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山 11경, 제3경 대둔산 水落溪谷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논산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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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大芚산, 해발 878m)은 충남 논산시 벌곡면과 금산군 진산면 및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이 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며, 수많은 암봉(巖峯)이 이어져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이 산의 순수한 우리말은 '한듬산'이다. 이 산의 모습이 계룡산과 비슷하지만 산태극 수태극의 큰 명당자리를 계룡산에게 빼앗겨 한이 되어 '한이 든 산'의 뜻으로 한듬산이라 한다. 한듬산의 한을 크다는 대(大)로 하고, 듬은 그 소리만을 비슷하게 둔(芚)으로 해서 대둔산(大屯山)이 되었다고 전한다.이번 산행은 아름다운 계곡과 폭포가 즐비한 산행을 위해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위치한 ‘수락계곡 주차장’을 시점으로 한다. 산행코스는 수락주차장~선녀폭포~수락폭포~군자구름다리~마천대~낙조대~낙천암을 거쳐 원점회귀다.주차장을 출발해 수락캠핑장을 지나 산철쭉으로 유명한 대둔산 월봉산 입구까지 약 0.7km를 보이지는 않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단풍나무가 우거진 콘크리트 포장길을 걷는다. 승전교(勝戰橋)를 건너면서 인도 블록과 발바닥지압 길을 약 0.15㎞ 이동하면 대둔산승전탑과 대둔산도립공원 등산안내도를 만나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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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따라 설치된 데크로드를 걷기 시작하자마자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계곡물과 청록의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이온, 그곳들로부터 나오는 서늘하고 맑은 공기를 맞는다. 장마 끝 무더위에 한껏 데워진 몸의 열기와 서늘한 기운이 만나 성에를 이룬다.곧이어 하얀 비단 치마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자랑하는 선녀폭포를 만난다. 옥황상제께서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경치가 아름다워 선녀들에게 이곳으로 내려가 목욕해도 좋다고 허락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계곡물을 받치는 암반의 생김새에 따라 물줄기는 다양한 모양의 하얀 비단을 펼치고 갖가지 소리를 내면서 눈동자와 귓구멍을 즐겁게 한다. 바위를 덮은 푸른 이끼는 하얀 물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여 상호대립이 더욱 멋진 조화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인다.청록의 저고리에 하얀 치마를 입은 아리따운 여인 모습처럼 청초하고 순수함으로 가득한 수락계곡은 발걸음을 쉽사리 옮길 수 없게 한다. 그래도 한 발짝 두 발짝 황소걸음이 어느새 고깔모자를 쓰고 하늘을 쳐다보는 듯한 모습의 고깔 바위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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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한기를 주는 수락계곡도 장마 속 폭염 때문에 천천히 움직이는 몸뚱이의 열기조차 식히지 못한다. 온몸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지만, 수락계곡이 펼치는 비경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유연함은 강함을 이기는 법이란다.고깔 바위에서 조금만 더 이동하면 백제시대 청년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며 심신을 수련하던 수락폭포에 이른다. 거대한 숲속에서 떨어지는 장엄하고 시원한 물줄기에 등산객들의 스마트폰 버튼을 누르는 손이 바빠진다.폭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량한 공기에 열기를 식히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수락폭포 조망대에서 안개 자욱한 계곡을 바라보니 이곳이 바로 신선이 머물던 심산유곡이다. 이제 계단을 올라 폭포 상단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물의 힘에 기운을 받는다.낙조대와 군지구름다리 갈림길에서 군지구름다리를 향해 암벽에 설치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소나무 숲을 가르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운무는 산 높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한다. 깎아지른 암벽을 오르면서 바위산의 숨결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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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대와 군지구름다리 갈림길에서 군지구름다리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와 청록의 숲속에서 주황의 한 획으로 인연을 이어주는 현수교를 건넌다. 