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더 민주당 등 공약채택이 목표
  • ▲ ⓒ최종웅 작가
    ▲ ⓒ최종웅 작가

    충북도내에서 험하기로 유명했던 모래제가 4차선으로 확포장된 이후 평지처럼 변했다. 최백수는 신나게 달린다. 단숨에 고개를 넘었지만 뭔가 허전하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이런 생각은 도안 삼거리에서부터 들었다.

    여기가 괴산의 관문이다. 그렇다면 괴산군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현안에 대한 홍보 장소로 활용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하다못해 총선거부에 관한 현수막이라도 몇 개 걸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속을 끓이고 있으면 뭐하나? 남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려줘야만 도와줄게 아닌가. 우는 애에게 젖 준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최백수는 답답하다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그보다 더 답답한 것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는데도 아무도 도와주겠다고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괴산사람들은 너무 억울해서 투표까지 거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최백수는 사상유례가 없는 일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총선을 거부하겠다고 시도한 사례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억울하면 이러겠는가. 괴산은 충청도다. 충청도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 소처럼 묵묵히 참는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정 못 참겠으면 화를 낸다. 한번 화를 내면 무서울 만큼 폭발력이 강하다.

    문제는 아무도 이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최백수는 모래제 고개 정상에 차를 멈춘다. 잠시 쉬고 있는데 종이 한 장이 굴러다닌다. 그것을 주워서 읽는다.

    4월 3일과 8일 괴산 장날 시계탑 앞에 모여 투표거부 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최백수는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하면 선거구를 원래대로 환원시켜 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본다. 우선 정치권의 관심을 끄는 게 중요하다.

    그러자면 우는 수밖에 없다. 우는 애에게 젖 준다는 속담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울어야 하나? 큰 소리로 우는 수밖에 없다. 그냥 울면 효과가 없다. 길바닥에 드러누워서 대성통곡을 해야 한다.
    몸부림을 처야 한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왜 우느냐고 물으면 자초지종을 말해야 한다. 억울해서 운다고 말해야 한다.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냐고 물으면 사람대접을 못 받아서 억울하다고 해야 한다.

    어떤 일을 당했느냐고 물으면 무시를 당했다고 말해야 한다. 어떻게 무시당했느냐고 물으면 잘못도 안했는데 벌(罰)을 받았다고 말하면 된다. 무슨 벌이냐고 물으면?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분명히 벌을 받았는데 무슨 벌인지 잘 모르겠다. 최백수는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훤하게 펼쳐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좌우에 스치는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갑자기 생각나는 말이 있다. 차별이란 말이다. 그렇다. 지역차별을 당할 것이다. 남부 3군에 편입되면 서자 취급을 당할 것이다. 서자 취급을 당한다는 건 앞으로 괴산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보다 더 큰 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주장도 했다는 얘길 들었다. 비례대표를 배당해 달라는 것이다. 괴산 출신으로 비례대표를 배당해 줘야만 보상을 받는 것이란 주장이다.

    최백수는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사또 행차 뒤에 나팔을 부는 격이다. 이미 비례대표 배정은 끝이 났다. 최백수 눈엔 주변의 풍경 대신 두 가지 화면이 보인다. 하나는 임각수 괴산 군수가 TV에 나와서 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지역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게 진정으로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는 군민이 똘똘 뭉쳐서 본때를 보이자고 선동하며 혈서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속마음을 감추고 지역발전을 위해서 꼭 투표를 하자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앞잡이란 생각을 했다. 일정 때 징용 나가는 젊은이들에게 잘 싸우고 돌아오라고 격려하는 조선인 군수 같은 모습을 봤다. 최백수의 눈에 또 하나 보이는 게 있다. 여야 정당에서 4,13 총선공약을 발표하는 모습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