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40년이 지났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꿀단지 거래처 두 곳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대성중학교 담장 끝에 자리 잡은 제일식품 ‘오뎅공장(어묵공장)’ 그리고 청주교도소 입구 수곡성결교회에 석유 기름을 배달한다. 그즈음 전화번호가 바뀌어 거래처 단골들이 혼란을 겪었다. 한자리 국번호가 두 자리로 바뀌던 날 대윈석유 부판점에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52국 8857 따르릉따르릉 “제일식품인데, 경유 다섯 드럼 빨리 가져와.” 기름 배달하는 쫄보에게는 귀에 익은 반말이다. 
    예비고사가 끝나고 어찌어찌하여 황금란과 연락이 닿았다. 무심천에서 불어오는 12월의 겨울바람이 살을 엔다. 합격자 예비소집 일자가 정해졌다. 남은 시간은 단 이틀, 내일 낮 12시 충북은행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금란이는 서문대교 충북은행 본점 앞 정류장에서 공단 오거리 가는 청신운수 버스에 올랐다. 뒷모습을 마다하고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서문동 현대문구사에 들자 로미오와 줄리엣 OST ‘A Time For Us' 노래가 흐른다. 서울로 떠나기 전 금란이에게 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 판넬 사진을 선물로 주고 싶어 거금 300원을 쏟아부었다.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형 둘 이렇게 네 식구가 살았다. 금란이에게 줄 판넬을 유다락에 숨겨 놓았다. 시간은 참 더디게 지난다.  
    꽃다리 건너 모충동 끄트머리 커브 머리에 충북은행이 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십분 이십 분 한 시간이 지나도 금란이는 오지 않았다.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고 온다는 보장도 없고 연락할 방법도 없다. 비닐로 팽팽하게 감아 한껏 멋을 낸 올리비아 핫세 판넬이 추위에 성애가 낀다. 지금도 ‘충북은행’이라고 하면 악몽의 트라우마가 떠 오른다. 쫄보를 태운 속리산 고속버스가 서울 을지로 3가 삼일빌딩 맞은편 고속버스터미널에 멈추어 선다. 그렇게 금란이와의 만남은 종지부를 찍었다. ​
  • ▲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다이얼 전화기.ⓒ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다이얼 전화기.ⓒ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순식간에 물레방아 룸살롱이 난장판이 된다.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일행이 예비고사 끝내고 술 한 잔에 노래를 부르려고 오셨다가 금란이를 파트너로 낙점했다. 구십 도로 인사를 하고는 무작정 끌고 나왔다. 불과 두 달 전 만남의 장소 충북은행에서 바람맞은 분풀이라도 할 요량이었다. 

    때는 삭풍이 몰아치는 2월 상순 달 밝은 오밤중이다. 둘은 삼십 여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걸어서 청주여자사범대학교에 올라갔다. 충북여중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벽돌이 나뒹구는 건물 속으로 들어가 바람이 잦길 기다리며 말을 이어갔다. 금란이는 서문대교 충북은행 본점 앞에서 서너 시간을 기다려도 쫄보가 오질 않아 울면서 공장으로 돌아갔고, 그날 이후 공장을 때려치우고 룸살롱에 출근했다며 고개를 떨군다. 생각이 달랐다. 미스터리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 추운 겨울날 술기운으로 무심천을 건넜다. 얼음이 깨지고 신발 속으로 찬물이 들어온다. 턱이 덜덜 떨렸다. 온몸을 한기가 뒤덮고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주동 송죽여인숙(훗날 일배집)으로 빨려들었다. 
    2024년 3월 25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실이다. 도대체 왜 변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어본들,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라는 사실뿐이다. 이재룡은 처음과 끝이 같은 글을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