다시 계단을 오르고 데크로드를 걸으면서 끊겼던 계곡 물소리를 다시 듣는다.거친 바위를 덮은 계단에 감사할 겨를도 없이 쏟아져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할 수 없다. 폭염과 더불어 습도가 높은 계곡과 숲은 마치 습식 사우나를 방불케 한다. 이제 겨우 해발 465m 지점을 지났을 뿐인데 수시로 수분을 섭취한다.계단을 지나 조릿대가 우거진 숲속을 가르는 바윗길과 흙길은 지난번에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어있다. 물소리 대신 산행을 같이하는 청아한 새소리가 후덥지근한 산행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준다.작은 구릉에 올라 소나무 아래 놓인 평평한 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잠시 내려갔다 다시 마천대를 향해 길을 오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윗길이 점차 길어지고 거친 숨소리와 아름다운 새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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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667m 지점을 지나면서 하행하는 등산객이 길을 물어온다. 불행하게도 그는 반대 방향으로 하산 중이었다. 산행할 때는 질문도 대답도 정확해야 길을 잃지 않고 즐거운 안전산행을 할 수 있다.산허리를 곧게 세우자 다시 계단 구간이 시작된다. 아직도 운무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숲속 계단을 오르니 해발 755m의 너른 암반 위에 명품 소나무들이 운무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바윗길과 계단을 오르면 수락주차장에서 오르는 또 다른 등산로와 합류되는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바윗길을 조금 올라 안심사 갈림길을 지나고 습기로 가득한 눅눅한 산비탈을 걷는다.이어 마천대를 지키는 두 개의 돌장승을 지나 물기가 흥건한 바위를 오르면 낙조대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난간이 설치된 암반을 오르면(계단을 오를 수도 있음) 대둔산 고스락인 해발 878m 마천대(摩天臺)에 도착한다. 암반 위에 개척탑(開拓塔)이 우뚝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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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전북에서 지정한 도립공원답게 사방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마음을 환희에 젖게 한다. 구름과 햇빛은 기봉(奇峯)과 괴석(怪石)들이 줄지어 늘어선 산등성 한가운데 우뚝 솟은 마천대를 중심으로 신비로운 풍광을 자아낸다. 이 산이 한국 8경에 선정된 이유다.벌곡면 방향으로부터 몰려드는 운해와 운주면으로부터 비추는 햇빛이 묘한 자연의 조화를 연출한다. 이것이 바로 선경이 아닌가 싶다. 단애(斷崖)를 이룬 기암 아래로 운행 중인 케이블카, 금강구름다리가 내려다보이는데, 삼선계단은 바위봉우리에 숨었다.시선을 사로잡는 마천대의 비경이 못내 아쉬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아쉬움을 달래며 암반 위에 털썩 주저앉아 자연과 하나가 되어 본다. 수려한 경관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와 낙조대로 향한다.좌측으로 낙조대와 태고사, 우측으로 케이블카와 금강구름다리, 직진하면 용문골삼거리로 이어지는 네거리를 만난다. 낙조대는 직진해서 용문골삼거리로 가도 되지만, 이정표대로 좌측으로 하행한다.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바윗길 경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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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대 정상에서 보았던 구름이 비를 내렸는지 산길에는 물기가 흥건하여 조심해서 내려간다.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분위가 물씬 풍기는 원시림 같은 산길을 홀로 걷자니 인생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지뢰밭 같은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은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다.산비탈로 이어지는 바윗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찾아든 오른쪽 무릎의 통증이 갈 길을 늦춘다. 압박 붕대도 있긴 하지만, 손수건에 기를 담아 동여맨다.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대둔산의 기운을 받아선지 별탈없이 낙조산장에 도착한다.낙조산장 뒤편에 설치된 계단을 올라 논산 수락리 마애불(論山 水落里 磨崖佛)을 접견한다. 이 불상은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약 3m 높이의 암벽에 얇게 양각하여 조성한 높이 2.7m의 입신상이다.