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훤하게 트인 고스락이 일품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경남 함안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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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에 위치한 여항산(艅航山, 해발 770m)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김해 분성산을 잇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최고봉이다.‘여항’이라는 산명은 천지사방이 물에 다 잠겼을 때 여항산의 꼭대기만이 배만큼 남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등산로는 좌천마을 공영주차장(경남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 635-2)에서 출발하여 여항산 고스락에 이르는 세 개의 코스가 있다.오늘 산행은 좌천마을 공영주차장에서 1코스로 상행하여 여항산 고스락에 오른 후, 2코스를 통해 하행하여 원점회귀 하는 코스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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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마을 공영주차장 입구에는 낙남정맥의 최고봉인 여항산 등산 안내도와 여항산 둘레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앙증맞은 화장실과 운치 넘치는 정자도 세워져 있다.주차장에서 완만한 경사의 포장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수령이 380년이 넘은 느티나무 보호수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주차장에서 0.42㎞을 오르면 우측으로 돌아가는 길의 좌측에 이정표와 함께 1코스 들머리가 있다. 1코스 들머리에서 여항산 고스락까지는 1.65㎞이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0.19㎞를 이동하면 2코스 들머리가 있다.초입의 짧은 계단을 오르면 짙은 신록의 터널 속으로 흙길을 밟는다. 우측에서는 계곡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오고,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온 필자를 열렬히 환영하는 듯 숲속 어디선가 지저귀는 산새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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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기점 1.0㎞를 지나면서 과수원 길을 가로질러 간다. 우측으로 여항산과 좌측으로 봉화산 산등성이를 조망할 수 있다.과수원을 빠져나와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0.2㎞를 오르면, 서북산과 여항산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여항산 방향으로 초록빛 바다 숲속으로 풍덩 빠져들어 흙길을 걷는다. 등산로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쉼터 바위를 지나면서부터 바윗길이 시작되고, 계곡 구역은 계단이 설치되어 수월하게 오른다.좌측에 돌무더기의 계곡을 끼고 돌길과 나무계단을 따라 오른다. 구불구불한 나무계단 사이사이를 채운 흙을 밟는데, 그 냄새가 코끝을 자연 속으로 파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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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기점 2.0㎞ 지점에서 코 바위를 만난다. 코 바위에서 비탈길 바로 위에 나뭇가지를 지붕 삼아 세상을 즐길 수 있는 풍류 바위를 만난다. 이곳에서 잠시 앉아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읊으며 삶을 노래한다.코 바위를 출발해 진흙 속의 돌길을 0.3㎞를 오르자 돌탑이 세워진 쉼터를 만난다. 이곳의 좌측에는 너덜지대가 흘러내리고 있다. 산등성이가 가까워지면서 산허리를 세우기 시작하고, 산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거칠며 험해진다.바위 틈새로 허물어져 내리는 흙길을 오른다. 빗물에 씻겨 내린 등산로에는 나무뿌리가 앙상한 자태를 드러낸다. 이런 힘든 과정은 고스락에서의 성취감을 더해준다. 삶도 마찬가지로, 너무 쉽게 성공하면 자만해져 결국 실패하게 되니 성공을 위한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음이 좋다.돌탑 쉼터에서 0.1㎞를 오르면 산등성이에 이른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서북산이 3.7㎞ 거리에 위치하고, 우측으로 0.2㎞를 오르면 여항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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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산 방향으로는 암릉에 소나무들이 줄지어 숲을 이루고, 암봉인 여항상 고스락은 계단으로 이어진다. 여항산 고스락을 향해 뾰족한 바위들 사이로 설치된 계단을 오르는데, 등산로 초입에서 만난 새들이 따라왔는지, 그 소리가 낯설지 않고 늘 들었던 것처럼 귀에 익숙하다.계단을 오르면서 뒤와 좌우로 펼쳐는 푸른 산등성이들이 마치 파도처럼 너울댄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황홀한 풍광으로 인해 한 계단을 오르기가 천금같이 귀하다. 이 산이 함안군의 진산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입증된 셈이다.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여항산 고스락 돌이 의연하게 자리하고, 사방팔방 막힘이 없어 공기의 흐름에 따라 눈길을 준다. 이처럼 우리네 마음도 막힘이 없이 소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부터 마음의 벽을 허무는 수행을 시작한다.