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대구 동구 편
  • ▲ 약 400년의 수령의 암반 철쭉꽃 만발.ⓒ진경수 山 애호가
    ▲ 약 400년의 수령의 암반 철쭉꽃 만발.ⓒ진경수 山 애호가
    팔공산(八公山, 해발 1192m)은 대구광역시 동구와 군위군, 경북 경산시, 영천시, 칠곡군 5개의 시·군·구에 걸쳐 있는 산으로 2023년 12월 31일 우리나라에서 23번째로 팔공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일명, 미타봉 1155m)과 서봉(일명, 삼성봉 1150m)이 어깨를 나란히 겨루고 있으며, 동·서로 20㎞에 걸쳐 능선이 이어진다. 이 산은 불교 문화의 중심지로서, 동화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찰이 산재해 있다.

    산명(山名)은 신라시대에는 부악(父岳), 중악(中岳) 또는 공산(公山)이라 했으며, 고려시대에는 공산(公山)이라고 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 지금의 팔공산(八公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 ▲ 구름 속에 숨은 팔공산 주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구름 속에 숨은 팔공산 주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팔공산으로 가는 도중에 일출과 운해를 보는 행운을 안고 대구 동화사 정문 근처에 도착한다. 공휴일에는 주차가 허용되는 갓길에 주차한다. 이곳에서 동화사까지 0.45㎞, 탑골 등산로 입구까지 0.2㎞이다.

    동화사에서 빈대골을 거처 팔공산 주능선에 오르기로 한다. 그러나 등산로 입구를 찾을 수 없어 동화사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약수암과 등산로 이정표가 있어 반갑게 약수암으로 들어선다. 약수암 뒤편의 산길을 무심하게 오르니 석탑에 도착한다.

    길이 없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석탑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 능선을 찾기로 한다. 그간 산행 경험이 방향을 이끄니 곧바로 등산로를 발견한다. 숲사이로 팔공산 능선을 힐긋 쳐다보고, 수행도량이라는 안내문도 본다. 이젠 제대로 산길에 접어들었으니 안심이다.
  • ▲ 거북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거북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산꼭대기 바위에 오르니 팔공산 주능선이 아직 보여줄 수 없다며 구름에 가려졌다. 한참을 기다려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넘어야 할 산을 가늠하고 길을 재촉한다. 촉촉하게 젖어 수북한 낙엽과 울퉁불퉁 바윗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오른다.

    인적(人跡)도, 이정표도, 산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등산 리본조차도 없는 막막한 산길을 걷는다. 어차피 생사(生死)는 누구도 동행할 수 없고 혼자 가는 길이 아니던가. 어쩜 이 길이 그걸 준비하라 일깨우는 듯하다.

    그렇다고 외롭거나 괴롭지도 아니하니, 그건 새들과 바람의 노랫소리가 기쁨을 주고, 초목의 풋풋한 내음이 생기를 주며, 산길의 거북바위와 기암괴석들이 길동무로 동행하기 때문이다. 숨 가쁘게 오르다가 깊은 호흡으로 가슴이 활짝 펼쳐지자 발걸음은 주능선에 닿았다.
  • ▲ 전망정자에서 바라본 동봉과 비로봉.ⓒ진경수 山 애호가
    ▲ 전망정자에서 바라본 동봉과 비로봉.ⓒ진경수 山 애호가
    주능선과 만난 현위치번호는 49로 도마재(현위치번호 48)를 지나친 지점이다. 짙푸른 참나무와 진달래 숲길을 걷는다. 완만한 흙길은 지친 발걸음을 달래주고, 기암괴석과 노송의 어울림이 편안한 여유를 준다. 산길 왼쪽 숲 사이로 길쭉하게 늘어져 있는 상행 능선이 보인다. 그곳에 남긴 발자취를 대신해 추억을 가지고 가고, 노년의 삶을 배운다.

    완만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 연분홍 철쭉이 방끗 웃으니 가슴이 설렌다.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추함이 있음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포용할 뿐이다. 산길 오른쪽 숲 사이로는 동봉과 비로봉이 위용을 드러낸다. 동화사 갈림길을 지나면서 길은 점점 거칠고 험해진다. 산비탈을 따라 오르내리는 산길은 전망정자에 닿는다.