이곳에서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는 대둔산 봉우리들을 조망하고 낙조대로 향한다. 산길을 오르면 산등성에서 네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0.1㎞를 더 오르면 해발 854m 대둔산 낙조대(落照臺)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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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대에는 바위 무더기 위에 고스락 돌이 올라서서 낙조와 일출의 광경을 지키고 있다. 이 풍광을 즐기려면 태고사 방향 탐방로를 이용하면 된다. 이곳에서 태고사를 조망하고, 마천대 방향을 바라보니 바위군락지가 보여 그곳으로 향한다.낙조대에서 네거리로 내려와 마천대 방향으로 0.15㎞ 정도 이동하면 바위군락지를 만난다. 이곳에서 태고사가 더 가깝게 조망되고 일출과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일명 대둔산 일출대가(日出臺) 아닌가 싶다.이곳에서 마천대까지 올록볼록한 봉우리들이 이어지는데 그 경관이 일품이다. 다시 낙조산장으로 하행한 후 바위 절벽에 자리한 석천암(石泉庵)으로 향한다.처음엔 완만한 흙길이라 마음이 놓였는데, 곧바로 경사가 가팔라진다. 빗물을 머금은 풀숲 사이로 물기가 흥건한 돌길이 계속된다. 미끄럼에 조심해서 하행하니 상행 때보다 훨씬 힘들고 시간도 더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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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이 넘치는 청록의 숲을 뚫고 햇빛이 들어오면서, 매미는 짧은 삶을 원망이나 하듯이 새소리를 물리치며 굉장히 높은 음색의 울음소리를 낸다. 어쩜 그런 삶이 그나마 다행이라 감동하여 찬탄하며 부르는 노랫소리일지도 모른다.낙조산장에서 약 0.4㎞를 하산하면서부터는 바윗길이 이어진다. 산길의 좌측은 골을 이루고 우측은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호위하며, 푸른 이끼가 잔뜩 덮여있는 괴석들이 드문드문 출현한다.해발 679m 지점에 이르니 널린 공터가 있고 계곡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곳 허둔장군절터는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되자 허둔 장군이 나라를 되찾겠다는 결심으로 이곳에 절을 짓고 은둔하였다고 전한다.흐르는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씻는데, 그 물이 시리도록 차다. 허둔 장군처럼 이곳에 자리를 틀고 머물고 싶다. 황망한 생각에 잠시 길을 잃고 이끼를 잔뜩 머금은 너덜지대를 힘들게 지나 탐방로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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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산수국꽃을 보며 내 삶을 돌이켜보고 해발 628m 지점을 지난다. 돌이 깔린 탐방로에는 등산객 대신 물이 흐르고 있고, 돌이 없는 탐방로는 도랑으로 바뀌었다. 계곡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간간이 만나는 기암들이 반갑다.계곡에 놓인 돌을 넘어 흐르는 물줄기를 간신히 건너 바윗길을 하행하니 석천암 갈림에 도착한다. 빗물에 씻겨 잔돌이 무성한 가파른 길을 0.2㎞를 올라가면 두 마리의 개가 짖으며 반긴다. 드디어 벼랑 끝에 자리한 석천암에 도착한다.입구에는 거대한 암벽 사이에서 석천수(石泉水)가 흘러내리고 그 앞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물이 흘러내리는 암벽 옆에는 돌탑이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산신각과 법당이 위치한다. 법당 옆에는 출입금지 푯말이 놓여 있다.주지 스님께서 출타하셨는지 인기척이 없고, 신기하게도 개 짖는 소리도 멈췄다. 땀에 찌든 몸으로 차마 법당과 산신각을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탐방로로 복귀한다. 석천암 뒤 암벽 위에 세워진 석탑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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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윗길로 이어지는 탐방로는 계단을 수차례 내려가며 계곡을 따라 하행한다. 푸른 이끼의 절벽이 깊은 골을 만들고, 청록의 숲은 하늘을 가리고, 하얀 물결은 흐느적거리는 비단옷을 나부끼며 춤추며 흘러간다.고도를 낮출수록 물줄기는 굵어지고 간간이 소용돌이치며 웅장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산짐승들에게 생명수가 있음을 알리는 듯하다. 이제부터 하행 길은 계단과 데크로드로 이뤄져 있어 편하게 경치를 감상하며 걷는다.석천암 갈림길 도착 직전에 뒤를 돌아보니, 힘찬 생명력이 솟아나는 청록의 숲과 그 원천을 이루는 하얀 물줄기, 그 물줄기를 이끄는 거대한 암벽이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이후 갈림길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수락폭포를 만난다. 수락계곡의 시원한 공기를 가르며 하행해 수락계곡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로써 수태극 산태극이 계룡산에 버금가는 약 10.4㎞의 대둔산 산행을 마친다.