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백상 둘레길의 일부 구간[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청주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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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이 막 절반을 넘어서는 길목, 신록은 점점 짙은 녹음으로 변해간다. 조석으론 좀 서늘한 듯하면서도 한낮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초여름 더위를 보인다. 남은 절반도 계절의 변화가 만드는 황홀한 풍경처럼 삶도 나답게 사는 행복으로 변했으면 좋겠다.주말이면 찾아다니던 산을 바쁘다는 핑계로 오르지 못하니 몸도 마음도 점점 버거워진다. 그래서 하던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여름 햇살을 온새미로 받으며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청주 상당산성을 돌아볼 참이다.상당산성은 백제 때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지금의 성은 임진왜란 때 일부 고쳤고, 숙종 42년(1716)에 돌로 쌓은 성이라 한다. 상당산성은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석성이다.상당산성은 길이가 4.2㎞, 높이 3~4m, 내부면적 0.73㎢에 이른다. 오늘은 성벽을 따라 여유롭게 걸으면서 역사의 숨결과 주변의 수려한 풍경, 청주시내를 조망해볼 생각이다. 이를 위해 성내방죽 바로 아래 공영주차장(제9호)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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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수문터로 올라선다. 산성 둘레길은 고도차가 대략 150m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렇다고 평탄하지는 않고 약간의 오르내림은 반복되어 외려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수문터에서 옛날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던 장대(將臺)인 동장대(東將臺) 방향으로 오른다. 이 건물에는 보화정(輔和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지금은 해체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다가오는 8월 5일에 완공 예정이란다.덕분에 성벽 우측으로 농촌풍경과 선두산 방향의 짙은 신록의 산등성이를 조망하며 걷는다. 푸르른 길섶에선 작은 미소로 반기는 꽃들이 지천이다.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간만에 오르막을 오르니 숨이 턱 막혀오는가 싶더니 한 구릉을 넘어서자 적응이 되기 시작한다.완만하게 내려서는 길에서 짙은 녹음 속을 가르는 성벽을 내려다보니, 그 옛날 나라와 백성을 지키려는 일념으로 성을 쌓았던 이들의 정성과 노고를 상상해 보며 감사함을 느낀다. 살짝 내려앉은 곳엔 상당산성 동문이 진동문(鎭東門)이란 현판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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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 자리한 곳은 해발 350m 정도로 비교적 낮은 곳이다. 가파른 오르막의 성벽을 따라 오르자 몸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면서 땀이 흘러내린다. 힘들긴 해도 외려 번잡한 생각을 훌훌 떨쳐버릴 수 있어서 종아리가 뻐근하게 더 힘차게 올라본다.성벽 안쪽의 곧게 솟은 울창한 송림에선 피톤치드 향이 쏟아지고, 성벽 아래에선 푸르른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싱그러운 내음을 퍼트린다. 답답했던 가슴 속이 활짝 열리고, 무거웠던 발걸음이 가벼워진다.동문에서 0.6㎞를 이동하자 동북 암문(暗門)을 만난다. 상당산성에는 동북 암문과 서남 암문 두 곳이 있다. 이 암문은 아군이 적군 몰래 출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축, 양식 등을 나를 때 사용한 사잇문이다.암문은 비상시에는 흙으로 문을 막아 통로를 폐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은 동북 암문이 열려 있어 이 문을 통과해 상당산성 자연휴양림 길로 연결된다. 암문 위를 지나 모퉁이를 돌아 오르자 북쪽으로 시원하게 조망이 트이며 멋진 풍경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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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내수읍과 북이면, 증평군과 두타산 능선까지 조망하며 북쪽 성벽 길을 내려선다. 구불구불 산의 형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축성된 성벽을 따라 걸으며 어쩜 그렇게 사는 게 나답게 사는 행복이지 아닐까 싶다. 내리막길이 더 갈 길을 잃자, 산당산성 3호 수구(水口)를 만난다.수구는 성 내부의 물이 성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든 시설로, 사람이 통과할 수 없는 작은 규모의 시설이다. 상당산성에는 남서쪽(1호), 서쪽(2호), 북쪽(3호)에 세 개의 수구가 설치돼 있다.더 내려갈 수 없으니 길은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어려움이 바닥에 이르렀다고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나답게 사는 행복’을 향해 오르는 길뿐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바람에 먹구름이 물러나듯 밝은 날이 있을 테니 말이다.오르막 성벽을 걸으면서 발아래로 내려다본다. 그곳엔 짙푸른 녹음으로 뒤덮인 산골짜기에 자리한 상당산성 휴양림이 있다.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한적한 산행을 위해 그곳에서 이곳 산성까지 올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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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리막길을 이어 가다가 성 바깥 북쪽을 향해 화포를 발사하기 위한 포루지(砲樓址)-1에 닿는다. 상당산성에는 포루지가 두 곳이 있다.포루지-1에서 내려서니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엔 성벽 밖으로 데크 계단으로 연결돼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진다. 이젠 평탄한 길이 쭉 이어지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바위를 만나 계단을 내려선다.산성길이라 단순할 것 같지만, 상당산성은 이처럼 다채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성곽길을 걷다가 햇볕이 따갑다고 느끼면 바로 옆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걸을 수도 있다.