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편의·안전시설 부족해 불편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금산군 편
  • ▲ 하늘다리를 오르면서 바라본 신선봉(좌)과 선야봉(우).ⓒ진경수 山 애호가
    ▲ 하늘다리를 오르면서 바라본 신선봉(좌)과 선야봉(우).ⓒ진경수 山 애호가
    선야봉(仙冶峯, 758m)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과 전북 완주군 운주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서대산·대둔산·진악산 등과 함께 금산의 명산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산은 대둔산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고, 원시림 분위기를 만끽하는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중부권 최대의 테마휴양림인 '금산산림문화타운'을 들·날머리로 삼을 수 있어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야 하고, 흙먼지털이기·해충퇴치기 등 등산편의시설과 거칠고 험한 등산 구간에 안전시설이 부족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산행에 주의해야 하는 산이기도 하다.

    추부IC로 빠져나와 도로를 한참 달려 계곡 길을 따라 형성된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심산계곡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러자 푸르른 숲이 우거진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금산산림문화타운 관리사무소 주차장에 도착한다. 
  • ▲ 인터넷 사전 예약으로 가능한 제3캠핑장.ⓒ진경수 山 애호가
    ▲ 인터넷 사전 예약으로 가능한 제3캠핑장.ⓒ진경수 山 애호가
    느티골 계곡을 따라 자리한 세 개의 캠핑장은 메마른 계곡에도 불구하고 휴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주차장에서 제3장 캠핑장으로 150m쯤 이동하면 산행 들머리가 있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키 높이로 자란 무성한 조릿대가 억센 잎으로 격렬하게 환영한다. 산행 초입부터 가파르게 치고 오르는 산길은 잔돌이 널려 있어 발걸음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짙푸른 숲속의 싱그러움을 느낄 새가 없이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입김과 잔뜩 열기가 오른 온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땀으로 고된 여름 산행의 맛을 먼저 느낀다. 흘린 땀만큼 번잡한 생각도 하나둘씩 뚝뚝 떨어져 나가는 듯하다.

    산행을 반기는 듯이, 응원을 보내는 듯이 고요한 정적을 깨는 청아한 새소리와 산길에서 만난 커다란 바위 위에 우뚝 자란 소나무가 굽어보며 눈길과 발길에 잠시 쉬어가라 한다. 거친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선다.
  • ▲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고사목.ⓒ진경수 山 애호가
    ▲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고사목.ⓒ진경수 山 애호가
    산길이 잔잔한 돌길에서 서서히 큼직한 바위들로 표정을 바꾸면서 나뭇잎 사이로 맞은편 백암산 산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주차장 기점 0.7㎞ 정도 오르니, 선야봉(1.1㎞)·건강숲(1.3㎞)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고도가 높아지고 바윗길이 시작되면서 대둔산이 장엄한 몸집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몇 걸음씩 옮길 때마다 발길을 붙드는 대둔산의 절경에 바쁘게 흐르는 속세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하다.

    간신히 발걸음을 숲길로 옮겨 산허리를 바짝 세운 암반을 오른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멀어지지 않고 외려 점점 가깝게 따라오는 수려한 풍광에 마음이 끌리다 보니, 좀처럼 산행 속도가 붙지 않고 자꾸만 느려진다.

    잔뜩 성난 길에 심장이 찢어질 듯 거친 숨이 노송을 만나 잠시 잔잔해진다. 그리고 나서야 지나온 올망졸망한 구릉, 올라야 할 선야봉, 그리고 넘실대는 산줄기 너머로 하늘과 경계를 이룬 대둔사과 천등산을 조망한다.
  • ▲ 느티골 너머 백암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느티골 너머 백암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산행처럼 내 삶에 있어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이 더욱 선명해지는 시간이다. 다시 숲길을 오르는데, 햇볕이 드는 산길 한가운데 몸을 꽈리를 틀며 도사리고 있는 뱀을 만난다. 아마도 일광욕을 즐기려 햇빛이 든 길을 찾은 듯하다.