    이곳에서 산행 부부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풍부한 팔공산의 산행 정보를 얻는다. 세상 사람들이 산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잠시 후에 만나게 될 동봉과 비로봉을 조망하고 서로 각자의 길을 떠난다.
  • ▲ 염불봉에서 바라본 동봉.ⓒ진경수 山 애호가
    ▲ 염불봉에서 바라본 동봉.ⓒ진경수 山 애호가
    거칠고 험한 비탈길과 바윗길은 동화사 갈림길을 지나서도 계속된다. 이어 계단과 암릉을 오르면 지나온 능선을 비롯해 사방으로 풍광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동봉을 0.5㎞을 앞둔 지점에서 우뚝 솟은 바위 아래에 마련된 널찍한 쉼터를 지나서 계단과 암릉을 오른다.

    그러자 암반 위에 둥글게 생긴 거대한 바윗덩어리들이 놓인 염불봉에 도착한다. 그 모습이 마치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 동봉을 바라보니 온통 가파른 바윗덩어리투성이다. 험한 모습을 아니 보이려 청록의 숲으로 가리려고 애를 쓴다.

    꼬꾸라질 듯 가파른 산길을 간신히 밧줄을 잡고 내려와 동봉으로 향한다. 높다란 바위를 가로질러 설치된 계단을 걸을 땐 마치 하늘길을 걷는 듯하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야말로 천상의 전망대가 아닐 수 없다. 동봉을 오르면서 염불봉과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니 초록 바다에 자그마한 섬들이 듬성듬성 놓인 듯하다.
  • ▲ 동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염불봉과 지나온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동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염불봉과 지나온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바위와 바위를 잇는 계단과 가파른 바위에 매달아 놓은 계단이 설치되기 전엔 밧줄을 잡고 힘들게 올랐어야 할 터이다. 동봉을 오르면서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모이고 모여서 암봉을 이루면서도 서로가 다투지도 죽일 듯이 미워도 하지 않더라.

    아마도 그렇게 되었더라면 지금의 동봉이 없었을 게다.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우리 사회를 자신처럼 여러 돌덩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통합하여 치유하라 한다. 이념과 차별, 답이 없는 정부(正負)로 편 가름을 조장하는 못된 이들에게 죽비를 내리는 듯하다.

    드디어 거대한 바위 전시장인 해발 1167m 동봉에 도착한다. 휴일이라 많은 등산객이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위해 길게 늘어섰다. 바위투성이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하는 나무들은 그늘을 만들어 산객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이 또한 자연의 배려가 아니던가. 비록 내가 힘들지라도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여유가 넘치는 사회를 꿈꿔 본다.
  • ▲ 동봉에서 바라본 서봉.ⓒ진경수 山 애호가
    ▲ 동봉에서 바라본 서봉.ⓒ진경수 山 애호가
    동봉에서 서봉과 비로봉을 비롯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광을 감상하고, 비로봉을 향해 계단을 내려선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갈림길에 이정표가 없거나 거리표시도 없다는 것이다. 좀 더 국립공원다운 면모를 갖췄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동방의 정유리(淨瑠璃) 세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 앞에 선다. 전체 높이 6m의 거대한 입상으로 서쪽을 향해 중생들의 아픔을 보듬고자 하는 약사여래께 우리 사회의 아픔도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수도사 갈림길을 지나 0.3㎞ 전방에 있는 비로봉을 향해 오르막길을 오른다. 뒤돌아보니 우뚝 솟은 동봉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불상이 눈길을 끈다. 서봉 갈림길을 지나 오르막길에서 만난 암반 철쭉은 만개했다. 수령이 400년이 넘은 철쭉이 척박한 암반에서도 이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환경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몸부림이 아닐까?
  • ▲ 암반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 암반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나이 들어가면서 경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새로움을 찾아 부단히 노력하라는 아름다운 자연의 계시(啓示)인 듯하다. 팔공산의 주봉인 비로봉에 오른다. 방송중계탑으로 그 모양새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비로자나불의 광명이 모든 곳을 두루 비친다는 비로봉의 참뜻은 변함이 없다.