다시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무심하게 걸음에만 집중한 탓인지, 내 생각과 몸이 바뀐 탓인지, 산성길이 예전과 달리 변했기 때문인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질 무렵 상당산성 서문이 지척으로 앞에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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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처럼 일렁이는 성벽을 따라 이동하면서 상당산성으로 연결되는 산줄기들을 조망한다. 이 순간에도 저 산줄기 속에 들어있는 등산로를 따라 산성을 오고 가고 있는 이들이 있을까?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숲길이 있다는 건 어쩜 청주시민의 복이 아닌가 싶다.성벽 위로 우뚝 선 서문에 닿는다. 서문이 있는 곳의 지형은 호랑이가 뛰기 전 움츠린 모양과 닮았다고 한다. 호랑이가 떠나면 땅 기운이 다하므로 호랑이의 목에 해당하는 곳에 바로 이 성문을 세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호문(弭虎門)이라는 현판을 달았다고 전한다.문밖 양쪽으로는 성벽을 돌출시켜 방어에 유리하게 조성했는데, 이러한 구조는 암문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건축 비용을 줄이고, 전술적 효과를 높인 것이라 한다.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성곽길을 걷자니, 성벽 안쪽으로 울울창창한 송림이 유혹한다. 그러나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자 했기에 모르는체한다. 미호문에서 얼마 가지 않아 상당산성 2호 수구를 지난다. 이전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관심을 기울이자 신기하게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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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휘돌아 오르자 망산(해발 348m)과 그 뒤로 우암산(해발 353)이 조망된다. 얼마 전 망산을 거쳐 이곳 산성에 오르려 했으나 개인 소유지라고 출입통제해 오르지 못한 적이 있다. 지금은 해제되었는지 모르겠다.완만한 내림세가 이어지고, 성벽 밖으로 우암어린이회관 방향의 등산로와 연결된 데크 계단을 만난다. 이곳엔 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곳이라 하여 태극삼거리라 한다. 성벽 안쪽 송림 아래에는 쉼터가 마련돼 있다.구불구불하지만 평탄한 산책길이 계속되면서, 멀리 것대산(해발 484m)이 보인다. 것대산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상당산성 서남 암문에 닿는다. 인접한 상당산성 1호 치성(雉城)이 서남 암문을 경계하고 있다. 이 치성이 서남쪽에 위치해 서남 치성이라고도 한다.치성은 적의 접근을 빨리 파악하고, 전투 시 성벽으로 다가오는 적을 양쪽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쌓은 것을 말한다. 성벽의 바깥쪽에 덧대어 쌓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성벽을 보강하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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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 암문을 통과해 1㎞ 지점 출렁다리를 거쳐 것대산으로 이어진다. 그곳으로 가려는 발길을 되잡아 서남 치성 위로 올려놓는다. 이제 성벽 길은 미끄럼틀처럼 제법 위태로운 경사를 이룬다. 성벽 길은 미끄럼 방지를 위해 울퉁불퉁하게 잔돌을 박아 놓았다.그 길을 오르내리면서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안쪽의 송림이 나뭇가지를 쭉 뻗어 포근하게 안아준다. 상당산성 남문이 가까워지면서 성벽은 복원이 잘 된 모습이다. 상당산성 2호 치성에서 남문과 그 앞으로 펼쳐진 넓은 잔디공원을 내려다보니 참으로 평화롭다.이곳에서 치성을 기능을 다시 확인해 본다. 잔디밭에서 놀이하는 사람들, 자리를 깔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그들이 누리는 평화와 행복이 계속되길. 그러자면 이 성처럼 우리나라가 힘이 굳건해야 한다.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는 독도를 우리는 꼭 지켜내야 한다.이제 발걸음이 공남문(控南門)이란 현판이 걸린 웅장한 모습의 상당산성 남문에 닿으면서 산성 둘레길도 막바지에 이른다. 남문을 통과해 성벽 밖의 잔디공원을 걸어본 후 잠시 여유로움과 달콤한 휴식을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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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남문을 통해 성벽 안으로 들어와 성곽을 걷는다. 30년 전 세 아이를 데리고 걷던 생각이 유연히 피어오른다. 늠름하게 혼자 앞서가던 큰아들, 엄마 손을 꼭 잡고 걷던 큰딸, 내 품에 안겨 칭얼대던 막내딸이 말이다.이 길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지만, 우리는 이제 이렇게 변해버렸다. 집에 돌아가서 앨범이라도 뒤척거리며 아이들과 행복했던 시절, 아니 치열하고 고됐던 삶이었던 그때를 이젠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기억해야겠다.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내려서서 목교를 건너 성내방죽에 이른다. 이곳에서 상당산성 자연마당을 둘러보기로 한다. 이곳은 방치된 다랭이논을 활용해 야생초와원, 생태습지, 논두렁 탐방로, 생태휴식공간 등을 조성해 놓았다.상당산성 자연마당은 성내 방죽길과 함께 새로운 생태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시사철 휴식을 위한 장소로, 자연관찰을 위한 곳으로 인기가 많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찾고 즐길 수 있는 힐링 명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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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마당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초록빛 늪 속으로 빠져든다. 이젠 삶에 청춘의 기운으로 듬뿍 채우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새봄에 화려한 벚꽃으로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던 나무가 이젠 울창하고 푸르른 그늘을 만들어 다시 사람들에게 시원한 휴식을 주고 있다.더워도 꼭 안고 걷는 연인, 사랑하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은 부모, 세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손을 꽉 잡고 걷는 노부부, 그동안 집안에서 답답했을 어르신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걷는 자식들, 각자의 사연으로 자연과 함께 하는 모습이 그저 평화롭기 그지없다.방죽 옆으로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새롭게 단장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메마른 입을 축이기 위해 카페 오름에서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커피를 마신다. 오늘도 그렇게 역사의 숨결과 자연의 숨을 느끼면서 ‘나답게 사는 행복’의 그림을 그렸다. 산책 거리는 약 6㎞이고, 소요시간은 약2시간 3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