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청량한 만수골 물소리 일품[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제천시 편
  • ▲ 전망대에서 바라본 만수봉.ⓒ진경수 山 애호가
    ▲ 전망대에서 바라본 만수봉.ⓒ진경수 山 애호가
    만수봉(萬壽峰, 해발 983m) 충북 제천시 한수면과 충주시 수안보면의 경계에 자리한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 봉우리다. 

    월악산국립공원은 1984년 우리나라에서 17번째로 지정되었고, 만수봉, 금수산, 신선봉, 도락산 등 22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산과 봉우리가 속해 있다. 

    이번 산행은 만수휴게소를 기점으로 능선과 계곡 갈림길~용암봉~정상~만수봉 삼거리~만수계곡을 거쳐 원점 회귀하는 약 9㎞이다. 

    만수봉을 휘돌아 흐르는 만수골의 맑고 시원한 물은 월악산의 아름다운 송계계곡을 만들어 낸다. 굽이굽이 흐르는 이 물길은 수려한 송계팔경을 빚으며 청풍호반을 이룬다.
  • ▲ 월악산 만수 ASMR존 계곡.ⓒ진경수 山 애호가
    ▲ 월악산 만수 ASMR존 계곡.ⓒ진경수 山 애호가
    만수휴게소 주차장에서 만수교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우측으로 접어들면 월악산국립공원 만수탐방지원센터에 이른다.

    이곳이 만수계곡의 초입이자 만수봉탐방로 및 자연관찰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지원센터 바로 옆에 있는 목교를 건너 포장길을 쭉 따라가서 만나는 송유채취가마터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한편, 목교를 건너자마자 테크가 조성된 자연관찰로로 접어들면 계곡의 소리를 담아갈 수 있는 월악산 만수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존을 만난다. 이곳에서 목교를 건너서 탐방로로 접어들 수 있다.

    숲속의 고요를 깨뜨리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 사분사분 걷는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청량한 계곡 물소리의 아름다운 연주를 비추며, 보는 이의 가슴에 울림으로 다가온다.
  • ▲ 탐방로 초입의 소나무 상흔과 가파른 길.ⓒ진경수 山 애호가
    ▲ 탐방로 초입의 소나무 상흔과 가파른 길.ⓒ진경수 山 애호가
    만수교 기점 0.5㎞ 지점에 이르자 만수봉 능선길(2.4㎞)와 계곡길(3.9㎞) 세거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계단을 통해 가파른 능선길로 접어든다.

    산행 초입부터 간간이 나무계단을 만나지만, 대부분 거칠고 험한 바윗길이나 암반이라 철제 난간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고도를 높이면서 맑고 상쾌한 공기는 시원해지고, 가빠지는 숨소리는 번잡한 마음을 토해내며 그 자리에 자연의 숲이 들어앉는다.

    산길에서 만나는 일제강점기 송진을 채취하기 위한 소나무의 상흔을 보니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진정한 사과는커녕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만행에 분노를 느낀다.
  • ▲ 박쥐봉을 배경으로 자리한 적송.ⓒ진경수 山 애호가
    ▲ 박쥐봉을 배경으로 자리한 적송.ⓒ진경수 山 애호가
    다시 산행의 발걸음에 집중하며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끝날 줄 모르는 급경사를 오르다 암반을 만나면 하늘이 열리고 주변 산들이 조금씩 얼굴을 드러낸다.

    만수교에서 0.9㎞에 이르자 산은 선물을 풀어놓는다. 커다란 소나무 아래 편평한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며, 한정적인 시야이지만 송계계곡 건너편 산등성이를 조망한다.

    다시 멋진 선물을 기대하며 오르막길에 발을 내딛는다. 단단한 바위가 세월과 비바람, 산객의 발걸음에 깎이고 쓸리어 자잘한 돌로 떨어져 나간 길을 오른다.

    힘든 오름 뒤에 찾아올 선물을 기대하며 거친 바윗길을 오르자, 박쥐봉을 배경으로 고상한 자태를 취하고 있는 기품있는 적송을 만난다. 자연은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 ▲ 용암봉 아래에 있는 전망대.ⓒ진경수 山 애호가
    ▲ 용암봉 아래에 있는 전망대.ⓒ진경수 山 애호가
    이후 산의 기세가 좀 누그러지면서 경사가 좀 완만해진다. 빼곡하게 들어찬 참나무 숲길은 상상의 푸른 바닷속 용궁길 같다.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나부끼는 나뭇잎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잎새에 부딪히는 바람이 청아한 새소리마저 멈추게 할 만큼 요란스럽고, 후끈 달아오른 몸을 시원하게 식혀 준다.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가? 바람인가 잎새인가?

    맑고 부드러운 햇살과 청량한 바람이 생동하는 숲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찬란한 풍광을 만든다. 그 속에서 돌을 밟든 흙을 밟든 무관하게 그저 마음엔 평온이 찾아든다.

    울창한 숲길을 나와 비탈길에 길게 누운 바위 위를 걷는다. 만수교 1.9㎞ 지점에 이르자 산은 서서히 소나무 숲으로 얼굴을 바꾸고 몸을 세우기 시작한다.
  • ▲ 만수봉 오름길에 바라본 백두대간의 마루금.ⓒ진경수 山 애호가
    ▲ 만수봉 오름길에 바라본 백두대간의 마루금.ⓒ진경수 山 애호가
    서서히 회색빛 속살을 드러내는 산은 거대한 선바위를 휘돌아 오르는 철계단을 넘자, 널찍한 암반을 펼친다. 그 위에 데크 전망대가 산객에게 선물을 줄 준비를 한다.

