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세종시장, 월요이야기 제69호
  • ▲ 최민호 세종시장.ⓒ세종시
    ▲ 최민호 세종시장.ⓒ세종시
    악기를 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부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나는 그만 색소폰에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수사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최근 중년 남성들 사이에 색소폰을 배우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색소폰 특유의 음색에서 어필되는 우수와 회한 같은 것이 마음을 끌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이 꺾어지는 또 다른 고개에 서서, 지난 생활과 앞으로의 인생을 바라보는 중년들의 성취 속의 허무감은 바람이 새는 듯, 낙엽이 갈라지는 듯 허스키한 색소폰 소리에서 그 심사가 깊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동굴에서 울려 나오는 듯 중량감 있는 색소폰의 볼륨은 그들의 인생의 무게를 내공의 울림으로 가늠하는 양 결코 가볍지 않지요. 풍부한 음량의 색소폰은 중년의 남성을 닮았습니다.

    하지만 색소폰이 허스키한 멜로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적인 색소폰 연주자 케니지(kenny G)가 그 유명한 ‘Loving You’를 연주하면서 마치 실바람이 연실을 타고 넘어가듯 흐느끼며 끊어지지 않고 20여 분 이상 선율이 지속되는 연주를 들으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신묘한 기법은 숨을 내쉼과 동시에 들이쉬면서 연주하는 ‘순환호흡법’이라합니다. 서울의 최광철이라는 연주자는 이 ‘순환호흡법’의 득음을 터득하기 위해 6개월간을 오대산에서 컵 속에 대롱을 넣고 숨을 내쉬며 동시에 들이쉬는 수련을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의 음색과 가장 흡사하다는 색소폰 소리는 여러 가지 감정 표현이 가능한 악기로 여겨집니다. 한숨을 쉬듯 바람을 불어넣어 연주하면 가을의 낙엽을 지게 하는 스산한 바람 소리로 들려옵니다. 

    소리를 곱디곱게 갈아 고음으로 연주할 때는 마치 피콜로나 클라리넷의 여리디여린 피리소리로 들리는가 하면, 저음의 소리를 울어내듯이 불어버리면 뭇 여인들의 설레는 가슴을 온통 흔들어 버리고 맙니다. 

    어느 넓은 어깨에 가슴을 파묻고 울어버리고 싶은 음선을 가진 것이 테너 색소폰이요, 흐느끼듯 가늘게 고온에서 달구어 이어지는 소리는 소프라노 색소폰입니다. 

    초콜릿으로 혀를 감싸듯 달콤하게 여인의 귀를 속삭여 주는 소리를 들었다면 그것은 알토 색소폰일 것입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했던가요. 비단 여자뿐이겠습니까. 우리의 감정은 갈대와 같아 하루에도 수백 번, 아니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내 마음 나도 모르게 흔들거리며 불안하기만 하지는 않은가요.

    사람의 오묘한 감성과 같이 색소폰의 감정도 다양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색소폰은 정규 관현악 연주 악기에 끼지 못합니다. 개성이 강한 색소폰은 어디까지나 외로운 독주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색소폰은 재즈음악과 친합니다. 흑인들의 영가에서 비롯한 재즈는 전통적으로 악보가 없지요. 악보를 연주하지 않고 주자의 마음을 연주하는 재즈음악에 그래서 색소폰은 빠질 수 없는 가족인 것입니다.

    색소폰은 금속으로 된 악기이지만 목관악기로 분류되고, 벨기에의 앙투안 조셉 색소에 의해 1800년대 후반에 파리에서 발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1920년대에 들어서야 미국의 재즈음악과 함께 전 세계로확산된 유래도 결국 색소폰의 이런 풍부한 호소력 때문일 것입니다.

    색소폰에게 하루의 시간을 부여한다면 저물어가는 저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침에 트럼펫 소리가 들려온다면 하루의 시작과 승리를 다짐하는 경쾌한 청량음으로 들려올 것이요. 봄볕이 따스한 낮에 플루트나 클라리넷의 소리가 들려온다면 온화한 한낮의 평화가 깃들일 듯하지만, 색소폰은 다릅니다.

    색소폰은 어딘지 밝지 않을 정도의 은은함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깊은 음의 떨림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 어울릴 성 싶은 것이죠.

    왠지 그의 음색은 고백에 가깝고 그의 바이브레이션은 진솔함에 충실합니다. 저음으로 가라앉을 때면 가슴이 물컹 내려앉는 마음의 저림이 있다가 고음으로 치솟을 때는 내면에서 분출되는 환희 같은 것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곡이 끝날 때면 앙코르로 소리를 치기보다는 아쉬움으로 가슴에 남는 여운이 있어 연주자의 다음 곡을 소리없이 재촉하게 만듭니다. 

    한숨과 저음의 우수와 부는 사람마다 소리가 다른 그들만의 감정으로 저녁의 황혼을 뒤로하며 들려오는 떨림의 소리. 색소폰 소리.

    저녁 으슥한 무렵, 색소폰을 불곤 합니다. 아니 우러나며 걷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을 붑니다. 바쁘고 바빠 정말 특별한 초대나 의미가 있는 자리가 아니면 불지 못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