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산성 성곽길을 걷다![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세종특별자치시 편
  • ▲ 운주산성(서문지)과 운주산.ⓒ진경수 山 애호가
    ▲ 운주산성(서문지)과 운주산.ⓒ진경수 山 애호가
    운주산(雲駐山, 해발 460m)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과 전동면 일대에 있는 산이다. ‘운주(雲駐)라는 산명(山名)은 ‘구름이 머무는 산’이라는 뜻이다. 산의 이름처럼 세종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행의 기점은 해발 88m인 운주산 공영주차장(세종시 전동면 미곡리 116-12)과 이곳에서 약 1㎞ 떨어진 해발 140m인 고산사(高山寺) 주차장(세종시 전동면 미곡리 산6-21)으로 삼을 수 있다.

    운주산 공영주차장을 산행 기점으로 하면 ‘공영주차장 화장실’ 또는 ‘운주산 등산로 종합안내도’ 옆에 설치된 계단을 올라 고산길과 만난 후, 고산사 주차장까지는 1차로 포장길을 걷게 된다.

    고산사 주차장을 산행 기점으로 할 경우, 등산로는 주차장 좌측의 임도 방향으로 계곡을 잇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운주산 종합안내도’ 옆의 계단을 들머리로 한다.
  • ▲ 고산사 일주문.ⓒ진경수 山 애호가
    ▲ 고산사 일주문.ⓒ진경수 山 애호가
    고산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하얀 눈송이가 내린다. 기대하지 않던 설경이 눈 앞에 펼쳐지니, 마음이 행복감으로 한껏 부푼다. 이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환희에 젖고 만족하니 삶 자체가 행복이고, 삶의 연극에 행복이 저절로 찾아든 한 장면을 그린다.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흩날리는 때아닌 눈발이 이상 기후 때문일지라도 지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즐긴다. 고산사 일주문을 통과하여 설화(雪花)가 만발한 숲길을 약 0.2㎞ 여유롭게 거닐면서 자연이 주는 선물을 한껏 누리다 보니 어느새 고산사에 닿는다.

    고산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백제루(百濟樓)’이다. 이 누각에는 백제의 의자대왕과 백제 부흥군의 혼령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백제삼천범종(百濟三千梵鍾)’이 있다.
  • ▲ 눈꽃이 만발한 고산사 가는 길.ⓒ진경수 山 애호가
    ▲ 눈꽃이 만발한 고산사 가는 길.ⓒ진경수 山 애호가
    백제루를 지나 만나는 절 마당에는 우측으로 백제부흥군 대장군이었던 도침대사를 추모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한 도침당(道琛堂)이 있다. 정면으로는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百濟國 義慈大王 慰魂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석 뒤로 계단을 오르니 백제극락보전(百濟極樂寶殿)과 마주한다. 그 앞에 서서 산행에 앞서 합장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 절은 1996년에 창건된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 나당연합군과 끝까지 전투를 벌이다가 숨진 백제 부흥군의 원혼을 달래는 원찰(願刹)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리고 매년 10월이면 ‘백제고산대제(百濟高山大祭)’가 봉행되고 있다.

    백제극락보전의 우측 계단을 올라 산신각(山神閣)과 석불을 모신 여래각(如來閣)을 만난 후, 백제극락보전 왼쪽 옆길을 따라 경내를 나온 후, 계곡을 건너 본격적인 등산로로 들어선다.
  • ▲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앞)와 백제극락보전(뒤).ⓒ진경수 山 애호가
    ▲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앞)와 백제극락보전(뒤).ⓒ진경수 山 애호가
    이어 촉촉하게 젖은 돌계단을 오르는데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설국(雪國)의 풍경이 펼쳐진다. 다시 계곡을 건너 돌계단을 오른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생명을 일깨우는 듯 힘찬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산중에 울려 퍼진다.

    고도를 높여갈수록 계단은 점점 가팔라지고, 나뭇가지의 설화는 수줍음을 감추고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자랑하기 시작한다. 나지막하게 깔린 안무는 점점 짙어져 눈앞의 세상을 분간하기 어렵다. 아직 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걷고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하라 한다.

    돌계단을 하나하나 밟는 발길이 행복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희망차고 가볍다. 등산로 주변으로 드문드문 만나는 바위들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무시로 얼굴을 바꾸는 설경이 더 깊은 행복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 ▲ 운주산성 서문지로 오르는 등산로.ⓒ진경수 山 애호가
    ▲ 운주산성 서문지로 오르는 등산로.ⓒ진경수 山 애호가
    설화의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하얀 계곡의 물줄기와 눈송이를 바라보는 순간, 하얀 꽃밭에서 하얀 꽃비가 내려 하얀 물줄기를 만드는 그야말로 은백색의 무릉도원의 세상에 와 있는 듯 황홀하다.

    그 무엇도 나를 방해할 수 없고, 내가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아니하니 이곳이 바로 신선이 사는 선계(仙界)가 아닌가 싶다. 아무런 장애 없이 설경을 거닐자니 신선이나 진배없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차근차근 발걸음을 옮긴다.

    계곡의 생동감 넘치던 물소리는 혼잣말하는 아이처럼 조잘대며 흐르는 물길로 바뀐다. 짙게 드리운 안무 속으로 운주산성 서문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하늘과의 경계가 사라진 운주산의 능선과 더불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출한다.
  • ▲ 서문지에서 동문지로 가는 성곽길.ⓒ진경수 山 애호가
    ▲ 서문지에서 동문지로 가는 성곽길.ⓒ진경수 山 애호가
    운주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되었으며 외성과 내성의 길이는 각각 3210m와 1230m이다. 해발 460m의 운주산 정상을 기점으로 3개의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석성(石城)이다.