    혀를 날름거리며 경계를 보이는 그놈이 사라지길 바라며 잠시 멈춰 선다. 한동안 경계태세를 취하다가 서서히 몸을 꿈틀거리며 길섶으로 사라진다. 금수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데, 어찌 인간들은 제 욕망 때문에 남에게 해를 끼치는지…

    출발한 지 약 1.4㎞가 되는 지점에 이르러 가야 할 선야봉과 신선봉을 조망한다. 뭉그러진 칼날 같은 암릉 능선을 지나서 성글고 야트막한 숲의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그 길에서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고사목을 보는 순간, 우리네 삶도 돌아갈 때 가더라도 고통 없이 삶을 마무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아마도 고통을 삶의 일부라 여기고 어쩜 그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 시루떡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시루떡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다시 허리를 잔뜩 세운 암릉을 허벅지가 터지도록 오르자 조망 바위에 닿는다. 산은 고되게 오른 이들에게 멋지고 아름다운 전경으로 보상하는 걸 잊은 적이 없다. 사람도 산처럼 부모를 비롯해 자신의 인연에 대한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올라온 산줄기를 보니 두 다리가 대견스럽고, 선야봉과 백암산 자락을 잇는 하늘다리가 손톱만 하게 보이니, 온 세상이 온통 내 마음속에 들어있다. 발아래 골이 꽤 깊은 탓인지 켜켜이 펼쳐진 산등성이가 하늘에 닿을 듯 높아 보인다.

    작렬하는 햇빛에 몸이 익을 정도로 한동안 넘실대는 물결의 정취에 넋을 잃다가 다시 암릉을 올라서니 이정표가 산야봉이 0.3㎞ 남았다고 알린다. 이때부터 하늘이 열리는 바위 구간을 지날 때마다 푸른 하늘을 담은 푸르른 물결이 무한히 펼쳐지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새로이 나타난 또 다른 산등성이 시선을 끈다. 선야봉은 보이질 않지만, 그곳에서 신선봉까지 이어지는 평편한 능선이 마음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신선봉의 깎아지른 비탈은 하산도 지금 오르는 것에 비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 ▲ 천등산(좌)과 대둔산(우).ⓒ진경수 山 애호가
    ▲ 천등산(좌)과 대둔산(우).ⓒ진경수 山 애호가
    야트막한 수풀 속에서 숨겨졌던 기암이 서서히 얼굴을 내민다. 마치 시루떡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기기묘묘한 바위는 비바람에 쓸리고, 얼고 녹고, 데워지고 식기를 반복하는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바위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탁 트인 파노라마 풍경이 그야말로 장엄하게 펼쳐진다. 망망대해의 한가운데서 넘실대는 푸른 물결을 타고 일렁이는 몸을 느낀다. 골골이 들어찬 속세의 흔적, 그걸 기꺼이 포근하게 안아주는 산, 그래서 우리는 산에서 위로를 받는 게 아닐까?

    더욱이 산림청 100대 명산에 속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대둔산과 봉우리가 하늘에 닿는다는 천등산의 절경을 한눈에 조망하는 행운을 누린다.

    그 속에 들어서면 이처럼 수려한 절경을 알지도 보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네 삶도 나 자신을 보려면 멀찌감치 떨어져 너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보는 건 너의 행동이고, 듣는 건 너의 말이니 아는 건 너요, 내가 아니다. 한 번쯤 이런 산속에서 너가 아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 ▲ 안전시설이 필요한 가파른 하행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안전시설이 필요한 가파른 하행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바로 눈앞에 들어온 두리뭉실한 숲이 선야봉 정상이다. 산의 기운찬 정기를 흠뻑 받은 덕택인지 단번에 힘차게 올라 오늘의 목적지 선야봉 정상에 닿는다. 숲으로 둘러싸인 정상에서 푸르른 그늘의 카펫을 깔고, 맑고 쾌적한 공기를 찬 삼아 허기진 몸에 에너지를 채운다.

    선야봉에서 신선봉까지는 약 1.1㎞의 능선으로 편안한 흙길이다. 빽빽하게 들어찬 참나무의 녹음 속 은은한 향기, 비단처럼 깔린 갈색 낙엽의 푹신한 감촉과 구수한 흙내음, 부드럽게 살랑대는 바람과 산뜻한 새소리, 그리고 숲길에 가득한 음이온이 폐부 깊숙이 찾아든다.

