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이 흘러간 세월이 아쉬운 ‘악휘봉’[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괴산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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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분봉(馬糞峰, 해발 776m)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적석리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로 멀리서 바라봐도 영락없이 말똥을 연상케 한다.산행코스는 ‘은티마을주차장~입석골 분기점~692봉~마법의성~U.F.O.바위~마분봉 고스락~은티재~악희봉~바위슬랩~은티재~입석골~은티마을주차장이’다.은티마을주차장 한쪽 편에 세워진 정자 옆에 있는 시루봉‧희양산‧구왕봉‧악휘봉 등산안내도를 살펴보고 은티마을로 향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온 노송과 장승, 은티마을 유래비, 그리고 동고제(洞告祭)를 지내는 제단을 지나는 포장길을 걷는다.이어 개울 다리를 지나 세거리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마을길을 따라간다. 연이어 나타나는 두 개의 이정표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이동해 등산로를 어렵지 않게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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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통과해 큰 규모의 축사를 지나고 개울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측으로 산행 금지 안내 표지판을 만난다. 이 표지판 맞은편이 마분봉의 등산로 입구다.평탄한 길을 따라 편하게 걷다 보면 세거리를 만나서 우측으로 방향을 튼다. 좌측 계곡 방향은 은티재에서 하산하게 될 산길이다. 가을의 풍경이 눈부시게 펼쳐지는 들길을 걷다가 이내 산길로 접어든다.가파른 등산로에는 노송과 고목, 기암과 괴목이 줄지어 나타난다. 그들로부터 삶과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그저 변화하는 과정으로 굴러가는 것이라 알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다.692봉을 오르면서 살짝살짝 맛보기로 조망이 터진다. 692봉에 도착해 하행 산길에 매여진 밧줄을 무심하게 지나 안부에 이르러 다시 오르면 자연미 넘치는 암릉 구간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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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렁이처럼 생긴 바위를 우회하여 깎아지른 암벽을 밧줄에 의지해서 오르면 마법의 성으로 가는 능선길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가을 하늘이 공활하니 내 마음도 덩달아 텅 빈다.칼날 능선의 마법의 성으로 들어서니 탁 트인 전망, 자연의 신비가 가득하여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순간순간을 맞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이런 시간과 공간이 계속되길 바랄뿐이다.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칼날 위에 선 듯 아찔한 기분이 들지만 이내 능선이 주는 절경의 매력에 빠져든다. 산 아래 연풍 읍내가 아련하게 보이고, 그 뒤로 병풍을 펼친 듯 이어지는 조령산 능선이 너울댄다.넘어야 할 706봉과 마분봉, 악휘봉이 멀리 보이는데, 자연 속에 묻혀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677봉에서 단애를 이룬 암벽을 세미클라이밍 하듯 밧줄을 잡고 안부로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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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에는 은티마을 이정표가 있지만 등산로 흔적은 희미하다. 706봉으로 곧바로 오르지 않고 작은 봉우리를 하나 더 넘기 위해 다시 산길을 오른다. 오르막길에는 서서히 물들어 가는 단풍이 눈길을 사로잡는다.앞으로 올라야 할 단애의 암벽 등산로를 숨기고 있는 소나무 사이로 하얀 밧줄이 보인다. 봉우리를 넘어 조망점에서 706봉과 마분봉을 바라보니 손에 닿을 듯 가깝다.706봉을 향해 암릉을 오르면서 소나무에 매달아 놓은 밧줄을 이용한다. 소나무야! 고생이 많구나! 상행하면서 좌측으로 멀리 보이는 희양산과 구왕봉이 굳건한 모습을 드러낸다.한 바위 한 바위를 오르고 나면 새로운 느낌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다가오니 발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한마음 돌이켜 삶이 새롭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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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틈새를 기어올라 바윗덩어리인 706봉에 도착하여 지나온 677봉을 바라보니 그 뒤로 고즈넉한 시루봉, 희양산, 구왕봉이 우아한 자태로 세상을 품고 있다.말똥처럼 생긴 마분봉을 바라보며 706봉을 하산한 후 다시 산길을 오른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산길처럼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다. 기쁜 날이 있으면 슬픈 날이 있고, 힘든 날이 있으면 편안한 날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일희일비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여 서글퍼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해서 안달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하고 지족할 줄 알면 된다.밧줄을 잡고 암릉을 오르고, 바위를 휘돌아가며 오르고, 바위 틈새를 타고 오르고, 바위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산행은 그 자체가 희열이다. 그래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꼭지마다의 삶이 나름대로 하나의 기쁨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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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이루는 바위와 노송들이 그려놓은 한 폭의 동양화 속에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고사 직전의 소나무가 애잔하기까지 하다.