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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 위에 돌을 깔 때까지만 해도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다. 형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형의 엄지손가락은 화력을 앞세워 먼 곳에 있는 적을 섬멸하기에 최적화된 비장의 무기였고, 검지손가락은 가까이 다가온 적을 정조준하여 가차 없이 도륙하는 첨단 무기였다. 어찌 되었듯 형과 머리 터지게 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까기는 공정과 상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쯤에서 골몰해 보자. 누가 알까기를 올림픽에 버금가는 반열에 올려놓았는가?개그맨 최양락이라는 것에는 하자가 없다. 세상은 코미디가 틀림없다. 형이 됐든 동생이 됐든 알까기에 패색이 짙으면 일어서는 척하면서 일부러 바둑판을 툭 건드려 뒤엎는다. 그런 연후에는 파장으로 치달으며 일부러 엎었다느니 어쩔 수 없이 건드렸다느니 하면서 비장의 무기와 첨단 무기는 삿대질 도구로 전락하고 터진 주둥이는 험악한 고성으로 제 역할을 한다. 알까기에는 위아래가 없다. 승자 독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근자 알까기 대국으로 온 나라가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염병이 난무한다. 알까기의 종국은 분하다, 억울하다, 열 받는다, 공정과 상식을 벗어났다, 독재다, 급기야 분신하거나 살던 집을 나와 머리 기른 채 출가를 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호출되기도 한다. 이른바 하나님의 사랑을 빙자하여 숨겨진 일 인치를 찾아냈다며 머리 긴 선수를 알까기 대전에 초대한다. 하늘에서는 어려우니 땅 위의 비즈니스 우등버스에 탑승하라고 아우성치다. 예약도 힘들다.누워서 가는 버스라 인기가 많아서인지 예약해 두어야 하지만 이 또한 그리 녹록지는 않다. 2분의 1열로 되어 있고 등받이를 아무리 뒤로 눕혀도 뒷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덤으로 좌석 사이에 커튼도 있어 카톡 내용이 기래기들 카메라에 찍힐 염려도 없다. 이제 물고 뜯는 리그전이 모두 끝나고 확정된 대진표에 명단을 올린 알까기 고수들끼리 토너먼트가 시작된다. 승자도 패자도 바둑판을 뒤엎을 것이다. 보나 마나 바둑판 장수만 떼돈 벌게 생겼다.형은 하얀색 바둑돌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있는 힘을 다해 동생의 검은색 돌을 향해 선방을 날렸다. 한 방에 훅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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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했다. 알까기 대전은 바둑판 위에서뿐만 아니라 풀밭에서도 자행된다. 풀밭 알까기의 달인에게는 일명 김알지 또는 박혁거세 후손이라는 별칭을 부여한다. ‘나이스 샷’이라고 외쳤으나 안타깝게도 원구가 로스트, 오비, 페널티 구역으로 들어가 찾질 못하게 되면 어디선가 나타난 조상이 아무도 모르게 알을 하나 까놓고 간다. 알은 금방 부화하여 로스트, 오비, 페널티 구역에서 살아서 기어 나온다. 기상천외한 난생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나면 뚜껑이 열린다. 달인은 되려 분하다, 억울하다, 열 받는다, 의심하지 말라며 발을 동동 구른다. 백돌이 에게는 핸디를 듬뿍 주지만 싱글에게도 나름의 계책이 있다. 툭하면 배판을 두드려 풀밭 생태계를 전혀 모르는 백돌이를 잡아 죽인다.형이면 형답게, 싱글이면 싱글답게 최양락이 전수한 자살, 헛손질 알까기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 바둑계는 이런 알까기 열풍에 편승하여 새로운 공격 패턴을 선보인다. 은폐, 엄폐, 방탄, 하이방 까기가 그 대표적인 공략법이다. 무지하게 재미있는 알까기 결승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누구 그라더라 개그콘서트가 사월 십 일 방영된다고.얼마 전 29년 동안 알까기를 연마하여 지리산 알까기 달인에 오른 노익장이 TV에 출연해 한판 대결을 벌였다. 양손 타법으로 피도 눈물도 없이 공격하여 상대를 제압한다. 엄지를 이용해서 밀어치는 깔아치기, 검지를 이용해서 밑으로 내려치는 찍어치기 타법으로 한방에 세 개의 알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버렸다. 이 정도 경지에는 올라야 알까기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다. 바둑계에서는 지리산 알까기 달인을 비례대표로 공천했다는 추문이 왁자지껄하다.그래 퍼펙트하다. 지금 조선은 온통 알까기 수업을 빙자한 유명강사가 출몰하여 2024년 판 봉숭아 학당을 여의도에 개설하고 까놓은 알을 긁어모으고 있다. 사교육비가 장난이 아니다.형은 헛손질한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다.2024년 3월 18일. 출산율도 뚝뚝 떨어지는데 알이나 까자. 이재룡 바둑돌이 귀해 병뚜껑을 구해 알까기를 시작했지만, 규칙 위반으로 탈락하고 지금은 고개 처박고 글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