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광에 꽃샘추위도 맥 못 춰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세종특별자치시 편
  • ▲ 소문산성을 오르면서 바라본 꾀꼬리봉(左)·장군봉(右).ⓒ진경수 山 애호가
    ▲ 소문산성을 오르면서 바라본 꾀꼬리봉(左)·장군봉(右).ⓒ진경수 山 애호가
    꾀꼬리봉(해발 271m)과 장군봉(해발 243m)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에 있는 산으로, 두 산 사이의 거리는 약 0.3㎞에 불과하다. 이들 봉우리에 오르면 오랜 세월을 담고 유유히 흐르는 금강 물굽이와 낮은 봉우리이지만 명산과 같은 아름다운 속살을 만날 수 있다.

    꾀꼬리봉은 옛적에 꾀꼬리가 많이 번식하던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과 같고, 장군봉은 이 지역의 어느 산보다도 경관이나 운치가 뛰어나 부근의 산 중에서 장군감의 산이라는 하여 붙여진 이름과 같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부영주차장’(세종시 금남면 부용리 산94-1)이다. 이곳에는 ‘꾀꼬리봉 산책탐방로 종합안내판’과 정자가 세워져 있고, 조금 떨어져 화장실이 있다. 주차장 옆에 세워진 이정표로 이동해 산비탈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 ▲ 제1조망점을 향해 수직절리 암봉을 오르는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 제1조망점을 향해 수직절리 암봉을 오르는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대차게 불어대는 찬바람에 손끝과 귓불, 코끝이 한겨울 때보다 더 시리게 느껴진다. 마음엔 이미 꽃피는 따스한 봄이 왔건만 느닷없이 들이닥친 꽃샘추위에 당황한 탓일까?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계단을 오르자 곧이어 능선에 닿는다.

    이곳에서 능선과 계곡등산로로 갈라진다. 오를 때는 능선으로 오른 후 내려올 때는 계곡등산로로 내려오거나 그 반대로 해도 좋다. 그러나 이번 산행은 능선을 따라 올랐다가 박산주차장을 거쳐 소문산성을 다녀와서 금강변길로 원점회귀 코스를 택한다.

    소나무 숲 사이로 능선을 따라 계단을 오른다. 이어서 볼록볼록 튀어나온 바위들 사이로 길을 오르자니 높은 산을 오르는 기분이다. 멋지게 구부러진 키 작은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울창한 숲 사이를 지난다. 그 길에 따스한 빛이 부드럽게 내리쬐니 봄기운을 느낀다.
  • ▲ 바위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제2조망점.ⓒ진경수 山 애호가
    ▲ 바위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제2조망점.ⓒ진경수 山 애호가
    암반 길과 계단이 반복되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오른다. 등산로 주변으로 펼쳐지는 기암괴석들의 향연으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멈추는 시간이 길어진다. 선바위들 사이를 빠져나가자 수직절리 암봉에 걸쳐진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자 제1조망점에 닿는다. 이곳에서 툭 솟아 있는 장군봉을 올려다보고, 발아래로 펼쳐지는 부용리 마을, 유유히 흐르는 금강 줄기, 산업단지를 조망한다. 옷이 나부낄 정도로 세차게 부는 바람도 멋진 전경에 푹 빠진 마음만큼을 어쩔 도리가 없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뿜어 나오는 짙은 솔향을 맡으며 하행하다가 이내 등산로에 뾰족뾰족 튀어나와 박혀 있는 바위를 밟으며 오름을 이어간다. 오름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내려갔다가 가파르고 거친 바윗길을 오른다. 힘찬 발걸음을 내딛자 신비로운 바위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제2조망점에 닿는다.
  • ▲ 장군봉을 오르는 계단에서 바라본 지나온 조망점, 금강 및 부용교, 그리고 부용봉.ⓒ진경수 山 애호가
    ▲ 장군봉을 오르는 계단에서 바라본 지나온 조망점, 금강 및 부용교, 그리고 부용봉.ⓒ진경수 山 애호가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모여 기이한 바위 군상을 이룬 제2조망점에서 동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가는 금강이 펼쳐진 숨 막히는 풍경을 감상한다. 이어 계단을 오르니 장군봉이 0.2㎞ 앞에 있다고 이정표가 안내한다.

