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부실해 산행 부담 느껴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단양군 편
-
올산(兀山, 해발 858m)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 북쪽에 자리한 바위산으로 첩첩산중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이다. 올산 서쪽으로 황정산(해발 959m)과 마주하고 있다.올산의 산행기점은 남쪽 올산리와 북쪽의 미노리가 있다. 올산리에서 출발할 경우 정상까지 거리가 짧아 비교적 빠르게 정상에 도달할 수 있지만,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을 볼 수 없어 밋밋한 산행이 될 수도 있다.반면, 미노리에서 출발할 경우 정상까지 약 5.7㎞ 거리이어서 시간이 다소 소요되지만, 기기묘묘한 바위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산행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우리는 산행기점으로 미노리를 선택한다. 암릉미를 만끽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어 눈과 마음이 즐겁지만, 발이 고생하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한다.
-
미노리 경관 쉼터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자동차 5대 정도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쉼터와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맑고 투명하면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남조천을 바라보면 미노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곧바로 우회전해 포장된 농로 길을 걸어 오른다.봄과 여름의 계절 사이에서 짙푸른 신록이 온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인다. 그 초록빛이 남조천까지 흘러들고 있다. 더불어 새들의 노랫소리에 춤을 추듯 가볍게 걸음을 옮긴다.쉼터에서 농로를 따라 0.4㎞ 정도 이동하자 ‘두꺼비 바위’를 만난다. 이 바위는 쉼터에서도 조망된다. 여유만만하게 입에 소나무를 물고 있는 두꺼비 바위, 이를 보는 이들의 입가엔 미소가, 마음엔 여유가 풍요롭다.
-
농로 옆으로 조잘대며 흐르는 물소리가 생명을 깨운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아카시아 향기를 몸속으로 가득 번져 들게 한다. 그 향기가 아무리 더없이 좋지만, 토종벌에는 인기가 없단다.맑은 햇살과 푸른 하늘, 하얀 향기가 진동하고, 초록으로 가득한 숲으로 둘러싸인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춘기사방댐에 이른다.울산 등산 안내도를 살펴보고 징검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초반부터 가파르게 치닫는 산길은 쉼 없이 이어진다. 이정표가 없는 단지 선행자의 흔적을 따라 오르는 길.단내가 뿜어져 나오고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럴 때마다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제2연화봉 전망대가 살피살피 보인다.
-
기묘한 바위를 지나면 능선에 닿는다. 능선을 걸으면서 부끄러운 듯 소나무 뒤에 숨은 오늘 산행의 목적지인 올산 산등성이를 조망한다. 이에 정상이 3.30㎞ 남았다고 알리는 첫 번째 이정표를 만난다.오르막이 잠시 숨을 고르며 내리막이 시작되자, 소나무 옆에서 친구를 업고 있는 바위를 만난다. 산객들은 이 바위를 ‘공깃돌 바위’[ 등으로 부르지만, 마치 고인돌이 연상되어 그냥 ‘고인돌 바위’라 부른다.내리막에 이어 다시 밧줄을 잡고 암릉을 오른다. 암반에 올라서니 흰봉산(해발 1261m), 소백산 제2연화봉 전망대, 올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처럼 산은 의리를 저버린 적이 없고 힘들게 만든 만큼 반드시 탁 트인 전경으로 보상한다.하얀 속살, 굵직한 근육을 자랑하는 이곳은 550봉이라 부르는 곳으로 출발기점 2.0㎞ 지점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아 시루봉이라고도 불린다. 암반을 2m 정도 움푹 파인 깊숙한 벽을 뚫고 자란 신비로운 나무를 마주하자 자연의 오묘함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
암릉을 내려가는 길, 단단한 화강암을 뚫고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용트림하듯 간절한 삶을 이어가는 노송의 줄기에 새싹을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 것 이리랴.암봉을 휘돌아 내려가면서 널찍한 조망터에서 719봉을 조망한다. 그리고 3m 정도 되는 꽤 높은 경사진 암릉을 밧줄도 없이 맨살을 만지작거리며 내려간다. 암릉을 내려와 짙은 신록의 바닷속으로 걸음을 옮긴다.이내 만나는 두 번째 이정표는 정상이 2.81㎞로 안내한다. 편안한 숲길인가 싶더니 이내 산이 허리를 펴기 시작한다. 처음 산행하는 곳의 오르내림을 예측할 수 없는 건 아마도 미래의 삶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닮았다.고도가 높아지면서 시루봉이 눈앞에 들어오고, 길을 가로막고 선 하얗고 거대한 바위 군락을 휘돌아간다. 금새 엎어질 듯 비스듬한 바위 아래로 용트림하며 삶을 이어가는 소나무 지나 조망바위에 오른다. 그곳에서 올산과 맞보고 자리한 황정산과 영인봉, 영인봉의 산 허리춤에 자리한 원통암과 황정산 자락에 자리한 대흥사 미륵불전을 조망한다.
