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를 떠난 속리산의 숨은 보배 능선 코스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경북 상주시 편
  • ▲ 묘봉(우)과 관음봉(좌)에서 이어지는 속리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묘봉(우)과 관음봉(좌)에서 이어지는 속리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묘봉(妙峰, 해발 875m)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와 충북 보은군 산외면 신정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속리산 천왕봉의 서북쪽 능선으로 숨은 보배로 꼽히는 코스다.

    이번 산행은 원점회귀가 가능한 묘봉 소형주차장(경북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 540)을 산행의 기점으로 삼는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창공을 캔버스로 울퉁불퉁한 묘봉 능선 위에 그려진 새털구름을 바라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속리산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마을을 통과해 0.2㎞를 이동하면 운흥1리 마을회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속리산국립공원안내도를 살펴보고, 부푼 가슴을 안고 4.8㎞ 떨어진 묘봉을 만나러 간다.
  • ▲ 운흥리 안부를 오르는 구간의 자연석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 운흥리 안부를 오르는 구간의 자연석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주차장 기점 0.4㎞ 지점부터 아침이슬을 잔뜩 머금은 싱그러운 들풀을 가르며 서서히 청록의 숲속으로 들어간다. 계곡으로 내려가 목교를 건너면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두 번째 목교를 지나면서부터 제법 가파른 비탈길이 시작된다.

    계곡을 건너 푸른 이끼를 온몸으로 키우고 있는 돌계단을 밟으며 울창한 청록의 숲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가팔라지는 길옆으로 큼직한 바위들이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급경사 구간의 잘 정비된 자연석 계단 양쪽에는 밧줄 난간이 설치돼 있다.

    계단 구간의 중간쯤에 설치된 긴 의자가 등산객의 헐떡이는 숨을 고르게 한다. 묵묵히 앞서가는 등산객의 모습에서 제각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본다. 무심한 발걸음은 어느새 운흥리 안부에 닿는다.
  • ▲ 첫 번째 조망 바위에서 바라본 백악산과 낙영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첫 번째 조망 바위에서 바라본 백악산과 낙영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이곳에서 상학봉까지 1.8㎞을 오르기 위해 방향을 좌측으로 틀어 능선을 타고 오른다. 곳곳이 움푹 파인 탐방로에는 높게 자란 소나무가 거칠고 앙상한 뿌리를 드러내며 살려 날라고 절규하는 듯하다.

    이어 나무뿌리를 밟지 않도록 고통에서 구원해주는 철제 계단을 만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무계단과 철제 계단이 반복되는 구간을 오르는 도중에 뒤를 돌아보면 아름다운 매봉(해발 593m) 능선과 황홀한 눈 맞춤이 이뤄진다.

    계단을 다 오르자 너른 암반에 사방으로 자유분방하게 바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비법정탐방로인 토끼봉과 앞으로 넘어야 할 암봉, 그리고 북쪽으로 부드러운 능선으로 너울대는 백악산과 낙영산을 조망한다.

    비단에 화려한 수를 놓은 듯한 아름다운 풍광에 빠져 시간의 흐름을 까맣게 잊는다. 조망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데크 계단으로 옮겨 하행을 재촉한다. 계단을 내려와 앞을 가로막는 암봉을 우회하여 철제 난간이 설치된 매끄러운 암반을 밟으며 오른다.
  • ▲ 마당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마당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암반 길을 오르자 이정표가 상학봉까지 1.3㎞가 남았다고 알린다. 굽이치는 나무계단을 오르다가 철제 난간이 설치된 암릉을 오른다. 이어 철제 계단을 오르면 마당바위에 도착한다.

    마당바위 옆면을 보니 마치 도마뱀이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경계를 취한다. 산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날의 마음 상태에 따라 바위 형상이 여러 모양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만큼 늘 마음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한다는 사실이다.

    이곳에서 넘어오지 않고 옆으로 우회하여 지나온 암봉을 돌아본다. 토끼봉과 앞으로 넘어야 할 봉우리 위로 아우라처럼 휘돌아가는 하얀 광채를 그리는 구름의 향연을 감상한다.