    앞을 막고 선 산봉우리 우측으로 돌아가니 곧추선 계단이 하늘에 닿을 듯 까마득히 이어진다. 한 계단씩 오를수록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면서 눈은 구슬처럼 휘둥그러지고, 환희에 찬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계단 아래의 푸른 소나무 숲속에서 잿빛 속살을 설핏설핏 내밀고 있는 제1, 제2조망점과 금강의 물굽이와 금강을 잇는 부용교와 눈을 마주친다. 북쪽으로 부용봉, 북서쪽으로 부용마을, 서쪽으로 칠불산 능선, 동쪽으로 뿌연 연기를 내뿜는 산업단지를 두루 조망한다.
  • ▲ 장군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 장군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그리고 나머지 계단을 오른 후, 소나무 숲 아래의 완만한 암반과 돌길을 올라 드디어 장군봉 정상에 닿는다. 정상 입구에는 머리에 꾀꼬리 모형을 이고 있는 장승이 세워져 있고, 정상석은 암반 위에 안정하게 놓여 있다. 또 등산지도 안내판과 전망데크가 설치돼 있다.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그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모든 근심과 걱정이 찬바람에 훨훨 날아 가버린다. 산자락을 휘돌아 흐르는 금강의 물 위에 삶의 배를 띄운다. 이 순간이 바로 “나답게 사는 행복”이 아닐까 싶다.

    전망데크에 서니 금강 물굽이에 자리한 산업단지에서 쉼 없이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야금야금 산야를 파먹고 성장한 경제만큼 우리네 삶의 행복지수도 그만큼 높아졌을까? 지난해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38개국 중에서 꼴찌에서 4번째란다.
  • ▲ 금강 물굽이에 들어선 평야 지대와 산업단지.ⓒ진경수 山 애호가
    ▲ 금강 물굽이에 들어선 평야 지대와 산업단지.ⓒ진경수 山 애호가
    아름답고 풍요로운 산천이 지천으로 널려있는데도, 이를 적절하게 삶의 일부로 활용하지 못하고 철학적 사고가 빈곤한 나라. 그래서 이편저편 구별하고 치열한 경쟁을 넘어 상대방을 싸워서 무너뜨려야 진정한 승자로 여기는 극단적 사고가 만연한 병들고 있는 우리네 삶.

    가끔은 오탁의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들어가 나다움을 깨닫고 “나답게 사는 행복”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데크전망 바로 아래의 암반에서 고독을 벗 삼아 살아가는 소나무가 각자도생하는 우리네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듯하다.

    그곳으로 내려가 보니 장군봉 정상이 수평절리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겉보기엔 고도가 낮아 동네 앞산이나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 속살은 여느 명산에 버금가는 다채로운 경관을 숨겨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이 산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 ▲ 꾀꼬리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 꾀꼬리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꾀꼬리봉의 정자를 앞에 두고 장군봉에서 바윗길을 내려가는데 터널을 이룬 소나무 숲길이 아늑하고 포근하다. 숲길을 나오자 송전탑을 지나면서부터 거칠지만 힘들지 않았던 바윗길이 부드러운 흙길로 모습을 바꾼다.

    완만한 능선길을 활처럼 휘어져 오르니 정자가 있는 꾀꼬리봉 정상에 닿는다. 그 옆으로 정상석과 이정표, 그리고 전망데크와 쉼터데크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계곡등산로로 하행하려면 광덕사(1.2㎞)·봉정사(0.7㎞) 방향으로 이동해야 하고, 소문산성으로 가려면 박산리방면(0.7㎞)로 가야 한다.