깎아지른 암벽에 늘어진 밧줄을 무심하게 잡고 오르는데, 급경사이면서 높이 솟아 있는 침니 암벽이어서 두 차례에 걸쳐 밧줄을 갈아타고 오른다.자연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U.F.O. 바위에 도착한다. 이 바위 틈새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소나무가 마치 모자에 꽂아놓은 승자의 깃털 같다. 암반 위에 날렵하게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우주를 향해 비행할 태세이다.이곳에서 말똥 같은 마분봉을 바라보고, 좌측으로 대머리 같은 희양산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시루를 엎어놓은 시루봉과 구룡이 머물던 구왕봉이 아름다운 능선의 물결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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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바위에서 밧줄을 잡고 하행한 후 단애를 이룬 암벽을 올라 조망점에 이르러 다시 U.F.O.바위 뒤로 펼쳐진 명산들의 물결을 조망한다.해발 776m의 마분봉 고스락에 도착하니 가느다란 고스락 돌이 세워져 있고, 소나무 숲으로 사방이 가려져서 조망이 별로 좋지 않다. 그러나 이곳까지 이르는 산길의 암릉과 암반이 빚어내는 풍광은 인간이 흉낼 수 없는 자연예술이다.유난히 뾰족한 마분봉이 말똥을 연상케도 하지만 실제로 고스락에는 화강암 덩어리들이 말똥처럼 보인다. 악휘봉으로 하산하는 방향으로 말똥을 엎어 놓은 모양의 바위가 있다.말똥바위에 올라 넘어야 할 776봉과 악휘봉을 조망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가파른 경사이어서 밧줄을 잡고 암릉을 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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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로 하산한 후에 다시 776봉을 오르다가 산객들이 일명 삼형제 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를 만나는데, 필자는 그 바위가 개선문 바위처럼 보인다. 아마도 오늘 산행의 환희 때문이 아닐까?776봉을 오르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마분봉과 눈 맞춤을 하고, 가을 햇살 속으로 점점 파고 들어가는 만물의 모습을 보면서 776봉을 하산한다.산객들이 정성껏 쌓아 올린 돌탑을 지나기도 하고, 커다란 바위의 송별 인사를 받으면서 은티재에 이른다. 이곳에서 악휘봉 중턱에 있는 허물어져가는 선바위를 담기 위해 구부정한 장승같은 커다란 바위가 있는 방향으로 오른다.경사가 급하고 돌길은 거칠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산중턱에 이르면 조망이 터지면서 뒤로는 마분봉 능선이 멋지게 펼쳐지고, 앞으로는 뾰족한 모습의 악휘봉이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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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객들이 정성껏 쌓은 돌들이 수북한 작은 입석을 지나 다시 가파른 산길을 밧줄을 잡고 올라 조망점에 닿는다. 이곳에서 멋진 풍광을 자아내는 마분봉 능선과 희양산을 바라본다.봉우리를 오르는 도중에 스핑크스 바위를 지나 9부 능선에 이르러 비탈길로 우회하여 산등성에 도달한다. 산등성을 따라 완만하게 하행하는 산길에는 벌써 참나무들이 갈색 옷으로 갈아입었다.나뭇가지 사이로 감질나게 드러나는 선바위를 보면서 하행하다가 안부에서 다시 산길을 오른다. 악휘봉 고스락을 약 100여 m를 앞두고 등산로에서 약간 우측으로 벗어나 이동하면 위태롭게 서있는 선바위를 만난다.약 4m 정도 높이의 선바위는 하단부가 풍화작용으로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다. 그 모습을 안타까운 듯 소나무가 친구처럼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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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위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을 멀리 마분봉의 풍광이 달래준다. 다시 등산로로 돌아와 바위 덩어리를 힘차게 오르면 너른 암반으로 이뤄진 악휘봉(樂煇峰, 해발 845m)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마분봉을 비롯해 시루봉, 희양산, 구왕봉을 조망한다.악휘봉 고스락을 넘어 완만한 산길을 하행하다보면 바위슬랩 뒤로 장군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조망점에 이른다. 이곳에서 안부까지 밧줄을 이용해 암릉을 하행한다.안부에 도착해 통천문을 지나 반질반질하고 급경사에 무심하게 늘어진 밧줄에 의지해 바위슬랩을 오른다. 암벽을 오르고 나서 암봉과 노송, 고사목이 펼치는 멋진 풍광에 흠뻑 빠진다.장군바위와 덕가산을 조망하고, 달마대사처럼 볼록하게 부른 배와 배꼽 같은 바위, 암반 위에 뻗은 노송의 거친 뿌리에서 강한 생명력과 의지력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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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봉을 반환점으로 악휘봉으로 다시 돌아와 가지가지 노송과 기암괴석들과 함께 풍류를 즐기며 자연을 노래한다. 젊음의 푸름이 늙음의 노련으로 변하는 삶도 노래한다.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선바위가 오래지속 되길 바라면서, 세월에 장사가 없다는 말에 실감한다. 하기야 사람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제와 오늘의 느낌이 달라지지 않던가.은티재로 돌아와 연하게 오색 빛깔을 띠기 시작한 단풍 숲길을 하행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길 좌측으로 제각기 생김새가 다른 떡바위 군락지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입석골 분기점을 만나 포장길을 걸으며 은티마을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해 가을맞이 마분봉‧악휘봉의 약 9.2㎞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