고스락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여양 저수지, 진주시 반성면과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 오봉산, 그리고 멀리 백화산(국사봉)과 지리산(천왕봉)을 어슴푸레하게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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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락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좌촌·대촌·대산·감현 마을과 여항면사무소, 그리고 봉성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가까이 봉화산과 광려산, 무학산이 조망되며, 멀리 투구봉, 천주산, 무릉산 등을 어슴푸레하게 가늠할 수 있다.북쪽 방향의 암릉에 설치된 데크 로드를 따라 2코스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행하면서 뒤돌아 고스락을 바라보면 곧추선 암봉이 뚜렷하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구태여 드러내지 말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서 숨겨두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암벽을 따라 설치된 데크 로드에는 그 이전에 사용했던 등산 밧줄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병풍처럼 세워진 암벽 옆을 지나 낙화(落花)가 진행 중인 철쭉군락지를 지나간다. 누가 떨어진 꽃잎이 지저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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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나무 의자와 돌탑이 있는 작은 쉼터를 지난다. 평탄한 숲속 흙길을 걷다가 바윗길을 만나면서 데크 로드가 이어진다. 그 길 끝자락을 지나면 좌촌 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만난다.이곳이 여항산 고스락 기점 0.2㎞ 지점이고, 이곳에서 미산령까지는 1.6㎞, 좌촌마을(제2코스)까지는 2.3㎞이다. 이 갈림길에서 미산령 쪽으로 인접해서 헬기장에 조성돼 있다.갈림길에서 계단을 통해 좌촌마을로 하산한다. 이어서 활엽수의 무성한 초록 잎들이 싱그러움을 자아내는 한편 늦은 오후의 깊은 숲속의 으슥함도 동시에 느끼게 된다.우리네 삶에서도 이러한 대립과 모순을 연합하면 또 다른 조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말은 싶지만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중생들은 아상(我相)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벗어나는 그 날까지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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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항산 고스락에서 8부 산등성이에 이르는 구간은 2코스가 1코스에 비해 까칠함이 덜하지만 대신 가파른 흙길이 이어진다. 며칠 전에 비가 내린 탓에 흙길이 상당히 미끄럽다.조심해서 하행하였지만, 잠시 정신줄을 놓는 순간 미끄러지고 만다. 내린 비를 탓할까? 흙길을 탓할까? 집중하지 못한 내 탓일 뿐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나로 인해 생기는 것이니 남 탓보다 내 탓으로 돌리면 마음 편하게 산다.구불구불 산비탈의 흙길을 내려가고, 가파르고 험한 구간에 설치된 나무계단을 이용해 내려간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가라고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놓인 쉼터를 만난다.집중한 탓인지 땀이 많이 흐른다.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에 몸을 식히고, 이어 계곡의 너덜지대 옆으로 설치된 나무계단을 밟으며 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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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잠시 바윗길을 걷다가 여항상 고스락 기점 0.7㎞ 지점에 이르러 갓샘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60m 떨어진 지점에 갓샘이 있지만, 그냥 좌촌 마을로 하행한다.바윗길과 나무계단을 내려오면 서서히 소나무가 눈에 띄게 많아지기 시작한다. 피톤치드로 가득 찬 숲속의 공기를 힘차게 숨을 들이마신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은 2코스 날머리까지 이어진다.여항산 조난위치 표지목 안내판을 지나면서, 얕은 황금빛 저녁햇살이 소나무를 비추니, 마치 피톤치드가 나를 향해 쏟아붓는 절묘한 풍광이 황홀에 젖어 들게 한다.잘 관리된 소나무 숲을 지나면서 이곳 함안군의 자연에 대한 사랑의 깊이에 감사를 전한다. 인간은 자연을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자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은 자연의 한 조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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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길은 흙길과 야자 매트, 그리고 계단을 번갈아 내려간다. 우측으로 넓은 밭을 지나 2코스 날머리를 나가면 봉화산을 배경으로 고즈넉한 대흥사의 전각들이 보인다.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면 3코스와 합류되는 지점을 지나고, 몇 걸음 더 이동하면 1코스 들머리와 느티나무 보호수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다.이번 산행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추진하는 함안 군북초교에 ‘그린스마트 모듈러 임시 교사’를 설치하는 ㈜진우아이엔씨의 초청으로 이뤄짐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이러한 기회가 종종 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약 5.5㎞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