    마당바위에서 계단을 내려와 철제 난간이 설치된 가파른 암릉 길을 조심해서 하행한다. 이어 앞을 가로막는 암봉을 우회하여 진행한다. 우리네 삶도 넘을 수 없으면 돌아가는 편이 훨씬 지혜로울 때가 많다. 
  • ▲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지나온 암봉.ⓒ진경수 山 애호가
    ▲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지나온 암봉.ⓒ진경수 山 애호가
    산길은 평탄한 참나무 숲길로 얼굴을 바꾸고 속리15-14지점(해발 820m) 말뚝 푯말을 지난다. 잠시 쉬었으니 다시 나무계단과 가파른 철제 난간의 암릉 구간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걷는 시간보다 멈추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상학봉과 묘봉 능선의 멋진 속살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기봉 군락의 끝자락에 우뚝 솟은 토끼봉을 바라보니 생김새가 정말 토끼와 같다. 기봉 꼭대기에 놓인 바위들이 토끼 머리와 눈처럼 보인다.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기봉괴암을 감상하는 재미에 푹 빠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속세에 두고 온 일들도 잠시 뒤로 미루어 둔다. 오롯이 지금 이 순간에 여기 있음을 알아차린다.
  • ▲ 토끼봉 모습.ⓒ진경수 山 애호가
    ▲ 토끼봉 모습.ⓒ진경수 山 애호가
    멈춘 발걸음에 시동을 걸어 서서히 가속을 올린다. 삐딱하게 선 이정표가 상학봉이 0.7㎞ 남았다고 안내한다. 이어 암릉을 올라서니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상학봉, 그 뒤로 묘봉과 관음봉, 맨 뒤로 문장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속리산 능선이 눈을 호강시킨다.

    암릉의 우측 비탈길을 따라 돌아가면서 산길을 지키며 장수를 기원하는 거북바위와 눈과 마음을 준다. 또 소나무 숲으로 덮으려다 미처 다 덮지 못해 하얀 속살을 드러난 암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계속되는 암릉 길에서 계란바위와 고래바위 등 즐비한 기암을 만난다. 이어 거친 암릉 길 대신 안전한 철제 계단을 하행한 후, 데크 로드를 걸으면서 암벽에 마련된 선반에 차곡차곡 쌓은 세 권의 책과 같은 바위를 지난다. 이러한 기암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가 뭘까?
  • ▲ 상학봉 뒤로 이어지는 묘봉과 속리산 문장대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상학봉 뒤로 이어지는 묘봉과 속리산 문장대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데크 로드를 내려와 바위 틈새를 비집고 나가면 암봉을 만나 좌측으로 우회하다가 암벽을 따라 설치된 철제 계단을 쉬엄쉬엄 오른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지나온 산길의 풍광에 발걸음이 붙들려 좀처럼 계단을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단 끝자락에서 지나온 암봉을 조망하니 암봉 좌측으로 내려온 계단이 소나무 숲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하다. 철제 난간을 붙잡고 암릉의 나머지 구간을 오로면 무명의 암봉에 닿는다. 데크 로드와 이어지는 계단을 하행하면서 펼쳐지는 속리산 전경이 눈부시게 황홀하고 아름답다.

    계단을 다 내려오면 좌측으로 이전 등산코스에서 꼭 통과해야 할 통천문을 지나 집채만 한 바위를 우회하여 암릉 구간을 내려선다. 밧줄이 무심하게 늘어선 암릉을 필자도 무심하게 밧줄을 외면하며 오르고 타조바위를 지나 해발 862m의 상학봉에 이른다.

    상학봉은 이름 그대로 학이 많이 모여들었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이 봉우리는 전체가 바위산으로 곳곳에 절벽과 기암들이 많이 있으며, 속리산 서북 능선의 제일 오른쪽에 위치한다.
  • ▲ 상학봉 고스락에 있는 바위들.ⓒ진경수 山 애호가
    ▲ 상학봉 고스락에 있는 바위들.ⓒ진경수 山 애호가
    상학봉 앞에 있는 스핑크스바위를 지나 즐비한 기암을 만나고, 앞으로 넘어야 할 암릉과 묘봉 뒤로 보이는 속리산 산등성을 조망한다. 이어 바위 틈새로 나와 하행한 후 계단을 오른다.

