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독립 위해 꽃다운 18세에 청춘·목숨 바친 독립운동가
  • ▲ 이달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충북북부보훈지청
    ▲ 이달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충북북부보훈지청

    충북북부보훈지청은 이달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희생과 공훈을 알려 청소년 등 미래 세대들이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유 열사의 삶을 담은 일대기 홍보에 나섰다.

    1902년 충남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 (현재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사이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선생은 1918년 4월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진학, 다음해 3월 1일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독립운동인 3·1운동에 뛰어들었다.

    조선총독부가 임시휴교령을 반포하자 선생은 같은 달 사촌 언니인 유예도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 가지고 귀향해 같은 해 4월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3·1운동의 대표적 인물이다.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에서 선생의 부친과 모친은 헌병의 총검에 찔려 순국·학살당하고 선생은 체포돼 천안헌병대로 압송 당했다.

    선생은 공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과정에서 “나는 한국 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죽이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으니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너희들이다. 우리들은 너희들에게 형벌을 줄 권리는 있어도 우리를 재판할 그 어떤 권리도 명분도 없다”면서 당당함과 민족적 기개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같은 해 5월 3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으로 이감된 선생은 온갖 탄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옥중 만세를 불렀다.

    선생은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이해 수감 중인 동지들과 함께 대대적인 옥중 만세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선생은 지하 감방에 감금돼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고문에 의한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께, 서대문감옥에서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12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2019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13인을 선정·발표했다.

    올해의 독립운동가는 1월 유관순, 2월 김마리아, 3월 손병희, 4월 안창호, 5월 김규식.김순애, 6월 한용운, 7월 이동휘, 8월 김구, 9월 지청천, 10월 안중근, 11월 박은식, 12월 윤봉길 선생 등 모두 13명이 선정됐다.

    충북북부보훈지청은 매달, 선정된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공훈 등 일대기를 홍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