    정상의 주변에는 활엽수들이 에워싸고 있다. 그 나무들에는 모형의 노란 꾀꼬리가 진짜인 듯 앉아있다. 시시비비를 떠나 그 차제가 정겹다. 정자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한다. 송전탑이 훼방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장군봉과 부용봉을 조망한다.
  • ▲ 임도로 이어지는 박산주차장 갈림길.ⓒ진경수 山 애호가
    ▲ 임도로 이어지는 박산주차장 갈림길.ⓒ진경수 山 애호가
    정자를 지나 박산리·금영산 방향으로 이동하는데,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산수유 꽃망울이 발길을 붙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잔뜩 움츠리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꽃을 피우고 싶어도 아직 때가 아니니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실감 난다.

    이 등산코스에는 이정표가 적절한 위치에 제대로 설치돼 있어 등산 초보자도 길을 잃을 일은 없다. 등산로도 대체로 잘 다듬어져 있어 여유롭게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다. 이제 박산리 방향으로 활엽수 숲길의 부드럽고 완만한 흙길을 이동한다.

    곧이어 계단을 내려가 평탄한 길을 걷는데 활엽수에서 소나무 숲길로 얼굴을 바꾼다. 깊은 초록의 바닷속을 유영하듯 충만한 기쁨으로 헤쳐나가니 데크쉼터가 있는 박산리 방면(0.3㎞)과 봉명사(09㎞)의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서 박산리 방면으로 가파른 계단을 하행한다.
  • ▲ 소문산성.ⓒ진경수 山 애호가
    ▲ 소문산성.ⓒ진경수 山 애호가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하행길에서 ‘세종시계 둘레길’ 푯말을 만난다. 꾀꼬리봉에서 0.7㎞ 남짓 하행하자 박산주차장에 이른다. 이곳에서 부용주차장까지는 2㎞를 임도의 포장길을 걸어야 한다. 그 전에 소문산성(蘇文山城)을 다녀오기로 한다.

    임도를 가로질러 소문산성을 향해 앙상한 나무숲 아래 완만하고 푹신한 흙길을 걷는다. 송전탑 두 개를 지나자 널찍한 밭을 만난다. 이곳에서 장군봉과 꾀꼬리봉의 마루를 잇는 능선을 조망한다. 계획에 없던 소문산성을 다녀오기로 한 선택이 주는 행운의 선물이다.

    이후 약간 오르막길을 오르자 키 큰 나무가 있는 소문산성에 도착한다. 해발 200m 산 정상부에 성벽의 둘레가 350m인 비교적 작은 규모의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이 통과하는 지점은 안쪽에 5~10m의 평탄한 지형이 있고, 성벽 바깥 높이는 5m 내외로 추정된다.
  • ▲ 금강변길을 따라 조성된 벚나무 길.ⓒ진경수 山 애호가
    ▲ 금강변길을 따라 조성된 벚나무 길.ⓒ진경수 山 애호가
    소문산성에서 박산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와 산자락의 생김새에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하행한다. 소문산성이 있는 산은 볼 수 있지만, 장군봉과 꾀꼬리봉은 머리 위에 숨었다. 내리막길을 걷다 보니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이 몸을 싸늘하게 한다.

    임도를 약 1㎞ 내려오니 힌국농어촌공사 금동양수장 건물을 만난다. 이곳에서 강변을 따라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이동한다. 금강변길을 따라 조성된 커다란 벚나무들이 짙푸른 강물의 기운을 받아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화려한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3월 말이면 화려한 자태로 꽃비를 내리며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할 이 길을 상상해 본다. 금강변길을 약 1㎞를 이동하자 부용주차장에 닿는다. 이번 산행에서 느닷없이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를 만났지만, 장군봉과 꾀꼬리봉의 숨겨진 아름다운 경관이 주는 만족과 행복에는 맥 못 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