    동봉을 일명 미타봉(彌陀峯)이라 부르는데, 그 또한 극락세계에 계신다는 아미타불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 산을 불교의 성지라 아니 할 수 없다. 비로봉에서 내려와 서봉 삼거리에서 철탑삼거리로 하산한다. 가파른 바윗길이 줄곧 이어지지만, 그들의 어울림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동화사 삼거리를 지나 계속되는 가파른 바윗길, 기암괴석이 수석전시장을 이루니 발길이 더디다. 바위틈새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수가 더위를 가시게 한다. 수태골·염불암·동봉·케이블카 사거리에서 케이블카 방향으로 발길을 향한다. 
  • ▲ 팔공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팔공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여전히 바윗길이 계속되지만 가파른 기세는 한풀 꺾인 듯하다.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산길을 걷자니 마치 신선이 되어 나들이하는 기분이다. 이어 가파른 계단을 밟으며 낙타봉에 오르니, 길게 늘어선 팔공산의 능선이 발길을 또 붙든다. 저 길을 걸어온 두 다리가 대견하다.

    책을 꽂아 놓은 듯한 바위가 있는 낙타봉 전망대에 도착하니 팔공산 능선이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비로봉에서 동봉을 거쳐 굽이치는 능선이 힘찬 붓글씨의 획과 같다. 케이블카 정류장을 내려보고 그곳으로 향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길을 이끈다.

    빵재에 도착해 다시 돌계단과 데크 계단을 올라 케이블카 정류장이 있는 신림봉전망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낙타봉 뒤로 비로봉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날개를 펼친 동봉과 서봉을 조망한다. 한쪽 쏠림보다는 양쪽 균형, 보탬보다는 덜어냄이 갖는 자연의 미가 아닐까 싶다.
  • ▲ 신림봉 전망대.ⓒ진경수 山 애호가
    ▲ 신림봉 전망대.ⓒ진경수 山 애호가
    케이블카 정류장을 지나 지극하면 이뤄진다는 소원바위에 닿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저마다 소원을 담아 바위에 동전을 붙인다. 종교시설을 찾을 때만 기부하거나 착한 마음을 갖고, 그곳을 벗어나면 스프링처럼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이들의 소원까지 들어줄까? 아무튼, 수많은 동전에 담긴 각가지 소원이 다 이뤄졌기를 바라며 계단을 내려간다.

    하산하는 내내 이어지는 바윗길, 그곳에 운치를 더하는 정자까지 있으니 그곳에 올라앉아 잠시 쉬어간다. 살랑대며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달아오는 몸뚱이를 시원하게 식혀주고, 마음속의 먼지까지 날려 보내주니 한층 가벼운 발놀림으로 바윗길을 하산한다.

    하산 도중에 만난 우락부락하면서도 기이한 형상의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만난다. 최상부 바위에 양각된 형상이 마치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교의 수호신인 금강역사(金剛力士)와 같다. 아마도 팔공산을 지키는 수호신이 아닐까 싶다.
  • ▲ 금강역사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금강역사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소나무 숲 사이로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고, 굵은 모래가 깔린 길을 하행한다. 군데군데 기암들이 단순한 산길에서 느끼는 무료함을 달랜다. 깔닥고개에 도착해 나무계단을 한동안 내려오면서 붉게 타오르는 몸이 짙은 청록으로 물든다. 이어 평탄한 단풍나무 숲길에서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만나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걷다 보니 어느새 탑골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하루 산행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망망 산림에 홀로 남겨져 걷는 길, 돌의 대소와 쓰임의 여부를 가리지 않고 품은 산, 척박한 환경에서도 수백 년 동안 절색 미모를 간직한 암반의 철쭉꽃처럼 비록 혼자 걷는 삶일지라도 또 새롭게 내일을 꾸며갈 희망과 용기를 얻어 세속으로 돌아간다.

    오늘 산행은 ‘동화사 정문~동화사~약수암~팔공산 주능선(49번)~전망정자~염불봉~동봉(미티봉)~석조약사여래입상~암반철쭉~비로봉~철답삼거리~낙타봉~신림봉~깔닥고개~탐골등산로입구~원점회귀’의 총 11.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