-
풍경에 취해 이동하는 시간보다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암반을 건너 하행하는데 좌측으로 웅장한 바위가 산 아래로 굴러떨어질 듯 위태롭다. 수수만년 동안 그 바위 밑을 받치고 있는 작은 바위가 대견스럽다고 감탄한다.그들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틈새를 일컬어 산객들은 ‘산부인과 바위’라고 부른다. 그러나 필자는 크고 작음의 차별 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배려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경외심을 불어넣기 위해 ‘상생 바위’라 부르기로 한다.정상이 2.43㎞ 남았다고 알리는 이정표가 550봉과 719봉 구간에만 5개가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고, 정작있어야 할 분기점 등에는 설치가 돼 있지 않아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초행자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암릉을 내려와 719봉으로 오르는 길, 상생 바위의 온전한 제모습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니 매끈하고 단단한 머리 위에 자신을 숨기려는 듯 생명을 키워내고 있다. 짙은 초록의 참나무 숲길은 꼿꼿하게 허리를 펴며, 산객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
초여름 날씨에 비를 맞은 듯 땀이 흘러내리고 피로가 몰려올 무렵 산은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탁 트인 조망처에서 바라보는 소백산과 올산의 전경을 조망하니, 속세에서 가졌던 속 좁은 마음이 부질없음에 참회한다.갈라진 바위 틈새에 자리 잡은 소나무를 보자, ‘선즉공(善卽空) 공즉족(空卽足)’을 느낀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을 비우는 것이요,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곧 만족할 줄 아는 것은 아닐까?719봉에 도착해 올산으로 향하기 위해 암릉 구간을 한동안 밧줄을 잡고 내려간다. 바위의 웅장함과 탁 트인 풍광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아찔함에 긴장을 늦출 수 없으며 짜릿한 스릴마저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이런 감정을 느낀 산객들이 그 맛이 그리워 산에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
다시 시작되는 숲길은 평평하게 이어지는가 싶더니 서서히 고도를 낮춘다. 무상(無上)의 깨우침을 얻으려면 최고의 고통을 이겨내고 얻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듯하다. 능선길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좌우 갈라서 제 영역을 지키고 있다.우리는 가던 발길을 멈추고 길옆으로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본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하늘빛과 참나무 잎을 통과한 맑고 투명하게 햇살에서 함께 어우러져 인생을 동행하는 옆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안부에 이르러 올산리와 미노리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부터 오늘 산행의 최종 목적지인 올산을 향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름길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너덜지대와 큰 바위를 지탱하고 있는 ‘아파유~! 나무’를 지나자 이정표가 우측으로 방향을 틀라 한다.가파른 치닫는 오르막이 올산 정상을 쉽사리 내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접시 비행 바위’를 지나고 직벽에 가까운 암벽을 타고 오르자, 춘기사방댐에서 시작된 능선이 시루봉과 719봉을 거쳐 현 위치에 이르는 지난 여정을 돌아보게 한다.
-
지난 과거에 집착하기보다 지나온 세월을 되새김하며 새로운 내일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기는 에너지를 받는다. 그렇게 다시 오르는 길에 드물게 나타난 적송이 눈길을 끈다. 남다르게 산다는 것이 이와 같으리. 드디어 두 암봉을 잇는 구름다리 위를 걷는다.구름다리 한가운데 서서 사방으로 펼쳐진 풍광에 넋을 잃고 빠져든다. 하산하게 될 능선이 완만하게 늘어지고, 그 줄기에 우뚝 솟은 암봉이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다.다리를 건너자 웅장한 암반을 뚫고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 그 나무에 매달려 축 늘어진 밧줄이 구름다리 설치 전의 산행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산행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하늘을 가르며 걷는 지금의 모습이 신선이 아닌가 싶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니 신묘한 모양으로 산천을 내려다보고 있는 ‘기이한 바위’가 눈길과 발길을 붙잡는다.
-
기이한 바위 암릉에서 ‘골반 바위’로 넘어간다. 오랜 벗처럼 함께 있는 소나무와 골반 바위를 만난다. 이어지는 암릉 길에서 온전한 모습의 719봉을 조망한다. 암봉이 워낙 웅장하여 푸른 숲으로 미처 다 가리지 못한 하얀 속살이 하행의 험난 경험을 떠오르게 한다.막바지 정상을 향한 오르막 숲길, 선바위를 지나 통나무 계단과 암릉을 오르자 이제야 올산이 해발 858m의 정수리를 보인다. 숲으로 둘러싸인 정상은 조망은 없지만, 성취감을 한껏 누릴 수 있다.정상의 이정표는 미노리 4.17㎞, 올산리 1.23㎞라고 안내한다. 차량 회수를 위해 미노리를 향하는데, 올라온 길을 다시 돌아가지 않고, 정상에서 올산리 방향으로 몇 걸음 이동하여 좌측의 능선을 따라 하행을 시작한다.울창하게 우거진 초목으로 가득한 능선길은 장구한 세월을 한 자리만을 지켜온 고령의 참나무, 이끼를 잔뜩 머금고 나무를 생장시키는 바위, 지난가을 떨군 낙엽으로 하행의 여정을 맞는다.
-
능선을 따라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지는 하행 길에 이따금 나뭇잎 사이로 구름다리가 작별인사를 건넨다. 정상에서 1㎞ 정도 이동하자 거대한 암릉이 능선을 가로막고, 저녁 햇살마저 가리니 그 옆으로 우중충한 길을 걷는다.다시 올라선 능선길에서 만나 ‘메기 바위’를 내려선다. 상행과 하행 능선을 동시에 조망하고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화강암에서 세월과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마사가 깔린 길은 발걸음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한다.직벽의 암릉을 내려와 계속 이어지는 능선길, 언제쯤 그 끝이 보일지 알 수 없다. 능선 아래서 치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엎어지며 나도 알 수 없다고 한다. 철탑을 지나고 한동안 이어지는 능선길은 좌측 비탈로 들어서자 거칠고 가파른 모습으로 바뀐다.계곡을 만나 숲 터널을 빠져나오니 두릅 밭이 이어진다. 조심스럽게 밭을 통과해 날머리인 계곡을 잇는 다리와 만난다. 농로를 따라 주차장에 도착해 약 9.8㎞ 여정을 갈무리하며, ‘나답게 사는 행복’의 이야기를 쓴다. 그리고 오늘 산행에서 얻는 푸르름으로 내일을 향한 새로운 청춘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