    운주산성 서남지에서 성안을 통해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지만, 이번 산행은 순환성곽로를 돌아보기로 한다. 우측에 있는 성곽로를 따라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이어 하얀 눈꽃을 배경으로 자홍색의 팔각정자가 설국의 궁전처럼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정자 안에 자리 잡은 등산객이 인심 좋게도 컵라면을 같이 먹자고 권한다. 그 마음을 감사하게 받고 정중히 사양한 후 설무(雪舞)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환상적인 풍경을 넘어서 몽환적 분위기의 설경에 “나답게 사는 행복” 속으로 머뭇거림 없이 들어간다.
  • ▲ 동문지의 성벽과 건물지.ⓒ진경수 山 애호가
    ▲ 동문지의 성벽과 건물지.ⓒ진경수 山 애호가
    나뭇가지에는 탐스럽게 굵직한 눈꽃이 피었고, 소나무는 그 무게를 버티기가 힘겨워 가지를 축 늘어뜨린다. 마치 우리네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듯이 말이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근심을 덜어내야 지금의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연거푸 놓인 두 개의 석문을 통과하여 성곽을 따라 완만한 길을 걷는다. 부지런한 등산객들의 선행 발자국을 따라 이동한다. 서문지에서 약 1.2㎞을 이동하니 동문지에 닿는다. 성벽과 건물지는 백설로 포근하게 뒤덮여 있다.

    이곳에서 청송약수터까지는 0.5㎞이고, 운주산 정상까지는 0.4㎞이다. 성곽순환로를 따라 운주산 정상을 향해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길을 오른다. 운수산 정상까지 오르막길은 계속 이어진다.
  • ▲ 운주산 정상의 원형 대지로 오르는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 운주산 정상의 원형 대지로 오르는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정상에 다가갈수록 설무(雪舞)는 점점 짙어져 가고, 그 속에서 초목들은 희미하게 거무스레한 아지랑이를 유연히 일으킨다. 얼마나 올랐는지 가늠할 겨를이 없이 설경에 심취하다 보니 어느새 각목계단을 오른다.

    계단 끝자락에는 이정표가 방향을 안내한다. 좌측으로 가면 등산로·고산사(1.6㎞), 우측으로 가면 뒤웅박고을(2.2㎞)·전동면사무소(5.4㎞), 직진하면 곧이어 운주산 정상이다.

    이정표 옆에는 의자 다섯 개가 놓인 너른 쉼터가 있다. 다시 돌계단을 오르자 은백색 행복의 천국이 펼쳐진다. 원형 대지의 운주산 정상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이동한다. 두 그루의 나무 사이로 이동하는데, 얼마나 높게 자랐는지 그 끝을 구분할 수 없다.

    이어 충의롭고 슬기롭던 백제의 얼을 상징하며 그 뜻을 오늘에 되살려 영원토록 후세에 전하여 빛내기 위해 건립된 ‘백제의 얼 상징탑’을 만난다.
  • ▲ 운주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성곽순환길.ⓒ진경수 山 애호가
    ▲ 운주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성곽순환길.ⓒ진경수 山 애호가
    이어 눈 덮인 ‘운주산 등산로’ 안내판을 지나 계단을 올라 운주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은 원형 대지에 정상석 대신에 고유문(告由文) 비석과 제단이 설치돼 있다.

    그 비석 뒤에는 ‘백제 얼 상징탑’ 건립으로 찬란했던 백제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고, 지역의 무궁한 발전과 국가의 번영 나아가 국토통일이 이룩하도록 기원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운주산 정상에서 망경산과 동림산을 조망할 수 있고, 동쪽으로는 미호 평야와 청주시, 북쪽으로는 천안시와 목천 일대, 남쪽으로는 세종시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는데, 오늘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백제 얼 상징탑’ 뒤편의 성곽로 이정표에서 눈이 수북하게 쌓인 계단을 밟으며 하행한다. 점점 행복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을 무어라 형언할 수 없으니 그저 눈물이 날 정도로 격한 행복의 느낌이 내면에 충만하다고 말할 뿐이다.
  • ▲ 운주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성곽순환길의 소나무 숲길.ⓒ진경수 山 애호가
    ▲ 운주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성곽순환길의 소나무 숲길.ⓒ진경수 山 애호가
    길게 늘어진 석성의 돌멩이가 희끗희끗한 모양을 드러내어 그 모습이 마치 백룡(白龍)이 운주산을 감싸는 듯하다. 산의 생김새를 따라 산비탈을 하행하다가 다시 계단을 통해 산비탈을 오른다. 이내 다시 활엽수가 소나무 숲으로 모습을 바꾸고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국가지점번호 안내판에서 좌측으로 산비탈을 내려가며 서서히 고도를 낮춘다. 내리던 눈은 이미 멈췄고, 은백색 눈꽃은 높아진 기온으로 아쉬움의 하얀 눈물이 되어 떨어진다. 그렇다고 슬퍼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다. 이게 바로 시절인연이 아니던가.

    바위 석문을 통과하자 서문지가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서문지 안쪽에는 연못을 비롯해 생태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정자에 올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올랐던 길로 하행한다. 고산사에 이르러 이번에는 등산로를 따라 잣나무 숲길을 걸어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 아래의 사방댐 부근에는 데크 산책로가 있다. 구름다리에 올라서서 계곡과 물레방아, 정자, 고산사 일주문, 운주산을 한눈에 조망한다. 약 5.8㎞의 운주산 겨울 산행에서 받은 행복한 기운으로 또 하나의 “나답게 사는 행복”의 이야기를 적바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