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총선공약 채택 여부가 핵심
  • ▲ ⓒ최종웅 작가
    ▲ ⓒ최종웅 작가


    최백수는 괴산으로 가고 있다. 괴산으로 가면서 총선거부 투쟁이란 말을 되씹고 있다.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한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생활권이 같은 지역끼리 묶는 게 상식이다.

    그래야만 지역발전을 위해서 상생할 수 있다. 식당은 먹자골목에 모이고, 과일 가게는 채소시장에 모여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혀 생활권이 다르고, 문화적인 동질성도 없는 괴산을 남부 3군과 한 선거구로 묶어놓았다.

    최백수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3자가 봐도 황당한데 직접 당하는 주민 입장은 어떻겠는가. 사람은 사람끼리 모여 살고, 닭은 닭끼리, 소는 소끼리 어울려 사는 게 생태계의 원리다.

    괴산을 남부 3군에 묶어놓은 것은 소를 닭과 같이 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돼지를 말과 함께 살라고 한 우리에 몰아넣은 것이나 비슷한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정치권의 무책임 때문이다. 선거구를 획정할 때 행정구역을 분할할 수 없다는 법을 개정하면 얼마든지 합리적인 선거구를 만들 수도 있었다, 정치싸움에 골몰하느라 이런 문제까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중앙 정치권이야 지역사정을 잘 모르는 데다 남의 일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역 정치권은 당사자이니까 사력을 다해 막았어야했다.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몇 년 전부터 예견되었던 사실이다.

    물론 남부 3군에서는 인구 늘리기 운동을 전개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당사자가 져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책임주의다.

    아무 상관도 없고, 아무 책임도 없는 괴산군이 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격장 근처에 살다가 유탄을 맞은 꼴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불가피하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고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문제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누구도 고치겠다고 나서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다.  최백수는 내덕동 쪽으로 차를 몰려고 하다가 깜짝 놀란다. 새로운 길이 뚫린 게 한참 되었는데도 옛날 습관에서 젖어있기 때문이다.

    습관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옛날 같으면 내수로 해서 가야할 괴산을 지금은 새로 생긴 충청내륙고속화도로를 타고 달린다. 증평을 지나면서 괴산의 시련은 증평의 독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충북선을 괴산으로 지나가게 했더라면 괴산은 지금쯤 시(市)가 되어있을 지도 모른다.
    철도가 지나가면 풍기가 문란해지고, 풍기가 문란해지면 양반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극구 반대했다는 것이다.

    결국 허허벌판에 들어선 증평역은 증평을 군청 소재지인 괴산을 능가하는 신흥도시로 발전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마치 공주와 대전을 보는 것과 같다. 아무튼 철길 통과를 찬성했던 증평은 독립시를 꿈꾸면서 몇 년 전 증평군으로 딴살림을 차렸다.

    이때부터 괴산의 군세는 눈에 띄게 꺾이고 말았다. 하루가 다르게 군세가 꺾여가고 있을 때 작은 거인이 하나 나타났다. 그게 바로 임각수 군수였다. 저녁만 먹으면 불이 꺼진다는 괴산을 부동산이 꿈틀 거리고, 사람이 북적거리는 지역으로 변모시켜놓았다.

    인적조차 드문 두메산골 칠성저수지에 산막이 옛길을 개발하더니 전국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모든 자치단체가 기피하는 군부대를 유치하더니 전국 각지에서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여기에 국립묘지까지 유치해서 사람이 들끓는 곳으로 바꿔놓았다. 임각수 군수의 하이라이트는 세계유기농엑스포였다. 괴산이 생긴 이래 세계란 명칭을 달고 국제행사를 해본 역사가 없었다.

    그것도 세계 어느 나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유기농이란 주제로 행사를 열었다. 충북의 괴산이 아니라 괴산의 충북이란 말이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바야흐로 괴산시대가 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 군수가 갑자기 잡혀가고 말았다. 뭔가 하면 될 것이라는 희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최백수의 차는 도안 삼거리를 지나 모래재 고갤 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