    바위 옆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는 내내 기암들에 시선을 빼앗겨 좀처럼 발걸음이 속도를 내지 못한다. 어느새 해발 860m인 암릉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바위 군락을 비집고 나와 마지막 봉우리인 묘봉으로 향한다.

    계단을 하행하면서 암릉 끝자락에 자리한 묘봉을 바라보니 정상에 있는 두 바위가 마치 덧니처럼 옆으로 삐져나와 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관음봉에서 문장대, 입석대, 천왕봉까지 파도처럼 너울대는 산줄기를 감상한다.

    해발 854m의 안부에 이르러 다시 계단을 오르면서 지나온 암봉들이 줄지어 키재기를 한다. 묘봉으로 안내하는 적갈색 철제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 상학봉을 바라보니 한 폭의 동양화를 빠져나온 듯하다.
  • ▲ 암릉에서 하행하면서 바라본 묘봉.ⓒ진경수 山 애호가
    ▲ 암릉에서 하행하면서 바라본 묘봉.ⓒ진경수 山 애호가
    적갈색 계단을 다 오르면 갈라진 암반 건너에 세워진 묘봉(해발 874m) 고스락 돌을 향해 성큼 뛰어넘는다. 묘봉은 주변 산세가 묘하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운흥리 마을을 한눈에 조망하고 관음봉, 문장대, 상학봉, 백악산 등 속리산 주요 봉우리 등을 감상한다.

    묘봉에서 계단을 통해 하행하여 산길을 0.6㎞을 내려오면 북가치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충북 보은군 여적암(2.5㎞)으로 갈 수 있고, 좌측으로 가면 미타사(2.0㎞)에 이르게 된다.

    북가치에서 미타사 방향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돌길이 거칠지만 자연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어 마치 꽁보리밥을 먹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길게 누운 바위와 생명력이 넘치는 청록의 숲속을 하행하면 좌측으로 통행금지 밧줄이 쳐진 곳을 지난다. 이 밧줄을 넘으면 운흥1리 마을회관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지만, 필자는 농촌 풍경을 즐기기 위해 계곡을 따라 용화로로 향한다.
  • ▲ 묘봉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 묘봉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계곡을 옆에 끼고 하산하는 구간을 걷자니, 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이 맑고 고운 물소리가 속세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다 사라지게 한다. 왜? 산을 찾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어 찾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잠시 상쾌한 공기에 이끌러 청류가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 손을 담그니 가슴까지 시원함이 전해져 온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이 구별이 없이 연속됨을 알리는 듯하다.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처럼 세상에서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공격해 승리하는데 그 물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 권력자가 힘없는 국민을 얕잡아보고 이길 수 있다고 망동하면 그 끝은 불 보듯 뻔하다.
  • ▲ 주차장으로 향하는 속리산로에서 바라본 묘봉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주차장으로 향하는 속리산로에서 바라본 묘봉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몇 차례 계곡을 건너가고 건너오고 반복하여 걷다 보면 미타사 입구에 닿는다. 이곳부터 콘크리트 포장된 농로를 따라 농촌의 풍광을 즐기며 걷는다.

    운흥2리 마을에 이르러 마을 주차장에서 다녀온 묘봉과 상학봉의 산등성이를 조망한다. 이어 용화로를 걸어 용화정공원이 있는 용화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속리산로를 따라 이동한다.

    오후 햇살을 온새미로 받으며 걷자니 햇살이 부담스럽지만 그런 보답으로 묘봉 산등성을 조망하는 기회를 얻는다. 이렇게 도로를 약 1.9km을 걸어 묘봉 소형주차장에 도착해 속리산국립공원의 숲은 보배인 묘봉과 상학봉 능선 코스(약 11㎞)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