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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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국 시대 위나라 장군 ‘오기(吳起)’는 평소에도 병사들을 무척 아꼈다. 오기는 말로만 부하를 아낀 것이 아니라 실제 부하들과 똑같이 생활했다. 장군의 위엄을 보이는 투구와 갑옷을 입지 않았다. 오기는 신분이 제일 낮은 사졸들과 똑같은 옷을 입었다. 잠잘 때는 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았고 밥 먹을 때에도 병사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행군할 때도 자신의 식량은 자신이 운반했다. 오기는 절대로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았다.한 번은 병사의 몸에 종기가 생겼다. 오기는 망설임 없이 병사의 종기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오기의 노력으로 병사의 상처가 나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통곡했다. 오기는 과거에도 그렇게 병사의 상처 고름을 입으로 빤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병사의 아버지였다.병사의 어머니는 “그 일 이후 아버지는 전투에서 진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선두에 섰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제 그 아들이 그렇게 할 터이니 어찌 통곡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연저지인 '吮疽之仁'의 古事 참조)전장에서 군령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장군은 특별한 갑옷과 지위에 걸맞은 숙소와 식사를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면서 굳이 병사 한 명을 살리겠다고 독이 옮을 위험을 무릅쓰고 병사의 종기 고름을 입으로 빨아낼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장수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서슴지 않자 병사들은 감동했고, 전투에 나가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 싸움에 임했다.나라와 장수가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으면 병사들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고 싸운다. 병사 한 명의 목숨까지 아끼는 지휘관이 강군을 만든다. 만고의 진리이다.#2. 2008년 5월 26일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 탈레반 기지 급습 작전에 투입된 미 육군 르로이 페트리(31) 상사는 동료 병사 두 명 옆으로 수류탄이 날아든 것을 놓치지 않았고 바로 몸을 날려 수류탄을 낚아챘다. 이를 진지 밖으로 던지려는 순간 수류탄은 손에서 폭발했다. 페트리 상사는 오른손을 잃었지만, 그의 전우들은 모두 무사했다.미국은 전우를 구하다 손 잃은 군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진정한 영웅은 아직 존재하고, 그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라며 페트리의 금속 의수(義手)를 움켜쥐었다. 이날 페트리는 미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목에 걸었다. 10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전·아프간 전에 참전했던 미군 가운데 생존자로 이 훈장을 받은 장병은 페트리 이전에 단 한 명밖에 없다. CNN 방송은 정규 뉴스를 중단하고 이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로 보여줬다.미국은 용감한 군인을 예우하고 영웅을 외롭게 두지 않는 나라이다. 바로 이런 것이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든다. 미국은 지구상의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국방비 예산을 쓰면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세계 최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엄청난 국방비도 최첨단 무기도 아니다. 무엇이 미국을 세계 최강의 국가로 만들었을까?미국의 명예훈장 수여자에 대한 대우는 엄청나다.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영웅을 외롭게 두지 않는 나라이다. 그 영웅들이 미국을 만든다. 미국이 세계 최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조선일보 2011.07.14. ‘미국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은 미국을 만든다’ 임민혁 글에서 발췌 인용)#3. 열일곱의 김성태는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1948년 입대했다.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전방에서 고립된 채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다 포로가 됐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직전인 그달 18일, 강원도 바다를 통해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1966년 함경북도 온성의 추원탄광으로 끌려갔다.서른다섯 청년은 그로부터 27년간 시커먼 석탄 가루를 삼켜 가며 버텼다. 일흔이 다 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왔지만 “국군포로 생존자를 돌려보내 달라는 말 한마디 없었다.” 다음 해 아들과 함께 몰래 중국으로 갔다. 50년의 탈출 시도 끝에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올해 아흔이 된 김 씨는 24일 다른 국군포로 2명과 함께 정부에 북한의 송환 거부와 강제 노역, 가혹행위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냈다.지난달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엔 일본 납북자 얘기가 담겼다. “짧은 표현이지만 이 문구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할 때 납북자 문제를 반드시 꺼낼 것입니다.” 국군 포로들의 진상 규명 요구를 돕고 있는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방미에서 6‧25 전쟁 때 피를 같이 흘린 동맹을 강조했으니 립서비스라도 문 대통령이 국군포로 얘기를 꺼냈다면 어땠을까”라고 했다.한‧미 정상회담 직전 문 대통령은 6‧25 전쟁 참전용사 랠프 퍼킷 주니어 예비역 대령의 명예훈장 수여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국군포로들과 나이가 비슷한 95세의 이 용사 옆에 무릎을 꿇었다. 국군포로들과도 그런 장면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걸까? (동아일보 2021.05.31. ‘아흔 살 국군포로 김성태, 95세 6·25 美용사, 윤완준’의 글에서 발췌 인용)유엔이 발표한 국군포로 수는 8만2000명, 북한이 휴전협정으로 돌려보낸 국군포로는 8300명뿐이다. 현재까지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는 80명, 그중 18명이 생존해 있다. 김 씨가 생존자 중 가장 ‘젊다’. 최고령자는 99세 이원삼 씨다. 미국은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의 10분의 1이라도 실천에 옮겼다면 나라를 위해 싸웠던 국군포로를 더 많이 대한민국의 품에 품었을 거다. 국군포로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무언가?#4. 지난 6일 천안함 생존 장병 16명은 서울 현충원을 방문했다. 국가 유공자 자격으로 초대받은 게 아니었다. 사건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생존 장병들의 유공자 지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였다.천안함 생존 예비역 34명 가운데 21명은 여전히 국가 유공자가 아니다. 한 생존 장병은 “군인 여러분,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라고까지 했다. 이들은 현충일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라’라는 문구의 피켓을 들었다.최근 대통령 직속 군사망 사고 진상 규명위원회는 북한 소행으로 결론 난 천안함 폭침 원인을 재조사하자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철회했다. 좌초설, 자작극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데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란 자명한 사실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낸 인사는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에게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시켰다”는 막말까지 했다.‘나라를 지킨 이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라고 6월을 호국 보훈의 달로 지정했다. 하지만 천안함 생존 장병, 전사자 유가족들에게 지금의 6월은 ‘후회의 달’일 뿐이다. ‘이러려고 군인이 됐나’, ‘이러려고 내 아버지를 바다로 보냈나’ 하는 후회 말이다. (조선일보 2021.06.11. ‘기자의 시각, 호국 후회의 달’ 강다은’의 글에서 발췌 인용)#5. 군대 다녀온 청장년들 대부분은 국가 위난 시에는 총 들고 기꺼이 나설 것이라는 준비된 용기가 머릿속 어디엔가 잠재하고 있다. 군 복무 중 자신도 모르게 나라의 존재와 중요함을 각인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그 준비된 군인 용기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가던 휴가 길도 되돌리고 포격에 대응하다 전사하는 영웅 장병을 만들었고, 연평 해전 등에서 북의 도발을 격퇴했던 게다. 전투에 나선 자신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질 거라는 믿음을 장병들이 가지고 있을 때 무적 강군이 된다.‘文 정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미한 군 관련 일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군인들에 대한 예우가 충분하고 군령이 제대로 서 있는가’를 되묻는다. 그렇지 않아서 발생한 최근의 일들이 국민과 군 장병들을 매우 화나게 한다. 북의 김정은은 인민을 폭압하면서도 가공할 비대칭 핵무기로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엄중한 때에 정치가 나라를 지키는 군 장병들을 실망하게 해선 안 된다. 정치가 ‘나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분노하는 나라’로 만들면 안 된다. 정치도 나라가 있어야 존재하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