    산들이 켜켜이 층을 이루며 산이 산을 업고 있다. 만수봉, 포암산, 주흘산의 영봉과 주봉이 선물로 다가온다. 자연은 존재만으로 이익이 되지만, 인간은 손에 잡히는 이익만 생각한다.

    몇 발자국 오르자 용암봉(892봉)을 지나면서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진다. 소나무 숲 사이를 계단과 난간이 설치돼 안전하게 하행할 수 있다. 앞으로는 올라야 할 만수봉, 좌우로 월악산 영봉과 포암산 등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안부에 닿으니 만수봉이 0.5㎞를 남겨두고 있다. 한낮으로 향해가는 지금 잎새는 더욱 맑은 초록빛으로 눈부시다. 흙길을 오르는가 싶더니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돌길로, 거친 바윗길로 바뀐다. 
  • ▲ 만수봉 정상에서 바라본 월악산 영봉과 청풍호.ⓒ진경수 山 애호가
    ▲ 만수봉 정상에서 바라본 월악산 영봉과 청풍호.ⓒ진경수 山 애호가
    계단을 오르고 계속되는 가파른 오름길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0.5㎞가 왜 이리 길고 험한지, 언제쯤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되뇌는 순간 하늘이 열리는 암반을 걷는다.

    고된 오름의 피로가 한순간이 날아가는 듯하다. 넘실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이곳까지 올라온 능선을 바라보니 내가 참 대견하다 싶다.

    건강해서 이렇게 산에 올라 풍광을 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그동안 건강을 위해서 산을 찾았지만, 이젠 건강을 잘 유지해야 산을 오를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싶다.

    다시 막바지 가파른 바윗길은 정상을 쉽사리 내어 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쉬엄쉬엄 한발 한발 오르다 보니 계단과 함께 월악산 영봉이 눈 앞에 펼쳐진다.
  • ▲ 만수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 만수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월악산 영봉과 청풍호가 그리는 수려한 정취에 흠뻑 빠져 만수봉 오르는 것조차 잊을 정도다. 몇 계단 오르다 멈추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오늘의 목적지 만수봉 정상에 닿는다.

    이곳에서 월악산 영봉과 주변 산들이 펼치는 절경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눈에 가슴에 카메라에 담는다. 실컷 담은 후에야 만수봉 정상석이 눈에 들어오니 만수봉이 서운했겠다 싶다.

    정상 주변에는 널찍하고 편평한 자연석들이 놓여있어 산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요즘엔 젊은 산객들이 산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미 도착한 그들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만수교(4.4㎞)‧포암산(5.0㎞) 방향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흙길인가 싶으면 바윗길이고, 바윗길이 계속되나 싶으면 암반 길이 경사가 완만하게 만수봉 삼거리까지 이어진다.
  • ▲ 만수계곡 방향의 내리막길에서 만난 조릿대 숲.ⓒ진경수 山 애호가
    ▲ 만수계곡 방향의 내리막길에서 만난 조릿대 숲.ⓒ진경수 山 애호가
    만수봉 삼거리는 해발 876m로 정상에서 0.6㎞ 떨어져 있으며, 이곳에서 포암산까지 4.4㎞, 만수교까지 3.8㎞이다. 정상에서 삼거리까지 하행하면서 간간이 기암들이 눈길을 끌지만 무심하게 지나친다.

    아마도 저녁음악회 초청 시간을 맞추려고 서두른 탓이다. 큰 결심하고 약속을 취소하니 그제야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분리됐던 몸과 마음이 자연 속으로 하나가 된다. 산은 늘 내려놓으라 한다.

    하늘은 울울창창한 참나무숲, 땅은 빽빽한 조릿대 숲이 만수교 방향의 가파른 나무계단을 뒤덮고 있다. 초록빛 세상에 몸과 마음을 담그니 절로 힘이 생기고 생기가 넘쳐난다.

    계단의 끝자락은 마치 너덜지대처럼 거친 바윗길이 이어진다. 만수봉 기점 0.9㎞ 지점을 지나면서 흙길과 돌길이 반복된다. 이후부터 조잘대며 흐르는 물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 ▲ 만수계곡의 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만수계곡의 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만수교를 3㎞를 남겨두고 청량한 물소리에 이끌러 계곡으로 내려갔다 올라오기를 숱하게 반복하며 느릿느릿 걷는다. 널찍널찍한 반석 위로 옥구슬처럼 흘러가던 물은 폭포수를 이루고 다시 수려한 반석과 소(沼)를 이루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만수계곡으로 흐른다.

    계곡물에 시름을 실어 먼저 떠나보내고, 오롯이 나로서 느긋하게 뒤따라 내려온 길은 어느새 만수교를 1.0㎞만 남겨두고 있다. 이곳에서 계곡 탐방로 대신에 목교를 건너 자연관찰로를 걷는다.

    잠시 계곡으로부터 멀어진 대신 숲속의 수풀을 관찰하며 찬찬히 걷는다. 발바닥에 통증을 느낄 무렵 월악산 만수 ASMR존에서 잠시 쉬어간다. 상념을 날려버리고 무심하게 들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심신이 이완된 힐링에서 내일을 준비할 활력을 얻는다.

    목교를 건너 만수 21세대 자연놀이터를 지나면서 이 아름답고 수려한 자연을 어떻게 하면 미래 세대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을까? 그 책임과 역할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