    발걸음을 붙잡는 조망이 없는 숲길에서 오롯이 내 발걸음과 주변 소리에만 집중하며 잠든 오감을 깨운다. 내딛는 발걸음은 청아한 새소리의 리듬을 탄다. 시선을 낮춰 걷다 보니 길섶에 소담하게 피어난 고운 야생화가 눈과 마음에 들어와 긴장했던 심신이 이완된다.

    드디어 신선봉(해발 750m)에 도착한다. 선야봉을 바라보지만 웃자란 수풀로 머리끝만 보인다. 안락한 숲길을 걸으면서 한껏 충전된 힘을 쏟아가며 사방댐 방향으로 가파른 비탈을 내려간다.
  • ▲ 오십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오십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하산을 시작하자마자 자잘한 돌길이 고꾸라질 듯 이어진다. 잔뜩 긴장한 마음을 잠시라도 풀어주려는 듯 간간이 조망이 터진다. 그리곤 이내 가파른 암반에 잔돌이 너저분하게 깔린 길이 이어지면서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가로막는 노송이 이리도 반가울 수가, 거칠고 험난한 암릉 구간에는 철제 난간이나 밧줄 등의 안전시설 설치가 시급해 보인다. 아무리 산세가 매섭다지만, 그 매서움을 달게 즐기는 것은 산객의 몫이고, 안전사고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건 산지기들의 몫이 아닐까?

    한참 기승을 부리며 혼과 진땀을 쏙 빼던 비탈길은 푸른 숲을 뚫고 우뚝 솟은 잿빛 바위를 만나면서 완만하게 수그러든다. 새로운 길의 시작을 여는 의미일까? 몸통이 반쯤 썩어 움푹 파인 나무가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무성한 푸른 잎을 살랑살랑 흔들어 댄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겉으론 참 평안하고 행복하여 근심 걱정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속내를 알고 보면 그 속이 까맣게 타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다만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길을 내려서자 메마른 계곡을 건너는 너덜지대가 이어진다.
  • ▲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계곡 등산로.ⓒ진경수 山 애호가
    ▲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계곡 등산로.ⓒ진경수 山 애호가
    이어 추락위험 표지판을 지나자, 처음으로 만나는 안전시설인 철계단이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그 끝자락엔 오십폭포가 마중한다. 갈수기인지라 온통 푸른 이끼로 뒤덮인 바위 사이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쪼르르 흘러내린다.

    오십폭포의 실제 높이는 약 25m이라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홍수기에 웅장하게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를 상상하며 폭포를 뒤로한다. 무성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바싹 마른 계곡에서 온몸이 고스란히 드러난 바위들과 주변 나무들이 시퍼런 이끼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수령이 오래된 기이한 형상의 나무뿌리와 침묵으로 지키는 바위들의 조화, 우거진 숲속 어수선하게 너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이런 계곡 등산로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계곡을 건너 평탄한 길을 사분사분 걷다 보면 어느새 임도와 만난다.

    이곳에서 관리사무소까지 1.8km를 평탄한 산책로로 이동한다. 녹음이 짙은 사색의 숲길을 걷다 보면 하늘다리를 만난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 4층까지 오른 후에 현수교 한가운데서 짙푸른 옷을 입은 느티골을 조망한다.
  • ▲ 하늘다리.ⓒ진경수 山 애호가
    ▲ 하늘다리.ⓒ진경수 山 애호가
    좌측으로 신선봉과 우측으로 선야봉을 조망하고, 그 중앙을 가로지르는 하늘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는 2015년 9월에 준공되었고, 길이가 110m, 폭 1.7m인 현수교이다.

    이어 체험의 숲길을 걸어 목재문화체험장을 지나 하늘데크를 걷는다. 계곡을 넘나들며 이어지는 걸음걸음마다 웃자란 나뭇잎과 눈높이를 같이 하며 무언의 교감을 주고받는다. 그냥 네가 좋고,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고맙다고 말이다.

    생태숲학습관 앞을 지나서 제3캠핑장 방향으로 이동해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번 산행은 관리사무소 주차장을 기점으로, 선야봉과 신선봉을 차례로 오르고 오십폭포로 하산하여 계곡 등산로 내려온 후, 느티골을 따라 원점회귀 하는 약 7.0㎞ 거리다.

    ‘나답게 사는 행복’을 위한 오늘의 산행에서 꺼지지 않는 꿈과 희망, 그리고 기운을 한껏 받아 내일을 헤쳐나갈 정열의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